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징벌적·차별적 대체복무" 양심적 병역거부자, 헌법소원 제기
[경향신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한 대체역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다.
2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한 교도소에서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A씨가 최근 헌법재판소에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역법에 대한 헌법소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2018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두지 않은 병역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국가 안보 못지않게 ‘소수자의 목소리’,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2019년 12월 국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는 대체역법을 만들었다.
A씨는 여호와의증인 신도이면서,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가장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형사재판을 받다가 2018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뒤 지난해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해 10월 대체복무제 첫 실시로 대체복무교육센터에 들어갔고, 현재 교도소에서 대체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문제가 된 조항은 “대체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36개월로 한다”는 제18조 제1항과 “대체복무요원은 합숙하여 복무한다”는 제21조 제2항이다.
A씨와 대리인들은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이 조항들에 의한 현행 대체복무가 징벌적이고, 차별적이며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권, 혼인과 가족생활 보장에 대한 권리,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유엔(UN)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위반이라고 했다. 규약 제18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하나의 권리로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성격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게 국제기구들의 권고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어느 누구든지 자신의 양심 또는 신앙과 조화되지 않는 경우에 의무적인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대체복무의 성격은 징벌적이 아니어야 하며,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봉사가 돼야 하고 인권 존중에 적합해야 한다”고 했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병역기피자를 가려내기 위해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보다 어느 정도 길게 정할 수는 있다면서도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 대체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현역 군 복무(18개월)의 2배다. A씨와 대리인들은 “국제표준에 따르면 대체복무는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되며, 이를 초과할 경우 징벌적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A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실질적인 형사처벌은 면하게 됐으나, 이른바 ‘대체 형벌’로 기능하는 지나치게 가혹한 기간과 합숙 복무를 강제받아 양심의 자유를 침해받게 됐다”고 했다. UN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대체복무 기간 36개월에 대해 “(현역 군 복무와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그 어떤 사유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대체역법에는 상근예비역·사회복무요원 같이 자녀가 있는 경우 출퇴근 형태로 복무하거나, 겸직 허가를 통해 가족 부양을 위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합숙 복무만 허용되기 때문에 대체복무 기간 동안에는 자녀 양육과 가족 부양을 할 방법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A씨와 대리인들은 “A씨가 일반 병역의무 이행자였다면 자녀가 있는 관계로 상근예비역 대상자에 해당돼 출퇴근 복무가 가능했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대체역법으로 인해 A씨는 필요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에 대한 권리와 평등권을 침해받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일률적으로 동일한 기간의 동일한 합숙복무를 규정하는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징벌적 복무를 강제받는 것이라 현행 대체복무제는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체복무제가 징벌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대체복무제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 국제기준과 헌재 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법 제정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결국 대체역법은 헌재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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