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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년 에디슨이 우리에 던지는 메시지

입력 2021. 01. 27. 19:46 수정 2021. 01. 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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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 생태계연구소 소장·전 특허청 과장
정성창 지식재산과 혁신 생태계연구소 소장·전 특허청 과장

우리 사회에서 에디슨은 '어린 시절 거위 알을 품은 귀여운 아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발명왕'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에디슨이 발명을 위한 자금을 어디서 마련했으며 또 그 수많은 특허가 어떻게 산업에 활용되었는지는 별로 밝혀진 바 없다. 한편 미국 등에서는 에디슨을 발명가를 넘어 19세기 후반 주류였던 가스 조명 산업을 파괴하고 전기 산업을 창조한 혁신가로 다시금 조명하고 있다.

에디슨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선구자 중 대표적인 학자는 세계적인 과학 역사가 토머스 휴스다. 휴스는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전기 산업을 창조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에디슨을 기업가의 원조라고 평가했다. 일런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등 실리콘 밸리의 CEO들도 이구동성으로 에디슨은 자신들의 영웅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BBC는 실리콘 밸리의 기원은 에디슨이 1876년 미국 동부의 뉴저지주 외곽에 설립한 '멘로파크 연구소'라고 분석했다.

▲청년 에디슨은 특허에 기대어 전기 산업을 창조

20대의 청년 에디슨은 주변의 동료 등으로부터 연구자금을 유치하고 발명에 나섰다. 그러나 발명에는 뛰어났지만, 사업경험이 없는 에디슨은 망하기 일쑤였다. 오늘날 초보 기업가처럼 에디슨은 판로 개척 실패, 경영 미숙으로 파산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에디슨은 실패를 거울삼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팔리는 발명을 하기 시작했다. 에디슨은 이들 발명 특허를 5000 달러, 5만 달러 등에 매각하여 사업의 종잣돈을 불려 나갔다. 에디슨은 이렇게 모은 종잣돈으로 뉴저지의 외곽 한적한 마을인 멘로파크에 연구소를 설립했다. 멘로파크 연구소는 당시 미국의 어느 대학보다도 첨단 시설을 갖추었으며 기자들은 발명공장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의 제도와 환경

에디슨이 전기 산업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에디슨 자신의 역량만으로 그의 성공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에디슨이 살았던 당시의 토양과 분위기다. 19세기 미국은 정부의 연구보조금이나 창업지원 시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에디슨이 믿고 의지한 것은 특허제도였다. 미국은 산업 혁명의 모국인 영국보다 뛰어난 특허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했다. 에디슨이 태어나기 약 10년 전인 1836년 미국은 세계 최초의 현대식 특허청을 설립하고 심사제도를 도입했다. 후발 발명자가 앞선 발명자가 신청한 특허내용을 참고할 수 있도록 미국 전역에 특허도서관도 설치했다.

특허청의 설립과 더불어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법원이었다. 1820년에서 1829년 동안 특허 소송 판결 중에서 특허권자의 승소비율은 25%였으나 1840년에서 1849년 동안 특허권자의 승소율은 56%로 높아졌다. 특허권자의 승소비율이 높아지자 특허기술시장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특허 건수도 치솟았다. 1790년 미국이 특허법을 도입한 첫해에 미국의 특허 건수는 3건에 지나지 않았고 영국은 68건이었다. 하지만 50년 뒤인 1840년에 이르면 미국의 특허 건수가 458건으로 영국의 440건을 제쳤다. 에디슨이 본격적으로 발명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인 1870년에 이르면 미국의 특허 건수는 무려 1만 2,137건으로 증가해 영국의 5.6배에 이르렀다. 1870년 미국의 1인당 GDP는 영국의 75% 수준에 불과했으나 1913년에는 영국을 추월하여 세계적 산업국가로 부상하였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농업국가 미국이 산업국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특허제도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에디슨은 이처럼 혁신하기 좋은 토양이 있었기에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발명의욕이 불타오르도록 국회가 나서고 지도자가 나서야 한다.

우리는 150년 전 에디슨이 꿈을 펼치던 시대보다 혁신하기에 더 좋은 시대를 살고 있다. 2013년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투자는 GDP 대비 4.15%로 이스라엘을 제치고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벤처캐피털 투자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마포, 인천의 송도, 대전 등 전국 규모에서 스타트업 타운도 조성 중이다. 이러한 보이는 제도나 정책과 비교해 지식재산 분야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고 있지 못하다. 물론 그간 변화와 진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식재산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특허 사법 제도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산학협력은 잘 안 되고 기술 이전은 실속이 없다' '특허소송에서 이겨도 손해배상은 쥐꼬리다' '특허가 싸구려고 쓸만한 특허가 드물다' '좋은 특허가 있어도 자금을 빌리기 어렵다' '특허 도둑이 판치고 기술탈취가 횡행한다' 등의 이런 문제들을 풀지 못하면 에디슨 꿈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국회가 나서고 대학 총장이 나서고 서울시가 나서고 대전시가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전국에서 발명의욕이 불타올라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발명과 지식재산 사령탑이 필요하다. 특허청을 개편하여 지식재산부를 만들자. 그리고 이 새로운 기관이 연구개발, 창업, 금융, 교육, 사법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의 근본을 살펴보고 해법을 내놓도록 하자. 지금 우리는 K 방역으로 자신감이 높다. 변화를 추구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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