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우주 탐험>본다는 것은 뇌 해석의 결과.. 경험이 쌓여 '마음'이 되다

노성열 기자 2021. 1. 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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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전승훈 기자

■ ⑦ 몸속에 있는 마음

시각 시스템, 빛 자극 + 뇌 해석

내부 모형으로 외부 세계 예측

같은 대상 보더라도 다르게 느껴

10만분의 1초 단위로 쪼갠 정보

해마, 10만개 뉴런 3000번 반복

생존 필요한 경험만 선택·집중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생각한다’는 점이다. ‘생각’은 자아를 인식하고, 과거와 현재에 근거해 미래를 꿈꾸게 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의식, 지각, 지능 등 몇 개 영역으로 나누지만 통틀어 ‘마음(mind)’이라고 부른다. 철학의 이성, 자유의지나 신학의 영혼 개념과도 일부 겹치지만 실험을 통해 철저히 검증하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 수십 년 동안 뇌과학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물질인 뇌에서 마음을 찾는 여행이 본격화됐다. 뇌 우주탐험의 최고 난(難)코스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인가, 둘인가. 만약 하나라면 뇌에서 어떻게 마음이 생겨나는가.

◇심리학과 생물학의 통합 = ‘인지(認知·cognitive) 신경과학’은 기억·학습·감정·언어 등 인간의 고등 사고(思考), 달리 말해 마음의 구조와 형성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심리학·의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음의 과학인 인지 심리학이 뇌의 과학인 신경과학과 만나 탄생한 21세기의 신생학문이다. 물질인 뇌를 잘게 쪼개면 세포-단백질-유전체의 순으로 작아진다. 하나하나의 소단위는 생명 활동을 하지만 단독자는 아니다. 뇌세포(뉴런) 1000억 개가 모여야 비로소 ‘나’라는 주관적 경험(의식)이 출현한다. 과연 뇌라는 물질에서 정신에 해당하는 마음이 생기는가.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날까. 창발(emergence) 현상처럼 일정량을 넘으면 극적인 질적 변환이 일어나는 것일까. 심리학이 이 질문에 불을 댕겼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지크문트 프로이트,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는 각각 정신분석학, 실험심리학을 창설했다. 피와 살을 다루던 의학에서 정신을 따로 분리해낸 것이다. 특히 1960년대 탄생한 새로운 인지 심리학은 그 과학적 후예로 외부 세계가 우리 뇌 속에서 어떻게 표상(表象·representation)되는지 탐구한 학문이다. 다시 말해 감각 기관에 의해 획득된 정보가 마음에서 재현되는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인지 심리학은 행동주의(behaviorism)의 실험적 엄밀성을 승계하면서 정신분석처럼 정신의 작동 원리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뇌과학을 통해 알아낸 생물학적 원리를 결합해 인지 신경과학이 완성됐다. 인지 신경과학자들은 심리학에 뉴런과 시냅스, 뇌파 연구 등에서 얻은 최신 뇌과학 실험성과를 덧붙여 ‘마음’의 비밀을 차례로 규명해내고 있다.

◇시각과 기억·학습 연구 = 그중에서도 많은 성취를 이룬 분야가 감각, 특히 시각 연구다. 외부 세계를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체의 어떤 신경회로를 타고 형상이 마음에 새겨지는지는 지식인들의 오랜 탐구 주제였으나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 이미지를 지각하는 방식은 카메라 렌즈로 사진을 찍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망막을 지나 뇌 시각피질에 도달한 빛 자극은 ‘해석’을 거쳐 최종 윤곽이 잡힌다. 뇌는 단순히 광자(光子) 조각을 모자이크해 그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본다’라는 의식적 경험에 대응해 바깥 세계의 대상들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시각뿐 아니라 뇌는 감각기관들로부터 정보를 받기 전에 나름의 실재를 산출해놓고 있다. 내부 모형(internal model)이라고 하며, 뇌의 신경회로에 내장된 ‘추측 규칙’이다. 외부 세계에 관한 예측들, 즉 뇌의 바깥에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정보는 시각 피질에 의해 시상(視床·thalamus)으로 전달된다. 그러면 시상은 그 예측을 눈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비교한다. 시각 시스템은 망막에 맺힌 2차원 패턴을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안정된 3차원의 감각 세계에 대한 해석으로 변환하는 장치다. 우리는 같은 대상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같은 것을 ‘본다’고 착각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기억과 학습 분야다. 학습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과거 경험을 체계화해 ‘마음’에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렇다면 기억은 뇌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가. 기억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과학자들은 이 주제에서도 많은 설명을 찾아냈다. 기억은 외현(外現·explicit)기억과 암묵(暗默·implicit)기억으로 구분된다. 외현기억은 사람·장소·사물 등에 관한 서술(declarative) 기억으로 의식적 회상이 필요하다. 암묵기억은 운동과 지각 기술 등에 관한 것으로 무의식적 절차(procedural) 기억이다. 뇌는 낮에 경험한 단기 기억들을 밤 동안 해마에서 재분류해 대뇌신피질의 장기 기억 창고에 저장한다. 이를 고착화(consolidation)라고 한다. 고착화가 일어나려면 의식의 집중과 반복이 필수적이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될 때 뉴런 간 연결부위인 시냅스 가짓수의 증가라는 물리적 변화가 생긴다. 발길이 잦은 등산로가 더 넓어지는 원리다. 심지어 뇌 속 기억·학습 기관인 해마에서는 밤새 10만 분의 1초 단위로 쪼갠 ‘짤(토막 정보)’을 10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3000번이나 반복해 틀어보며 쓸 만한 정보를 선별한다. 우리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달인이 되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거듭하지만, 뇌도 외부에서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경험만 골라 새겨두기 위해 선택과 집중, 반복을 일상화하고 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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