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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위로 만졌다면 신체 접촉 아냐".. 법원 무죄 판결에 인도 '공분'

김은경 기자 입력 2021. 01. 27. 14:15 수정 2021. 01. 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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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법원이 옷을 벗기지 않고 만진 것은 신체 접촉으로 볼 수 없다며 아동 성추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AFP 연합뉴스

26일(현지 시각) 미국 CNN 방송과 CBS뉴스에 따르면, 인도 뭄바이 고등법원의 푸슈파 가네디왈라 판사는 2016년 12월 구아바를 준다며 12세 여아를 집으로 데려온 후 가슴을 더듬고 속옷을 벗기려 한 혐의로 기소된 39세 남성 A씨의 아동 성추행 혐의에 대해 지난 19일 무죄 판결을 내렸다.

가네디왈라 판사는 A씨의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아이의 옷을 벗기지 않아 피부와 피부가 맞닿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아동성보호법(POCSO) 상 성추행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 “옷 위로 만진 건 신체 접촉으로 볼 수 없어”

2012년 제정된 인도의 아동성보호법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폭행(Penetrative Sexual Assault)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행위를 포괄적 성폭력 범죄로 규정하고 각각을 구분해 형사 처벌한다.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아동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는 성추행(Sexual assault)에 해당해 최소 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신체 접촉 없이 아동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몸짓, 소리를 내는 행위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으로 분류된다.

A씨는 하급심에서 아동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상의를 벗겼는지, 상의 안으로 손을 넣고 가슴을 더듬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12세 어린이의 가슴을 만진 행위는 성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신 A씨에게 성희롱 혐의만 적용해 징역 1년으로 형량을 대폭 줄였다.

가네디왈라 판사는 “범죄행위와 형벌의 심각성은 비례해야 한다는 게 형사법정의 기본 원칙”이라며 “(최소 징역 3년이라는) 처벌의 엄격성을 고려할 때, 재판부는 더 엄격한 입증이나 더 중대한 혐의가 요구된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 법조계·여성계 공분… “판사, 재교육 받아야”

판결이 알려지자 인도 법조계와 여성·아동 운동가, 시민들은 공분하고 있다.

인도 국가여성위원회는 “이번 판결은 인도의 모든 여성들과 여성의 안전을 위해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 조항을 조롱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앞으로 다른 법조항과 판결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식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 대법원의 카루나 눈디 변호사는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법에 완전히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는 직무를 정지하고 기본권을 재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인도 뉴델리에서 한 여대생이 버스 안에서 집단성폭행·살해된 이후 인도 정부는 엄격한 성범죄방지법을 제정했으나, 이후로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여성운동계와 외신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9월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한해 인도에서는 하루 평균 87건의 성폭행 사건이 접수됐다. 16분에 한 번 꼴이다. 이는 2018년에 비해 7% 이상 증가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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