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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미 대북정책 '트럼프의 유산'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입력 2021. 01.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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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2월15일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번째 만남인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취임 직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을 방문해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단연코 북한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토록 큰 문제를 자신이 해결했다고 자랑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후임자 취임식마저 불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에 관해 직접 조언했을 리는 만무해 보인다. 그의 조언이 있었든 없었든 북핵 문제가 미국의 당면 현안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취임 일주일이 지난 지금 바이든 대통령의 머릿속에 북한 문제가 차지하는 공간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명백하다. 코로나19를 억제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등 국내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룩한 북한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이라는 ‘현상유지’가 시급성을 낮춘 측면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몇 가지 힌트는 이미 나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인준청문회에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한 압박, 북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인도적 위기에 대한 관심, 한국·일본 등 동맹국 및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의 등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 외교 경험이 많은 외교관들을 전진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북핵 문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는 점에서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이라고 해야겠지만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대한 이해와 경험은 중요하다.

북한은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한 것 같다.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은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등의 ‘이벤트’로 주목을 끌고 미국의 의지를 시험해온 전력이 있다. 그래서 북한이 오는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즈음해 ‘봄의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는 예사롭지 않다. 이 경우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은 출발부터 제재와 북한의 호전적 반발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것을 막을 방안은 두 가지라고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말한다. 먼저 대북정책 재검토 기간을 최대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발 유혹을 억제할 유인도 제공해야 한다. 관련해서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반감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새롭게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싱가포르 선언의 원칙들은 주요 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대북 외교 성과를 계승·발전시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바람의 성공 여부는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유산을 거부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의 유산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새로운 논리를 제공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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