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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금광은 내 차지" 억만장자들의 이유있는 '우주 전쟁'

박수현 기자 입력 2021. 01. 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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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위한 사업, 방해하지 마라" "경쟁자 죽이기는 그쪽이 하고 있다"

세계 1위 갑부 자리를 다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50)와 아마존 창업자 겸 CEO인 제프 베이조스(57)가 불같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합쳐서 400조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이들은 대체 무슨 일로 싸우고 있는걸까.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 /AP 연합뉴스

머스크는 26일(현지 시각) 베이조스를 향해 "좋게 봐서 몇년 뒤에나 겨우 쓸 수 있을 아마존 위성 때문에 스타링크 위성 궤도 수정을 방해하는 건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분노의 트윗을 날렸다. 베이조스의 반기(反旗)로 자신이 추진 중인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공개 저격에 나선 것이다.

전말은 이렇다. 머스크는 지구 저궤도에 인공위성 약 1만2000여개를 쏘아올려 세계 각지의 잠재 고객들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아직까지 온라인에서 소비 활동이 없는 30억명을 끌어들이려는 포석인 셈이다.

‘왜 이토록 많은 위성을 발사하는가’라는 의문의 해답은 ‘인터넷망 위성’으로 불리는 저궤도 위성의 특성에 있다. 저궤도 위성은 고도 1000km 이하에서 지구를 돌아 지구와 거리가 가깝고 지연 시간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용 시간이 짧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연속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말 그대로 위성군(群)이 필요한 것.

머스크는 더 많은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을수록 인터넷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최대 기대치는 150Mbps(초당 메가비트). 국내 인터넷 평균 전송 속도가 25Mbps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다. 머스크는 이처럼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해 시장을 선점, 연간 300억달러(약 33조1320억원)의 매출을 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머스크의 이런 구상은 해당 프로젝트가 위험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주를 오염시킬 수 있어 우주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 부딪혀왔다. 스타링크 위성이 궤도를 떠도는 우주 쓰레기를 추적해서 자동으로 충돌을 피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각종 기업들이 위성을 대거 쏘아올리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우주 쓰레기를 모두 피할 순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궤도에서 위성끼리 부딪히기라도 하면 인공위성 추가 발사나 향후 우주 탐사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에 머스크는 규제 당국에 "스타링크 위성을 기존 계획보다 낮은 고도로 옮겨 제기된 문제점들을 보완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번엔 "설계 변경이 오히려 위성 간 충돌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베이조스 등 관련 기업인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

이와 관련,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스페이스X의 데이비드 골드만 디렉터는 지난주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미팅에서 "아마존이 ‘경쟁자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아마존은 최근 들어 우리 사업을 반대하기 위한 회의만 30번을 가졌다. 자사 프로젝트를 주제로 한 회의는 한 번도 갖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머스크가 지난해 10월 베타 서비스까지 시작하며 승승장구하자, 배가 아파진 베이조스가 훼방을 놓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2018년 카이퍼 프로젝트를 출범하며 총 3236개의 위성을 궤도에 올리겠다고 예고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핵심 하드웨어인 고객 터미널용 안테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위성을 발사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눈치다.

그러나 ‘스타링크 위성의 고도를 낮추면 위성 간 무선 간섭이 늘어날 수 있다’는 베이조스의 지적이 틀린 건 아니다. 더욱이 머스크는 스타링크 위성이 고도 580km 이상으로 지구와 가까울 필요가 없다고 공언한 상태. 베이조스 입장에서는 머스크가 싹도 틔우지 못한 카이퍼 프로젝트의 뿌리를 뽑으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존은 이날 머스크의 트윗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도 이를 언급하며 날을 세웠다. 아마존은 "팩트는 간단하다. 우리가 위성 간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모든 설계를 마치니까 스페이스X가 이제와서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트위터에 쓴 것과 달리 경쟁자를 방해하는 건 그들의 변경 계획이다. 가능하면 요람에서부터 경쟁을 막는 것이 스페이스X에는 분명히 이익이겠지만, 확실히 대중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의 로켓. /각사 제공

머스크와 베이조스가 우주 경쟁을 벌이며 말싸움을 벌인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블루오리진을 설립하며 머스크보다 먼저 로켓 개발에 뛰어든 베이조스는 2015년 12월 로켓 발사에 성공한 머스크에게 "클럽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며 자신의 우위를 알렸다. 당시 머스크는 "블루오리진은 개발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궤도를 벗어난 우주선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맞받아쳤다.

오는 2040년 연간 5000억달러(약 552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시장 규모를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존심 대결은 이보다 근본적인 곳에서 시작한다. 다름 아닌 우주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다. 베이조스는 어린 시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보고 우주비행사를 꿈꾼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 역시 화성으로 수천명을 이주시키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우주를 향한 이들의 집념은 실패할 때 더 빛난다. 머스크는 1억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한 시점에서 팰컨1의 3번째 발사 시도가 좌절됐을 때 "이 모든 것이 쌓여 ‘로켓학’이 될 것"이라며 직원들을 격려한 일화로 유명하다. 베이조스도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지금은 (적자가 나더라도)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져두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당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던 이들의 계획은 하나둘 실현되고 있다. 구글 맵만 봐도 알 수 있다. 위치 검색시 두 사람의 로켓에 실려 발사된 위성이 그 신호를 전달한다.

무엇보다 우주 산업에 돈이 몰리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중 25명 이상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한화그룹의 항공·방위산업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위성시스템 개발업체 쎄트렉아이를 인수하며 진출을 공식화했다.

그렇다면 우주 전쟁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머스크가 이미 앞서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신비주의 전략을 펼치는 베이조스가 언제 어떤 깜짝 발표를 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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