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김진숙과 송경동의 요청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2021. 1.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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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사람은 작년에 암 선고를 받았지만 치료를 중단한 채 겨울의 산하를 걷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30일 넘게 시멘트 바닥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둘 다 장년의 나이다. 좀 알려진 대로 이들의 요구는 단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복직과 명예회복이 아니며, 단지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문제도 아니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2007년에 나온 김진숙의 산문집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를 처음 읽었을 때의 전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책은 1960년 강화에서 태어난 시골 소녀가 어떻게 부산 영도까지 가서 거대 조선소의 용접공이 되었고 또 왜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왜 그 생애의 3분의 2나 되는 시간을 어렵고 외로운 싸움에 바쳐야 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현장에서 만난 운동가들, 그리고 그가 집회 현장이나 ‘노동 열사’들을 떠나보내면서 한 말들을 묶었다.

나는 <소금꽃나무>가 2000년대 한국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산문집이자 문학서의 하나라 생각한다. 강렬한 주제와 절절한 문장으로 쓴 이 책은 나뿐 아니라 많은 문학사·문화사·여성사 연구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1960~1980년대의 젊은 여성들은 가정에서부터 차별을 견디며 교육 기회를 동생이나 오빠에게 양보하고, 직장과 생활세계의 일상적 폭력과 차별을 견디며 ‘산업 전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다 그중 일부는 일하다 죽고 부당해고당하는 동료들을 보며 어느날 각성한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싸운다.

이런 스토리는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너무 전형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부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특히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민주정부’와 거기 발 담근 남자들은 더 큰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리고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은 산업체 학급, 야학, 독서모임 등에서 공부하고자 열망했다.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것은 민중의 자기구원이자 자기계몽이며, 동시에 이젠 없는 노학, 지성과 노동의 연대였다. 나는 이를 한국 지성사와 문화 민주주의 역사의 요체라 믿고 있다.

근 40일째 단식 중인 시인 송경동도 비슷하겠다. 2016~2017년 촛불항쟁의 반블랙리스트 예술가 행동의 주역이며 ‘꿀잠 비정규노동자 쉼터’를 만든 그는 특히 586세대와 지식층이 새겨 두어야 하는 시를 쓴 적 있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새삼 적어본다.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중략)/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시는 학력·학벌주의에 물든 ‘진보’ 지식인들과 그들의 네트워크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발표한 지 10년이 된 시는 자칭 ‘맑스주의자’나 ‘민족해방주의자’였던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누리는 이 불평등 사회에서 양심과 윤리의 상태를 반성하게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 시는 무엇이 보편적인 이념이고 실질적 평등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아직도 밥을 굶거나 고공타워에 올라가거나, 또 그렇게 몸과 건강을 깎고 목숨마저 담보로 싸워야만 비로소 작은 목소리라도 들리는 이 오랜 한국의 딜레마와 지배의 잔인함이 원망스럽다.

여전히 노동운동에 대한 혐오와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편견이 너무 두껍다. 바로 그 자신의 어미·아비가 박정희시대로부터, 또 저 자신과 동료들이 오늘도, 그렇게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또 오히려 쫓겨나고, 또 ‘빨갱이’라고 불리고 내몰리는데도 말이다.

희생당한 수많은 ‘산업전사’들과 오늘의 4000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그들이 싸우고 있다. 김진숙의 복직으로부터, 노조를 만들거나 노조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가해졌던 부당해고와 국가폭력에 대한 회고와 성찰이 크게 번져가기를 바란다. 노사 문제에 있어서도 ‘과거 청산’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는 ‘노동 존중’을 실천으로 보여줄 큰 기회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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