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새벽 배송 중 쓰러진 쿠팡맨..실제 업무량 어땠나

허효진 2021. 1. 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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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2일 새벽 2시 20분쯤, 쿠팡 배송 기사 40대 김모 씨가 경기 안산의 한 건물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김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입사한 지 딱 28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부검 결과, 김 씨의 사망 원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추정됐습니다. 과로사의 대표적 병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족은 건강했던 김 씨가 과로로 숨진 것으로 보고 업무상 질병 재해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불승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신입직원이었던 김 씨, 얼마나 일했던 걸까요? 업무상질병판정서와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서, 전문기관의 업무관련성 조사 소견서를 통해 김 씨의 업무량과 강도를 살펴봤습니다.


■ 배송 상품 하루 평균 178개…"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비율 점차 증가"

지난해 2월, 쿠팡에 입사한 김 씨는 5일째부터 홀로 배송에 나섰습니다. 김 씨가 배달한 상품 개수는 하루에 적게는 105개, 많게는 223개에 달했습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78개 상품을 배송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에 배송을 가게 되면 기사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건을 전달해야 해서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요. 3월에는 빌라 배송 비율이 100%인 날도 나흘이었습니다. 공단 측도 김 씨의 빌라 배송 비율이 점차 늘어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이 운영하고 있는 신입사원 적응 제도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쿠팡은 1, 2주차에는 일반 배송 가구 수의 30%를 배정하고 3주차에는 50%, 4주와 5주차에는 65%로 점차 늘려간다고 설명했는데요. 김 씨는 적응제도에 따라 원래 배정받았어야 할 가구 수보다 120% 정도 많이 할당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SHARE제도가 뭐길래…휴게시간 없고, 심적 부담 높고

김 씨는 근로계약서상으로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야근 근무를 하면서 휴게 시간 1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휴게 시간을 아예 사용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단 측도 김 씨의 배송시간 기록으로 볼 때 휴게시간으로 볼 만한 시간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유족 측은 GPS 추적으로 배송차량이 7분 이상 정차할 경우 쿠팡 측이 연락을 하기 떄문에 휴게 시간을 갖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요. 쿠팡 측은 공단 측에 GPS 추적은 사고 여부 등을 확인하는 안전조치라고 답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이 다 이뤄지지 못하면 동료가 도와주는 쿠팡의 "SHARE제도"도 김 씨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김 씨는 생전 유족에게 "동료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김 씨는 원래 밤 10시부터 근무하게 돼 있었지만 출근 기록을 보면 항상 1시간 정도 먼저 출근했습니다. 이 시간 동안 미리 배송 차량에 물품을 실어 배송 할당량을 채우려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단 측은 "SHARE제도의 도움을 받는 부분으로 일일 배송량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과 업무 종료 이전 실적 비교 등으로 정신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업무상질병판정위, 과로사 "불인정"…전 직장 업무시간과 비교?

그럼에도 업무상질병판정위는 김 씨 유족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했습니다. 바로 업무시간 때문인데요. 김 씨는 쿠팡에서 일한 기간이 비교적 길지 않아 단기 과로 기준과 만성 과로 기준을 각각 적용해 판단했습니다.

단기 과로는 "발병 혹은 사망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이전 12주(발병 혹은 사망 전 1주일 제외)간에 1주 평균보다 30%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

- 출처: 고용노동부 고시(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

위 고시에 따르면 김 씨의 경우 사망 전 1주 업무시간은 41시간 24분, 사망 전 2주~12주 평균 업무시간은 33시간 23분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씨가 지난 2019년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 가량 일했던 전기 공사 보조 일의 업무시간과 2주 정도 실직 기간이 비교 대상으로 설정된 겁니다. 김 씨의 업무 증가량은 26.7%, 수치로 보면 단기 과로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만성적 과로 기준 역시, 사망 전 한 달 평균 업무시간이 1주 기준 64시간을 초과해야 하지만 김 씨는 56시간 18분으로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유족은 이에 대해 공단이 과로사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실제 고용노동부 고시를 보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은 경우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돼 있는데요.

김 씨의 경우는 야간 교대 근무, 급격한 온도변화로 인한 유해한 작업환경,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과도한 업무량 목표로 인한 정신적 긴장 등 4가지가 업무 부담 가중 요인으로 지적됐습니다. 사실상 김 씨가 쿠팡 배송 기사로 일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판단할 만한 요인들이 부차적 고려 요소로 전락한 겁니다.

유상철 노무사는 "과로나 스트레스의 업무 관련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때 현재는 업무 시간에 초점이 맞춰져서 판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며 "업무 부담 가중 요인을 고려한 종합적 판단이 미흡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 유족은 다음달 중으로 재심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재심에서는 김 씨의 사망, 그리고 과로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까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건 김 씨가 견뎠던 업무량과 그 강도가 단순히 고용부 기준에 나와 있는 업무시간이란 숫자로만 계량될 순 없다는 점입니다.

허효진 기자 (h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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