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너 거기 있니"가 주는 위로

조춘애 광명고 교사 2021. 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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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온라인 무기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수업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과 함께한 올해 나의 수업이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지,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온라인 수업을 할 때, 비디오를 꺼놓는 학생이 많아서 나는 매번 출석을 확인할 겸 ‘정연이~ 건우~’ 이런 식으로 학생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고, 학생이 대답하면, 다시 ‘네’라고 확인해주었는데, 자기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리며 친구들의 존재에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머무는 이 시간이 나는 참 따뜻하고 좋았다.

설문을 받아보니 선생님이 매번 이름을 불러주어 너무 좋았고, 그날 수업이 편안해졌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고맙게도 학생들 또한 매번 자기 이름이 불리는 것을 통해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배우고 느꼈던 것이다. 학생들이 작성한 문장은 하나하나가 그들이 실제로 어디에서 배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자를 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모르는 단어나 한문 문장의 의미를 스스로 추측해보게 되었어요. 공자나 노자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어 좋았어요.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나를 달라지게 하는지 알았어요.’ 학생들이 배웠다고 느끼는 것은 지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전과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자신에게 어떤 새로운 이해나 인식의 변화가 생겼는지, 그리고 자신을 기쁘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마이클 폴라니는 지식을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으로 구분했는데, 암묵적 지식이란 말로 잘 설명하기 어려운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앎이며, 이러한 암묵적 지식이 형식을 갖추어 겉으로 표현된 것을 명시적 지식이라 하였다. 모든 명시적 지식은 사실은 암묵적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지식은 저기 저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앎이고 배움이다. 실용과 기술의 영역은 좀 다르지만, 개인과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이 암묵적 지식이며, 학생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영역도 바로 이곳이다.

마찬가지로 의미에도 암묵적 의미와 명시적 의미가 있다. 얼마 전 온라인으로 졸업식을 마친 한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화 도중 내가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좋은 경험도 많이 하렴” 이 말에 그 친구가 웃으면서 “선생님, 제 젊음이 망할까봐 걱정되세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그 아이의 영민함에 크게 웃었다. 사실 내 마음속에는 이 착하고 예쁜 아이의 삶이 잘 펼쳐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고 그 아이는 겉으로 드러난 나의 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두려움’이라는 암묵적인 의미를 듣고 배운 것이다.

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할 때도, 우리는 그 상황의 암묵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우리가 겉으로 표현되는 말과 행동 속에 담긴 암묵적 의미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면, 자신과 파트너, 자녀와 학생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도 좀 더 풍성하고 실제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잘 듣지 못했던 내면의 의미에 귀를 기울이면서, 긴 방학 동안 학생들이 가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되기를 바란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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