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남정욱의 영화 & 역사] "후퇴? 우리는 다른 쪽으로 진격 중이라고!"

남정욱 작가 입력 2021. 0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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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eat, Hell'
6·25 개입 중공군 12만, 미군 격멸 노려 영하 30도 혹한 속 총공세
美, 장진호 전투서 1만8000여 명 희생하며 中 5만명 전투 불가 빠뜨려
'혈맹 상징' 생존자 작년 말 77분 뿐.. 은혜 갚을 기회 얼마 남지 않아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철수하던 미 해병들이 눈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맥아더는 군신(軍神)이 되었다.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을 명령하면서 그는 군대를 둘로 쪼갰는데, 8군은 서쪽으로, 10군단은 동쪽으로 올려 보냈다. 명백하게 이상한 진격이었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전쟁의 신이 짠 작전인데 어딜 감히. 이유가 있었다. 원래 10군단은 인천상륙작전 지휘를 목적으로 만든 부대다. 작전이 성공했으면 8군 휘하로 들어가야 정상인데 맥아더는 10군단을 도쿄에서 자신이 직접 지휘해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고질병인 명성 중독. 덕분에 두 군대는 100킬로미터 간극을 두고 고립된 채 적과 싸워야 했다.

맥아더도 할 말은 있다. 그는 패잔병을 쫓고 있었지 중공군을 상대하는 전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10월 15일에 있었던 웨이크섬 회동에서 맥아더는 중공의 개입 여지를 묻는 트루먼의 우려를 일축했다. 그 시간 이미 12만 중공군이 북한에 들어와 있었고 마오쩌둥은 린뱌오가 건강을 이유로 고사한 총사령관 자리를 누구에게 줄까 고민 중이었다. 사령관직은 펑더화이에게 돌아갔고 그는 10월 말 다소 소극적인 1차 공세로 간을 본 후 본격적으로 미군 박멸 작전을 준비한다. 그게 11월 27일부터 2주일간 미군 3만명과 12만 중공군 사이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다.

흔히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2대 동계 전투라고 하지만 장진호 전투는 차원이 다르다. 규모가 아니라 추위가 그랬다. 스탈린그라드는 대도시다. 춥다고는 하지만 살만하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 있는 것이다. 미군이 장진호 남쪽에 진입했을 때 기온은 영하 8도였고 체감온도는 무려 영하 19도였다. 그나마 그날은 장진호 전투 기간 중 아주 따뜻한 날이었다. 수은주가 영하 30~40도로 쑥쑥 내려가면서 지상의 모든 것이 얼었다. 얼음덩어리나 다름없는 전투식량을 억지로 욱여넣은 병사들은 설사에 시달렸고 항문에는 동상이 찾아왔다. 좋은 점도 있었다. 즉사하지 않을 경우 과다 출혈로 죽는 게 총상인데 피가 얼어붙어 지혈 효과만큼은 확실했다(이걸 위로랍시고 하고 있으니 당사자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당시 미군 부상병의 회고는 비현실을 넘어 엽기적이다. “네이팜탄 폭격으로 다리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데 오랜만에 따뜻함을 느꼈다.” 그나마 동계 전투 준비를 한 미군이 이 정도였으니 운동화 신고 내려온 중공군의 고난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일러스트=백형선

그 추위 속에서 10군단은 이른바 인디언 태형이라는, 집행자들이 양옆으로 도열한 가운데 죄인이 가운데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철수 작전을 펼쳤다. 철수도 작전이냐고? 진격보다 어려운 게 철수다. 적도 보고만 있는 게 아니어서 전투를 하면서 빠져나와야 한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매를 맞으며 빠져나오는 이 전술은 나중에 경제학으로 넘어와 출구 전략이라는 용어로 익숙해진다. 만약에 중공군이 대포와 제공권을 조금만 확보했더라면 미군은 한 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탈출 작전을 펼치면서 중공군 5만을 전투 불가 상태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중공군 9병단은 주공(主攻) 병력인 13병단과 함께 남진하여 대한민국을 다시 부산이나 제주도까지 밀어냈을 것이다. 1만8000여 명이 죽거나 다친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을 통해 우리가 미군에게 진 가장 큰 빚이자 갚아야 할 부채다. 작년 말에 장진호 전투 기념사업회가 출범했으니 70년 만에 최소한의 면피는 한 셈이다.

장진호 전투를 다룬 미국 영화가 처음 나온 게 1952년이다. 제목이 ‘Retreat, Hell’인데 ‘지옥에서 후퇴'쯤으로 번역하면 되겠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100% 선전용이라는 얘기다. 열여덟 살 신병이 장진호 전투를 통해 진정한 해병으로 성장하는 과정인데 ‘국뽕’ 더하기 모병용 영화라고 보면 거의 맞는다. 영화에는 올리버 스미스 소장의 명언으로 알려진 “후퇴? 젠장, 우리는 다른 쪽으로 진격 중이라고!”가 등장한다. 조용하고 수줍음을 타는 신사 스타일이었던 그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투다. 원래는 좀 더 긴 설명이었는데 신문에서 줄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장진호 명언으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따로 있다. “우리는 포위됐다. 문제는 간단해졌다. 우리는 이제 모든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다.” 장진호 전투 용사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작년 말 현재 일흔일곱 분이 생존해 계신다고 한다. 이들은 정례 모임을 갖고 행사 끝에는 아리랑을 부르고 강강술래를 돈다. 다들 구순을 바라보는 연배라 생존자 수는 순식간에 한 자리로 줄어들 수도 있다. 바이든 시대 다시 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은혜도 갚고 실리도 챙길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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