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국경제

[전영범의 별 헤는 밤] 한겨울 밤하늘의 '붉은 장미'

입력 2021. 01. 28. 00:07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한겨울 해발 1100m 고지의 천문대에선 코로나19 문제가 아니어도 고립된 생활을 한다. 외롭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할 시간이 많고, 외부 간섭이 줄어들어 별 보기도 더 좋다.

한 천문 강연 후 질문받는 시간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천문학을 하면 뭐가 안 좋아요?”라고 했다. 참 자유로운 발상이었다. ‘뭐가 좋으냐’는 질문은 자주 받았지만 ‘뭐가 안 좋은가’ 하는 질문은 받은 적이 없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재미있는 질문이라 반가우면서도 답변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답할 시간을 벌기 위해 “특별히 나쁜 점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을 천천히 길게 하면서 머릿속으로 답변을 정리해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굳이 꼽으라면…” 하면서 또 생각해 봐도, 생각이 잘 안 났다. 답을 하면서 계속 ‘이걸 언제까지 고민하지?’를 고민했다. 결국 천문학을 하면서 좋았던 여러 가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시간만 끌고, 뭐가 안 좋으냐는 질문에는 적당한 답을 못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천문학을 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이미 교육받았거나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과학자가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는 아니다. 천문학을 하고 부자가 됐다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굶고 있는 사람도 없다. 실제로 천문학 연구는 참 재미있고, 천문학으로 인해 필자의 지나온 삶이 참 풍성해진 듯해 이런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삶을 풍성하게 하는 천문학 연구

장미성운. /전영범 제공

막연한 생각에 하는 주변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과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머잖아 25m 거대마젤란망원경(GMT) 시대가 열린다. 30m, 39m 망원경 시대도 동시에 열릴 것이다. 허블우주망원경보다 훨씬 큰 6.5m 구경의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천문학 연구 인력은 이들을 충분히 활용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그만큼 천문학을 할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다. 1년에 10명씩 채워도 100명을 늘리는 데 10년 걸린다. 현대 사회에서 10년이면 완전히 뒤처지는 기간이다. 천문학을 하면 이제는 너무 많은 연구 자료에 치여서 힘에 겨운 게 안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천문학자는 새로운 데이터를 얻는 즐거움에 밤을 새우며 연구할 것이다.

겨울밤, 추워서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지만 초롱초롱한 별의 꼬임에 빠져서 못 참고 나서면 옅은 은하수가 머리 위를 가로지르고 겨울철 별자리가 동쪽 하늘 위로 높게 올라와 있다. 언 땅을 조심조심 걸어서 서쪽 봉우리(동쪽 봉우리는 1.8m 망원경이 있어서 야외 활동을 위한 출입을 자제한다)까지 가면 영천의 도시 불빛이 환하게 올라온다. 산 아랫마을에서도 많은 불빛이 올라온다. 하늘이 어두워야 별을 더 잘 볼 수 있기에 잠시 째려보다가 고개를 들어 버린다.

겨울 별자리 사진에는 빨간 가스 구름이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그중에서 오리온자리 왼쪽 외뿔소자리에 있는 장미성운은 지상의 장미꽃보다 더 아름답게 빛난다. 여러 번 관측했지만 언제나 신비롭고, 어떻게 담는 게 더 좋을지 계속 욕심을 내 보게 되는 천체다. 길을 가다가 활짝 핀 장미꽃을 보면 색상이 조금 더 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고, 어떨 땐 조금 더 폈으면 싶고, 지고 있는 꽃잎의 끝이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때로는 약간의 습기를 머금어서 평소보다 훨씬 짙게 보이고, 한 송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다른 무리에 섞여 있어도 그 모습이 두드러져 보인다.

마찬가지로 삼색합성으로 색을 얻는 하늘의 장미성운은 필터의 조합과 각 필터 간 노출량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형태로 바뀐다. 더불어서 망원경의 관측 시야각에 따라 장미의 속을 들여다보는지 아니면 주변 모습까지 다 볼 수 있는지 결정되고, 무엇보다 대기 상태에 따라 별의 초롱초롱함과 성운의 색상 등이 또 달라진다.

 외뿔소자리에 두드러진 장미성운

하지만 어느 게 더 아름다운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망원경을 통해 맨눈으로 보면 희미한 구름에 싸여서 밝은 별들이 잘 보인다. 이들은 성운 가운데의 산개성단이다. 산개성단은 별이 느슨하게 모여 있는 집단이며, 이 성단은 장미성운의 가스로부터 탄생했다. 사실 가스 성운은 별을 만드는 공장이다.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으로 장시간 촬영한 영상에서는 2500개 이상의 새로 태어난 많은 별을 볼 수 있다.

장미성운은 중심부에서 별이 만들어지면서 가스가 소모되고 밀려나 텅 빈 구의 형태가 됐는데, 우리가 볼 때는 원형으로 둘러싼 듯 보인다. 그 모습이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갑자기 내린 눈에 더 고립되니 찍어 놓은 사진들을 모아서 1월에 핀 장미성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 한국경제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s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