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복잡미묘한 풍미의 치즈, 와인과 함께라면

입력 2021. 1. 2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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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한식의 특징을 논하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게 바로 발효다. 김치부터 된장, 간장 등 장류는 미생물에 의한 발효를 이용해 만든다. 이런 발효 기법은 한식만의 특징이 아니라 지역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조리법이다.

흔히 먹는 슬라이스 치즈나 피자 치즈가 아닌,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발효 치즈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맛과 고유한 풍미로 입맛을 사로잡는다. 브리나 카망베르와 같은 연성치즈는 숙성 기간이 짧아 수분이 많고 부드럽다(왼쪽). 카브랄레즈는 소와 염소, 양에서 나온 젖을 섞어 만드는데 맛도 복합적이고 독특하다(오른쪽).

음식이 쉬이 상하지 않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데다 독특한 풍미까지 더해지는 발효 현상은 옛사람들에겐 그저 신비로운 일이었다. 어찌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하지 않고 더 맛있게 변한다는 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발효가 인체에 무해한 미생물의 작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건 근대과학의 발달 덕이다.

동양의 발효 음식은 김치나 낫토처럼 식물성 재료가 대부분인 반면 서구에서는 햄과 치즈 등 고기와 유제품 위주다. 주식에 따라 나타난 차이다. 흔히 치즈라고 하면 얇은 비닐에 덮인 샛노란 슬라이스 치즈나 쫄깃한 피자 치즈를 떠올릴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진짜 치즈는 아니다. 대량 생산을 위해 각종 첨가물을 이용한 가공품, 비유하자면 게 향을 첨가한 게맛살 같은 존재랄까. 여기서 이야기할 치즈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낸 발효 치즈다.

치즈는 기원전 5000~4000년쯤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 유목민들이 잉여 젖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 위장을 가죽 보관통으로 사용했는데 그 안에 있던 효소와 우유가 만나 굳어져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치즈 제조기술은 유럽과 동양으로 전파됐고 각지에서 다양한 치즈가 만들어졌다. 유럽에선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러 기술이 급격히 발전했다. 지금의 전통 치즈 형태와 제조법은 중세 때 거의 완성됐다. 잘 발효시켜 만든 치즈는 보관과 저장에 탁월하고 감칠맛까지 갖고 있어 오랫동안 식탁에서 사랑받는 존재였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치즈 상점. 발효 치즈의 역사는 와인만큼이나 길고 폭넓다.

우리에겐 우유로 만든 게 익숙하지만 인류 최초의 치즈는 염소젖 치즈로 추정된다. 소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운 염소를 먼저 길들여 키웠기 때문이다. 양젖과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는, 우유 치즈와 또 다른 특유의 향미가 있다. 치즈를 만들 때 단일 동물의 젖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스페인의 유명한 블루치즈인 카브랄레즈처럼 싱글몰트 위스키를 블렌딩하듯 여러 종류의 젖을 배합하기도 한다. 맛 또한 복합적이고 독특한 결과물이 나온다.

잘 만들어 숙성시킨 자연 치즈의 맛은 가공 치즈와 감히 비교할 수 없다. 끝모를 깊은 감칠맛과 복잡미묘한 풍미는 오로지 자연 치즈에서만 맛볼 수 있다. 치즈는 숙성 기간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진다. 말랑말랑한 연성치즈는 짧게는 2주, 길게는 6주 정도 숙성한다.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카망베르, 브리 치즈 등이 연성치즈다.

영국의 체다, 네덜란드의 고다 치즈는 중간 정도의 단단함을 갖고 있어 반경성치즈로 분류된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요리에도 많이 쓰인다. 이탈리아의 그라노파다노나 파마산 치즈로 알려진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대표적인 경성치즈다. 단단할수록 수분이 적어 상할 염려가 적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경성치즈는 오래 숙성할수록 감칠맛과 향이 배가된다. 치즈 속 효소가 단백질과 지방 분자를 더 맛있는 작은 조각으로 분해하기 때문이다.

새하얗고 담백해 인기 있는 리코타 치즈는 치즈계의 서자다. 리코타는 이탈리아 말로 한 번 더 익혔다는 뜻으로,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에 산을 넣고 다시 끓여 남은 단백질을 응고시켜 만든다. 지방 함량이 적어 깊고 진한 풍미가 없는 대신 가볍고 담백한 맛을 낸다. 치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기도 하고 숙성과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기에 치즈라 부르기 애매하지만 일단은 치즈로 분류된다. 집에서 우유에 레몬과 같은 산을 넣고 굳혀 만든 리코타 치즈는 사실 코티지 치즈가 맞다. 리코타 치즈는 지방이 거의 없지만 코티지 치즈는 우유의 지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이어트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 집에서 마시는 와인 수요가 늘면서 안주로 치즈를 많이 구입한다. 이때 반드시 기억할 건 치즈 맛이 강하면 와인 맛도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른곰팡이가 들어 있는 고르곤졸라같이 강렬한 치즈는 제아무리 강한 레드 와인이라도 어울리기 쉽지 않다. 치즈 향에 와인 향을 압도해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런 치즈는 포트 와인이나 셰리 와인, 마데이라 와인처럼 풍미가 한층 강화된 주정강화 와인을 곁들이는 편이 좋다. 치우치지 않은 맛의 균형은, 페어링이라고 부르는 음식과 술 궁합의 기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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