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호구
[경향신문]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호구라 한다. 호구 하나를 골라 예술적으로다가 잘 발라먹는 걸 ‘호구 아트’라 하겠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엔 마법학교 ‘호그와트’가 등장한다. 호그는 수퇘지란 뜻이고 와트는 사마귀란 뜻. 왜 이걸 합쳐 부르는지는 소설가 조앤 롤링이 아니니만큼 난 모르겠다. 암튼 호그와트엔 마법사 지망생들이 수백명 집단 기숙 생활. 요새 문제가 된 미인가 국제학교처럼 어린 학생들이 바글바글. 마법의 주문 영어를 샬라쿵 내뱉더니 급기야 아메리카 유학생이 되는 이적을 일으키면 학부모의 바람은 할렐루야 아멘이 되는 건가. 해외에 있어야 할 선교사들이 국내에 주로 지내며 호구를 물색한다. 호구가 호구인지도 모르게 하는 게 이 마법학교의 기술력이겠다.
다행히 겨울비가 내려쌓더니 눈과 얼음이 사라지고 돌이끼는 푸른빛을 내뿜고 있다. 배고픈 새들이 씨톨이라도 있나 땅을 뒤지고 다닌다. 묵은 좁쌀이 있길래 한 줌씩 놓아주는데, 눈 깜짝할 새 먹어치운다. 새 중에 가장 빠른 새는? 눈 깜짝할 새. 새들이 배불리 먹고 간 뒤에 혹시 남은 건 없는지 들쥐가 코를 벌룽거리며 등장한다. 냄새를 피우고 돌아다녔다간 올빼미가 가만두지 않으리라. 나는 그저 뒷짐 지고 저들 나눠 먹건 말건 상관 않는다. 나를 호구로 여기지 않는 새들은 노래 몇 소절로 은혜를 갚곤 한다. 가수 존 바에즈나 박인희 같은 목소리로다가 말이다. 박인희가 부른 노래 ‘해님 달님’은 성 프란치스코를 다룬 영화의 주제곡. “울면서 먼 길 떠나가나요. 이룰 수 없는 님과 나처럼 하늘 멀리 쓸쓸한 그 말에 나 여기 앉아서 그리운 님을 기다리다가 사연 두고 발길을 돌려요.” 산꾼들이 발길을 돌린 밤, 새들의 성가가 겨울 숲을 흔든다. 온갖 욕망과 교설이 사라지고 없는 빈들과 빈숲, 그곳이 바로 천당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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