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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인디펜던트 워커'

권지현 입력 2021. 01. 28. 03:33 수정 2021. 03. 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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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을 흔들어놓았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경험 앞에서 모두들 '위기'를 얘기했고, 그 위기 속에서 노동시장에는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래서 인디펜던트 워커란 많은 경우 '개인 하청 노동자'와 다름없는 말이다.

내가 인디펜던트 워커란 말에 혹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직업이어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부당한 노동의 형태를 당연한 것인 양 고착화하는 말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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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코로나19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을 흔들어놓았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경험 앞에서 모두들 ‘위기’를 얘기했고, 그 위기 속에서 노동시장에는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말이 등장했다. 인디펜던트 워커(independent worker:독립적 노동자)란, 기업의 성쇠와 경제 흐름의 변화 등 수많은 외부 변수에도 결코 일을 잃지 않고 독립적이면서 자유롭게 또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해고와 실직이 가시화되면서 노동시장이 불안해지자 이러한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새로운 직업의 형태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해법으로 떠올랐다.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이 중요해진 시대에 자신만의 독립적인 기술과 핵심 역량을 키우고,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것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살아남는 새로운 돌파구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고 또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다. 적어도 내가 일하고 있는 방송작가란 직업에서는.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세련되고 매력적인 말이 등장했을 때, 나는 놀랍지 않았다. 방송작가인 나는 세상이 보기엔 오랫동안 인디펜던트 워커였다. 방송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 원고 작성까지 방송 관련 핵심 역량을 갖고 있으며,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순간부터 송출될 때까지 방송 제작 전반에 관여하는 필수 인력이자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오가며 일하는 방송작가는 어느 면으로 보나 인디펜던트 워커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상은 어떨까. 우선 기획과 제작, 원고 작성에서 그렇게 ‘독립적’이지 못하다. 그런데도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자유계약에 의해 일하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이를테면 계약서 없이도 일을 해야 하고, 약속했던 원고료를 못 받는 경우도 있으며, 오랜 시간 공들인 기획이 아무런 대가 없이 무산되기도 한다. 물론 항의를 하거나 법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과 개인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계약상 문제나 부당한 일이 발생할 경우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없진 않으나, 지난 경험으로 미뤄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과 비용, 심리적 소모 측면에서 개인의 손해가 더 크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디펜던트 워커란 많은 경우 ‘개인 하청 노동자’와 다름없는 말이다. 기술이든, 재능이든, 시간이든 독립적인 노동자가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 핵심 역량을 어딘가에 팔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사실상 기업과 개인이 평등하게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갑’과 ‘을’이 등장하는 것이다.

새로울 것 없는 부당한 노동의 형태

‘인디펜던트 워커’는 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된, 주체적으로 일하는 멋있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회사 없이 홀로 일하는 비정규 특수고용의 형태를 긍정하는 말이자, 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 회피의 책임을 독립적이고 유능한 노동자가 되기 위해 ‘노오력’하지 않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내가 인디펜던트 워커란 말에 혹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직업이어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부당한 노동의 형태를 당연한 것인 양 고착화하는 말 같아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다만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인디펜던트 워커 등 이름만 다를 뿐이다. 코로나19 이전 인디펜던트 워커의 노동과 코로나19 이후 인디펜던트 워커의 노동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과연 코로나 시대 인디펜던트 워커는 새로운 노동의 형태를 제시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을 이른바 인디펜던트 워커로 살아온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권지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영남지회 부지회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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