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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공재개발 후보지 '용두1-6구역' 가보니..신속공급 추진에, 세입자들 "장사 시한부 선고" "이사 막막"

글·사진 김희진 기자 입력 2021. 01. 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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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수산시장 끝자락
도매상에 드리워진 그림자
"올 게 왔다" 한숨만 푹푹

[경향신문]

정부가 공공재개발 지역을 선정하면서 해당 지역에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살아온 상인과 주민들은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공사가 시작되면 살 집은 구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지난 25일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동대문구 용두1-6구역에 속한 청량리 수산시장 주변과 신설1구역 주택가 골목(오른쪽)이 한산하다. 김희진 기자
“보상은 제대로 받을지
당장 어디서 살아야 하나”
집주인들도 ‘전전긍긍’

“우린 외국산은 안 팔아. 다 국산 민어!” (쿵쿵) “두 마리 4만원인데 3만5000원까진 해드릴게.” (깡깡) 지난 25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수산시장 모퉁이에 자리 잡은 수산물 도매상인 A씨가 손님과 민어값을 흥정하는 내내 공사 소음이 끼어들었다.

청량리 수산시장은 공공재개발 후보지 중 하나로 선정된 용두1-6구역에 있다. 40여개 가판대가 마주 보고 늘어선 시장 동쪽엔 40층, 남쪽엔 59층짜리 주상복합단지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청량리 일대 ‘최대 호재’로 각광받는 건물들이 올라가면서 쪼그라든 수산시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최근 공공재개발 후보지 선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상인들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올 게 왔다” 싶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5일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 8곳을 선정했다. 공급 확대 ‘신호탄’에 매수 문의가 빗발쳐 일대 빌라값이 뛰고 일부 주민은 손익을 따져 매물을 거둬들였다. ‘신속 공급’ 공언에 시장은 호재를 점치기 바빴지만, 후보지에서 긴 세월을 보낸 세입자와 상인들은 그만큼 빨리 생업에서 내몰릴까 우려가 앞섰다. 지난 25일 용두1-6, 신설1 구역을 찾았다.

생선을 파는 박창식씨(55)가 동쪽 ‘해링턴 플레이스’ 아파트 재개발 공사현장을 보며 말했다. “공공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장사를 3년은 더 할 수 있을지…. 우리는 한마디로 시한부예요.” 그는 옛 수산시장 터에 ‘해링턴 플레이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용두1-6구역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는 30년 넘게 일한 자리에서 2300만원 남짓 보상금을 받고 자리를 옮겼다. 박씨는 ‘공공’재개발이라고 해도 제대로 보상받을 것이란 기대는 없다고 했다.

20년 넘게 이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 김모씨(76)도 공공재개발 소식을 마냥 반길 순 없었다. 김씨가 지내는 빌라는 1980년 준공돼 물이 잘 안 나올 정도로 낡았다. 빌라 주민 일부가 공공재개발 신청에 적극 나섰지만, 여덟식구가 함께 사는 김씨는 당장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막막하다. 김씨는 “이 동네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고 오래 산 노인들이 많다”며 “보상은 어떻게 될지, 집은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신설1구역의 경우 외곽 도로변 상가는 규모가 크고 대부분 세입자가 들어선 반면, 안쪽 주택가엔 ‘단기임대 구함’ ‘보증금×월세 34만원’ 등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자동차 한 대 들어가기 어려운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빛바랜 철문이 달린 노후 주택이 이어졌다.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역세권 지역이라 안쪽 주택가는 공공재개발을 반긴다”면서도 “큰 지분을 가진 도로변 상가 등은 실익이 적다며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려온 공구상가·봉제공장 상인들에게도 불안감은 마찬가지다. 주택가 반지하에서 봉제 작업장을 30년 가까이 운영해온 김모씨(75)는 “세 들어 지내는 우리는 재개발이 된다면 나갈 수밖에, 선택권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정부는 원주민 내몰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분형주택, 수익공유형 전세주택 등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5·6대책’에는 공공임대 입주자격을 늘리고, 대체 영업지인 공공임대상가를 조성하는 등의 방안도 담겼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세입자를 위한 공공임대 물량이 민간재개발보다는 많이 확보될 것”이라고 했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정부는 공공이 재개발에 나선다고 ‘신속’만 강조할 게 아니라, 세입자 보호 강화와 공공성 확보 등 제도적 부분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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