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동아일보

AI시스템, 드라이브스루 맞선.. 눈물겨운 日의 저출산 대책

김범석 도쿄 특파원 입력 2021. 01. 28. 03:03 수정 2021. 01. 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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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AI에 짝 찾기 맡기는 日지자체
비대면 시대 '드라이브스루 만남'
30년 노력했지만 신생아 수 최저
고령자 비율 증가로 사회적 비용 커져
지난해 12월 23일 사이타마현 우리와시 ‘사이타마만남서포트센터‘에서 42세 남성 다나카 씨가 상담을 받고 있다. 사이타마현은 2년 전부터 AI 중매 프로그램을 도입해 현재까지 37쌍을 결혼시켰다. 사이타마=김범석 특파원
김범석 도쿄 특파원
지난해 12월 23일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의 ‘사이타마만남서포트센터’. 민관 합동으로 인공지능(AI) 중매 서비스를 도입해 주민들의 결혼을 도와주는 곳이다. AI 알고리즘은 민간 회사 ‘타메니’에서 개발했고 이를 각 지방정부가 도입해 운영을 맡는 구조다.

이곳을 찾은 42세 남성 직장인 다나카(가명) 씨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46개 항목)과 상대에게 요구하는 가치관(66개) 등을 입력하느라 바빴다. ‘남들보다 지식이 많다고 생각한다’(A)와 ‘동료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B) 중 본인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을 고르는 식이었다. 잠시 후 화면에 ‘짝을 찾아 드리겠습니다’란 문구가 나타났다. 설문 결과를 토대로 AI 시스템이 다나카 씨에게 어울릴 여성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다나카 씨는 기자에게 “지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소개를 받았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올 때는 주선자와의 관계 등을 감안해 어떻게 거절할지 난처했는데 AI는 그런 스트레스가 없어 좋다”고 말했다.

○ ‘AI 중매’에 정부 예산 214억 원 투입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 사이타마현 외에도 아키타현 등 10개 지자체가 AI 중매 체계를 도입했다. 2018년 10월에 이 시스템을 도입한 사이타마 당국은 현재까지 총 37쌍을 결혼시켰다. 2년간 매주 1명의 상대를 골라주는 비용이 1만6000엔(약 17만 원)에 불과해 부담도 크지 않은 편이다.

아야타 다카코(綾田貴子) 사이타마만남서포트센터 담당자는 “AI 시스템이 나이나 연봉 등 조건이 아닌 가치관이 맞는 상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찾아주고 있다”며 “의외의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결혼한 40대 남성과 30대 여성은 외모 등은 서로의 이상형이 아니었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파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져 결혼에 이르렀다고 했다.

예상외의 성과에 지자체들도 고무적이다. 특히 혼인율 ‘만년 꼴찌’인 아키타현에서도 최근 커플이 탄생했다. 요시다 겐이치(吉田賢一) 사이타마현 복지부 저출산정책과 담당 역시 “주변인 소개는 학연 지연 등에 치우칠 때가 많은데 AI는 완전히 다른 환경의 상대를 찾아줄 때가 많아 회원들도 그 의외성을 반긴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지원도 상당하다. 일본 정부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결혼진흥 사업을 펼치는 지자체에 올해 20억 엔(약 214억 원)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 드라이브스루 맞선·팟캐스트 공개구혼

갖가지 저출산 대책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규슈 지역 구마모토현에서는 ‘드라이브스루‘ 형태의 맞선 이벤트도 등장했다. LMO 회사 홈페이지 캡처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규슈 지역 구마모토현의 한 결혼식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고려한 비대면 맞선 행사가 등장했다. 각각 1명의 남성이 탄 차량 6대가 줄지어 있고 반대 방향에서는 여성이 1명씩 탄 차량 6대가 접근해 서로 창문을 내리고 차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날도 한 커플이 탄생했다.

참가자 중 한 명인 30대 여성은 비록 커플은 되지 못했지만 매우 만족했다는 후기를 밝혔다. 그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상대의 모습과 적당한 거리감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행사 역시 지자체와 규슈의 결혼서비스 업체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주최 측은 최근 팟캐스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구혼 서비스도 출시했다. 참가자가 결혼 상담사와 이상형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이 녹음 파일을 팟캐스트로 공개하는 형태다. 참가자들은 “결혼 상담사가 DJ인 라디오 프로그램에 구혼자가 출연한 느낌” “팟캐스트라는 디지털 방식과 아날로그 감성을 결합했다”며 반기고 있다.

○ 30년 노력했지만 출산율·혼인율·신생아 수 곤두박질

일본 내각부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저출산 현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합계출산율(여성 1인당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이 1.91 이하로 떨어진 1975년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국민생활백서’ 내 ‘저출산 사회의 도래, 그 영향과 대응’이라는 제목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계기는 3년 전인 1989년 이른바 ‘1.57 쇼크’ 사태로, 당시 합계출산율이 1.57로 급감하며 전후(戰後) 최저치였던 1966년(운명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던 말띠해로 출산을 꺼렸던 해) 1.58의 기록을 경신하며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저출산’을 지칭하는 ‘쇼시카(少子化)’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요 지자체가 AI, 드라이브스루 등의 수단까지 총동원한 것은 역설적으로 일본의 저출산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1974년 2.05명에 달했던 일본 출산율은 2019년 1.36명으로 하락했다. 1973년 209만 명이 넘었던 신생아 수도 2019년 86만5000명으로 줄었다. 올해 추정치는 78만4000명에 불과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결혼 외 관계에서 태어나는 자녀가 극히 드물다. 출산율 하락의 직접적 원인이 결혼 감소라는 의미다. 1970년 103만 건에 육박했던 결혼 건수는 2019년 절반 수준인 58만3000건으로 대폭 줄었다. 일본 언론은 코로나19 여파로 대면 만남이 대폭 줄어든 지난해 수치는 2019년 수치보다 낮아 사상 최저치를 경신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보도했다.

일본인은 왜 결혼을 하지 않을까.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연구원은 “비정규직 증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 등으로 미혼 남녀의 증가, 초혼 연령의 상향화 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거품 경제 붕괴 전에는 대다수 일본 기업이 평생 고용을 보장했다. 하지만 2002년 29.4%였던 비정규직 비율은 2019년 38.3%까지 올랐다.

구마노 히데오(熊野英生) 다이이치세이메이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교육 무상화, 불임 치료 지원 등 기혼자 위주의 저출산 해법을 지금처럼 미혼 남녀의 결혼 장려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정부가 뒤늦게라도 미혼 남녀의 결혼 지원에 나선 것이 다행”이라며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 또한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회적 비용

저출산의 여파는 사회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일본은 2006년 세계 최초로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는 한 해 전보다 30만 명 증가한 3617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8.7%까지 올랐다. 특히 70세 이상 비율 또한 22.2%에 달한다. 아사히신문은 “2040년에는 65세 고령자 비율이 전체의 35%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75세 이상 고령자의 의료비를 조달하기 위해 1년간 ‘현역 세대’로 불리는 젊은층(만 20∼60세)이 내야 하는 비용이 지난해 6조8000억 엔(약 72조5400억 원)에서 2025년 8조2000억 엔(약 87조48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도 인당 연 6만3000엔을 부담해야 하지만 이 돈이 8만 엔으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국민들 또한 사회보장제도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공익재단법인 ‘일본여론조사회’가 지난해 10월 전국 18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3%가 “의료비, 연금 등의 현행 사회보장제도가 유지될지 안심할 수 없다”고 답했다. 4년 전 조사(72%)보다 11%포인트 올랐다. 그 이유로 ‘저출산의 영향으로 사회보장 체제를 지탱해 줄 사람이 줄고 있다’(37%), ‘고령화로 사회보장비용이 증가하고 있다’(26%) 등을 꼽았다.

저출산 여파로 일부 명문 사학은 합병까지 단행하고 있다. 최근 게이오대와 도쿄 치과대가 2023년 4월까지 각각의 치대를 통합하는 협의를 시작했다. NHK는 대학에 진학할 18세 인구가 감소하면서 전국 600여 개 사립대 정원의 30%가 미달하는 등 사립대 경영이 매우 어려우며 합병 논의 또한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전했다.

노동력의 만성 부족 또한 심각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노동력 수혈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2019년 기준 일본 내 외국인 노동자는 165만9000명으로 10년 전(56만3000명)보다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들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전문직부터 단순 노동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년간 사실상 외국인 신규 입국이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어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후지나미 다쿠미(藤波匠) 일본종합연구소 연구원은 “지금까지의 대책으로는 타개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저출산이 심각하다”며 부모에게 아동수당을 주듯 젊은층을 위한 대담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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