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미화" 故 박원순 영결식 영상 지울 수 있을까..서울시는 자체 삭제

이소현 2021. 1. 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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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에 영결식 영상 일괄 삭제 요청 민원
1차 민원 '해당 없음', 2·3차 민원 '각하' 처리
방심위 "영결식 영상은 성희롱 미화 내용 아냐"
법조계 "국민법감정과 다른 점 아쉬워"
서울시, 26·27일 유튜브·홈페이지 영상 지워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성희롱 가해자가 해명과 사과 대신 죽음을 택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우려되며, 범죄자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고인의 영결식 영상을 온라인상에서 일괄적으로 삭제할 수 있을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시가 올린 영결식 생중계 영상에 대한 삭제 요청 민원이 재차 접수되면서 이와 관련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영결식 생중계 영상 한 장면(사진=TBS 캡쳐)
“성추행 혐의자 미화하는 일 결코 안돼”…세 번재 영상 삭제 요청

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범죄인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온라인 영결식 생중계 영상을 삭제 요청한 민원이 재차 접수됐다.

총 3차례 민원을 접수한 A씨는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던 고인을 기리려는 뜻은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고인을 미화하고 용인하는 일은 결코 자행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방심위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7조 3항 ‘범죄, 범죄인 또는 범죄단체 등을 미화해 범죄를 정당하다고 보이게 할 우려가 있는 정보를 유통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박 전 시장의 장례는 ‘서울특별시장 5일장’으로 치러졌는데 첫 번째 민원은 영결식 다음 날인 작년 7월 14일에 제기했다. 그러나 방심위는 작년 8월 31일 제63차 통신심의소위원회 정기회의에서 ‘범죄·범죄인 미화’ 조항 적용을 심의한 결과 ‘해당 없음’으로 결론 냈다.

당시 통신심의소위원회 5인 위원 중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추천 이상로 위원만 “위력에 의해서 성적으로 여성을 괴롭힌 사람에 대한 죽음이 미화돼서는 안 된다”며 ‘시정요구’ 의견을 내 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나머지 4인 정부·여당 추천인 강진숙·김재영·심영섭 위원, 바른미래당 추천 박상수 위원은 ‘해당 없음’ 의견을 냈다.

대체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가능성과 우려 대해서 공감했지만, 당시 박 전 시장을 ‘범죄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강 위원은 “형사절차상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고인이 범죄인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면서 “해당 게시물은 현 시점에서 범죄인을 미화하여 범죄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김 위원은 “고인의 과거 행적, 업적을 소개했다고 해서 확증되지 않은 범죄 행위 자체가 정당화될 만큼 시민의 분별력이나 사리판단력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원인 A씨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요청한 민원 현황(자료=디시인사이드 캡쳐)
◇인권위 “성희롱 맞다”…서울시, 영결식 영상 자체 삭제

두 번째 민원은 지난 14일 법원이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1심 선고에서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면서 의혹을 사실로 처음 인정한 날에 제기했다. 세 번째 민원은 지난 25일 인권위가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며 박 전 시장의 언동이 성희롱이 맞다고 판단한 다음 날 이뤄졌다.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법적으로는 공소권이 없지만, 법원과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비서 성희롱 의혹에 대해 ‘맞다’고 공식 인정했기에 방심위에서도 잇단 판단이 이어질지 주목됐지만, 결국 해당 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방심위 관계자는 “당시 심의 대상은 영결식을 중계한 영상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며 “성희롱에 대해 미화하거나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라 시장으로서 역할 수행부분이 담겨 있었기에 그 상황이 바뀌지 않았고 그 당시 판단 기준도 그렇게 결정했다. 추가 민원은 같은 내용으로 판단해 ‘각하’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방심위가 ‘국민 법감정’과 달리 판단한 부분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영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은 ‘공소권 없음’으로 법적으로 묻힌 사항이라 인권위 발표 등을 특별한 사실관계가 추가된 것으로 판단할지는 방심위 재량에 맡겨 둘 수밖에 없다”면서도 “법원과 인권위에서도 성희롱으로 인정한 만큼 이를 추가 변경사항으로 보고 국민법감정상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심위는 영결식 영상이 범죄인을 미화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서울시는 최근 해당 영상을 자체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영상이 게재된 서울시 공식 유튜브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각각 26일과 27일에 잇따라 지웠다. 이러한 결정은 영결식 주관부서였던 총무과에서 내부적 검토를 통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총무과 관계자는 “연도도 바뀌었고, 시민에게 충분한 정보제공이 됐다고 판단해 1월 중 검토하다가 지난 22일 영상 삭제 결정을 내렸다”며 “(법원과 인권위의) 발표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서울시가 영상을 제공해 언론사가 올린 영상은 현재 온라인상에 게재돼 있다.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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