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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를 통한 창조[이은화의 미술시간]〈147〉

입력 2021. 01. 28. 03:02 수정 2021. 01. 28.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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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스름한 분홍 캔버스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1947년 '공간주의'라는 미술운동을 창시한 폰타나는 2년 뒤부터 캔버스 화면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붓 대신 송곳과 칼을 들고 캔버스를 훼손하는 물리적 행위로 만든 새로운 형식의 회화이기도 했다.

폰타나가 작은 송곳 하나로 틀에 갇힌 미술의 관념을 해방시켰듯, 우리도 낡은 사고나 습관, 혹은 답답한 마음을 확 뚫어 줄 각자의 연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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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초 폰타나 ‘공간 개념, 신의 종말’, 1963년.
둥그스름한 분홍 캔버스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송곳이나 칼로 찌르고 그은 흔적이 역력하다. 그림을 망쳐서 버리려 했거나 화풀이했나 싶지만, 놀랍게도 이게 완성작이다. 심지어 경매에서 수백억 원에 거래되는 몸값 높은 명화다. 궁금해진다. 화가는 왜 캔버스에 구멍을 낸 걸까? 이게 도대체 왜 예술이란 말인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활약했던 루초 폰타나는 이렇게 구멍을 뚫거나 칼로 자른 그림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조각가 아버지 덕분에 일찌감치 조각가로 훈련받았으나 전통예술에 대한 반감이 컸다. ‘회화와 조각은 과거의 것’이라 여겼기에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형식의 미술을 추구했다. 1947년 ‘공간주의’라는 미술운동을 창시한 폰타나는 2년 뒤부터 캔버스 화면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2차원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공간 개념’으로 명명된 이 연작들은 전통 회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대상을 실제처럼 그리기 위해 씨름해왔다. 하지만 폰타나는 평면 위에 이미지를 그리는 대신 진짜 공간을 만들어 버렸다. 이는 회화와 조각, 건축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개념의 예술이었다. 붓 대신 송곳과 칼을 들고 캔버스를 훼손하는 물리적 행위로 만든 새로운 형식의 회화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사각의 틀도 깨버렸다. 계란형 캔버스 위에 단색을 칠한 ‘신의 종말’ 연작을 제작했다. 이 그림에 칠해진 분홍도 전통 회화에서는 쓰이지 않는 색이다. 그림 제목은 수세기 동안 신앙처럼 지켜져 왔던 미술의 규범과 오랜 관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 터. 혁신은 낡은 것의 파괴를 통해 나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간이든 사고든 막히면 답답해진다. 물이라면 썩는다. 이럴 땐 돌파구가 필요한 법. 폰타나가 작은 송곳 하나로 틀에 갇힌 미술의 관념을 해방시켰듯, 우리도 낡은 사고나 습관, 혹은 답답한 마음을 확 뚫어 줄 각자의 연장이 필요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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