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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임재 강하게 체험하고 싶다면.. 제자 삼으라

입력 2021. 01.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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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시대 셀 제자양육을 말한다 <18>
박영 목사(오른쪽)가 2018년 1월 수원 예수마을셀교회의 셀교회 제자학교 32기 졸업식에서 설교하고 있다.


빌 헐은 책 ‘목회자가 제자 삼아야 교회가 산다’에서 많은 교인이 교회 사역에 관여하지 않으며 이를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헐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주일에 한 번 마주하는 배우와 관객의 관계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공연이 좋으면 좋을수록 더 많은 군중이 모이고 더 뛰어난 공연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당기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이를 ‘싸구려 기독교’(Cheap Christianity)라 정의했다. 성도들이 자신을 관중으로 여길 때 이미 싸구려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헐의 지적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교세라는 숫자에 열광하거나, 그 숫자에 따라 평가받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자신을 본다.

이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은 교인 숫자에 상관없이 그들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사역에 관여하는가에 달려있다. 그 사역을 통해 개인의 삶에 영적 생명력을 얼마나 불어 넣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돕는 것이 제자양육이다. ‘제자 삼는 교회’의 저자 론 킨케이드는 교회가 제자를 삼는 사역에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네 가지로 꼽았다.

첫째, 제자 삼는 사역을 통해 성도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 강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둘째, 성도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욱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다양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제자를 세우는 소그룹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약속을 더 깊이 체험하게 해준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핵심 가치는 평신도의 사역자화다. 그러나 현대교회 성도의 정서를 살펴볼 때 수동적이요, 이기적이며 종교소비적인 크리스천이 대부분이다.

현대교회 성도는 신앙생활에 세속적인 영이 강하게 들어와 있다. 특히 한국의 상황을 살펴볼 때 보릿고개 시절 ‘오직 예수’ 정신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편리주의 안일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평신도에게 사역자의 영성과 삶을 요구하면 큰 부담을 느낀다. 평신도의 사역자화를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 부담스러워한다.

많은 교인이 군중 속 한사람으로 조용히 신앙생활하는 교회를 선호한다. 제자훈련을 하지 않는 교회로 이동한다. 제자훈련을 하더라도 헌신된 사역자의 삶을 요구하지 않는 편한 교회를 찾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성도가 교회사역의 주역이 아닌 관람객으로 머무는 것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교회에서 평신도를 사역자로, 목회자의 동역자로 세우기 위해 시행하는 제자훈련은 대부분 목회자가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평신도가 제자훈련에 부담을 느끼고 피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나 셀 제자양육은 다르다. 같은 수준의 평신도가 인도하는 양육이기에 접근성이 좋고 심적 부담도 훨씬 덜하다.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라 평소에 관계를 맺던 가족, 친지, 친구, 직장 동료, 캠퍼스 학우들을 양육대상으로 삼기에 어색하지 않다.

성전 안에서 목회자 주도로 시행되는 제자훈련처럼 엄격하거나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양육이 이뤄지기에 쉽게 양육대상자에게 다가설 수도 있다.

지난 2년 동안 성도들이 현장에서 셀 제자양육을 시행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양육하는 평신도가 먼저 말씀을 통해 은혜받는 현상이 나타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는 주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말씀으로 더욱 훈련받고 싶어하는 자발적 욕구가 생겨난다.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목회자가 주도하는 제자훈련을 사모하고 참석하게 된다.

목회자가 주도하는 제자훈련은 평신도가 피교육자 입장이니 수동적으로 움직인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셀 제자양육은 다르다. 본인이 직접 주도하니 적극성을 띤다.

교재 내용이 쉽고 양육 방법도 어렵지 않아 ‘나도 제자 삼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화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 게다가 양육자의 입장이 되므로 간절함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섬김과 기도의 훈련이 이뤄진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양육 받기만 했을 때의 은혜와는 차원이 다른 감동과 은혜가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신앙의 성장이 빠르게 일어나는 걸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새가족 전도가 사실상 멈춰버렸다. 하지만 셀 제자양육은 평신도가 삶의 현장에서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데 앞장서도록 한다.

지금도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처럼 가정 사무실 카페 캠퍼스 등에서 자생적인 교회가 세워진다. 자생적 교회의 새가족이 자연스레 본교회로 연결되고 등록하면서 코로나19 시대에도 새신자가 늘고 있다.

박영 수원 예수마을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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