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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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응답하라 1998

유지혜 입력 2021. 01. 28. 00:17 수정 2021. 01. 28.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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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팀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드러낸 대일본관의 변화는 놀라웠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2019년 8월 임시 국무회의)이라며 휘두르던 채찍이 불과 1년 반 만에 “과거사는 과거사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은 그것대로 해야 한다”는 올리브 가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올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는 두드러진다.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 도쿄 올림픽을 남·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으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종일관 밀기만 하다 갑자기 당기려 하니, 일본은 오히려 당황하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한 일본 인사는 “갑자기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죠?”라고 되물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부의 공식 합의였음을 인정한다”며 이를 토대로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이를 보며 2014년 아베 정권의 고노담화 검증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위안부 동원에 군이 관여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 발표 과정을 검증했고, 진정한 사과가 아닌 한·일 간 정치적 주고받기의 산물인 것처럼 폄훼했다. 그래놓고선 “그래도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결론내렸다. 당시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의 반응은 이랬다. “계승은 한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거 참….”

문재인 정부도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를 검증했다. “하자가 중대하다”며 있는 대로 흠집을 냈는데, 결론은 “재협상은 안 한다”였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낸 10억엔의 지급을 중단해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일본이 이제 와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지 못한대도 이해는 간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국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면서도 성공의 경험을 만들어낸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그것이다. 당시 오부치 총리가 식민 지배를 사죄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이며 일본의 전후 평화 복원 노력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일본과 새판짜기를 시도하며 유념할 것은 이처럼 양국 지도자들의 결단에 녹아 있는 상호 존중이다. 정부가 이를 되새기지 않으면 아무리 의욕을 보여도 ‘나 홀로 밀당’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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