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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정체성 희미한 윤범모 관장의 2년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입력 2021. 01.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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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9년 개최된 국립현대미술관 광장전 장면.

2019년 임기를 시작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취임 전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고위공무원 역량평가에서 탈락하고도 다시 기회를 부여받아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고 ‘코드 인사’라는 의심까지 샀다. 더구나 윤 관장은 정권이 바뀌자 촌스러운 관장 공모 형식은 폐기해야 한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적극적으로 공모에 응해 자가당착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결과적으로 윤 관장의 과거는 현재의 그를 궁색하게 만들었다. 한국 미술계를 이끌 주요 기관의 수장을 뽑는 과정에서 발생한 특혜 시비에 대한 명쾌한 해명 없이 임명장을 받아, 미술계의 구조적 문제들과 부조리·불공정·반민주적인 세태를 꾸짖던 진보 지식인으로서의 위치와도 멀어졌다.

그럼에도 미술계 일각에선 이미 임명이 결정된 이상 지켜보자는 시선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 또한 평가 쪽으로 기울었다. 그로부터 2년. 굳이 평가하자면 윤범모 관장 체제 아래에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외형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성장했지만 내용 면에선 이렇다 할 이슈를 생성하지 못했고, 공론의 장 마련도 괄목할 만한 건 없었다.

심지어 윤 관장이 유독 강조한 몇몇 전시는 아예 취소되거나 진척조차 되지 않았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리투아니아관의 퍼포먼스 작품 ‘해와 바다’는 결국 무산됐고, 취임 초 밝힌 북한 공적 기관과의 교류를 통한 소장품 전시와 북한 공동 기획 특별전은 아무 성과도 못 냈다. ‘해와 바다’야 코로나19라는 핑계라도 있지만, 북한미술전은 정권의 이상향에 기댄 비현실적인 계획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관임에도 ‘현대’가 아닌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요인이다. 올해만 해도 박수근, 백남준 등 근대 및 작고 작가들의 전시가 포진해 있다.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1940년대가 중심이다. 이외에 1970년대 모노크롬 운동에 가담한 단색화 작가인 정상화 전시회를 비롯해 윤 관장처럼 민중미술계열로 분류되는 황재형 개인전도 열린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다룬 ‘코로나19, 재난과 치유’와 같이 시기적절한 기획전도 있다. 작년엔 서예와 판화전 등 소외 장르를 무대에 올려 주목받았다. 하지만 아직 코드 인사, 공정성 시비를 불식시킬 정도는 아니다. 혁신적 새로움이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체성에 관한 물음표 역시 유효하다. 윤 관장의 남은 임기는 1년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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