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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 속에 숨겨진 어린 시절 상처..들여다보면 모두의 이야기"

이혜인 기자 입력 2021. 01. 2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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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 출연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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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에서 둘째 미연(문소리·왼쪽 사진)은 갈등이 생겨도 외면하고 아무 일 없는 듯 군다. 영화 속 세 자매(오른쪽) 모두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마음 깊이 품고 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고통과 갈등을 감추고 외면하면서
흠결 없이 완벽해 보이는 둘째역
주연 배우이자 공동제작자로 참여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넘긴 것들
진정한 사과가 많은 것을 바꾸죠”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27일 개봉한 영화 <세자매>에서 둘째 미연을 소개하는 표현이다. 그의 삶은 흠결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인다. 미연은 잘나가는 교수 남편을 둔 두 아이의 엄마다. 교회에서는 집사이자 성가대 지휘자를 맡고 있다.

그는 항상 반듯하다. 머리는 늘 하나로 곧게 묶는다. 귀에는 진주 귀걸이를,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건다. 남편의 외도가 의심돼 감정이 격해질 만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띤 채 눈썹만 치켜올려 표현하며 아무 일 없는 듯 군다. 갈등과 문제는 무엇이든 외면하고 보는 미연의 모습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가족 내에서 겪었던 고통과 상처, 폭력을 직시하는 대신 내면에 숨기는 연습만 하면서 커왔다. <세자매>의 이승원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 대해 “결국 모든 걸 관통하는 한 가지는 정작 자신은 그 안에 감추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미연은 그 설명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다.

미연은 배우 문소리가 연기했다. 문소리는 <세자매>의 주연배우이자,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배우 문소리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미연은 실제 저와는 매우 다르지만, 저의 내면 중 한 부분에 비슷한 구석이 있죠.”

문소리의 종교는 불교다. 이번 작품 이전엔 교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연에 대해 알기 위해 미연의 삶의 기반이자 모든 인간관계가 모여있는 ‘교회’라는 공간부터 먼저 이해해야 했다. 문소리는 영화 속에서 미연의 언니·동생 역할을 한 김선영·장윤주 배우가 실제로 다니는 교회를 따라가보기도 하고, 혼자서 몇 달간 동네 교회도 다녔다. 그러면서 미연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그 경험이 문소리에게는 힘이 들었다.

“미연이처럼 스스로 닦달하는 것. 그런 면이 제가 미연과 좀 닮아있는데, 제가 썩 좋아하는 부분이 아니에요. 사실 좀 내보이기 싫고, 숨기고 싶은 부분이거든요. 이 인물이 누군지 핵심을 분명 알겠는데, 너무 잘 알아서 짜증나는 심정이었죠. 그래서 맘을 좀 ‘끌탕하다가’(속을 태우고 고민하다가) 캐릭터랑 만났어요.”

<세자매>에 대한 문소리의 애정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각별하다. 작품성이야 의심할 바 없지만, 세 여성이 주연인 데다 가벼운 오락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장벽이 돼 초반에 투자가 잘 안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 심사에서도 떨어졌다. 초반에 제작상황이 순조롭지 않을 때 공동 제작자 제의가 왔고, 문소리는 바로 수락했다.

“저는 <세자매>의 이야기가 결국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때 굉장히 극적인 구성을 많이 하잖아요. 사람 몇명이 죽어나가기도 하고, 때로 지구까지 폭파되고요. 그런데 저희는 그와 반대의 이야기죠. 시작이 되는 사건은 별일이 아닐 수 있는데 그것들이 사람 맘속으로 들어와서 헤집어 놓는 순간,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영화 속에서 첫째 희숙(김선영)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연일 “미안하다” “괜찮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둘째 미연은 가식이 일상인 삶을 살고, 셋째 미옥(장윤주)은 슬럼프에 빠져 365일 술만 먹으며 다정한 남편을 막 대한다. 얼핏 보면 ‘왜 저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다 잊고 지냈다 생각했던 어린 시절 가족과의 일화들을 들여다보는 순간 세 자매의 삶이 이해가 된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의도치 않게 다른 구성원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세자매>를 보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배우를 포함한 영화 스태프들은 다른 촬영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족 이야기를 수시로 나눴다. 문소리는 “스태프들끼리 ‘저희집은요’ ‘저희 아버지는요’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고 하더라”면서 “식구들은 아무도 기억 못해도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었다”고 했다. 또 “저희 아버지도 지금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실 정도로 변하셨지만, 예전에 저 역시 가부장적이고 굉장히 엄격한 문화 안에서 컸다”면서 “작품을 찍으며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갈등을 말하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문소리는 “영화를 보고 나면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 그러려니했던 것들에 대해 진정한 사과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가족 간의 진정한 사과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이,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치유하고 견뎌내게 하는 힘이 되겠지만 저는 ‘관계’만큼 치유의 힘이 큰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치유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니까요.”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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