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칼럼] 지구 반대편 낯선 뉴스 / 김순배

한겨레 2021. 1. 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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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때 티브이를 켜는데, 범죄 보도가 너무 많아서 뉴스를 점점 안 보게 된다.

칠레에서 보고 듣지 못하는 뉴스는 한국에서 나온다.

칠레에서 9년째 살고 있는데, 이런 뉴스를 본 적은 없다.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었지만 택배를 배송하는 속도만큼 빨리 달라질까? 중남미는 느리더라도 범죄율이 낮아질까? 한국이나 칠레나, 둘 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의 뉴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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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칼럼]

김순배ㅣ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밥 먹을 때 티브이를 켜는데, 범죄 보도가 너무 많아서 뉴스를 점점 안 보게 된다. 칠레에 요즈음 나오는 뉴스가 ‘가두기’ 차량 강도다. 도로에서 자기 차로 다른 차를 가로막는다. 또다른 차가 뒤를 한꺼번에 막기도 한다. 꼼짝달싹 못 하게 한 뒤에, 운전자를 위협해서 쫓아내고 고급차를 빼앗아 달아나는 범죄다. 집에 차를 세우려고 주차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틈을 타서 차를 빼앗는 수법이 날뛰더니, ‘유행’이 바뀌었다.

요새 자주 보도되는 다른 범죄도 있다. 편의점 등 가게에 다섯명 넘게, 많게는 열명이 한꺼번에 떼거리로 몰려 들어간다. 그런 뒤에, 직원을 궁지에 몰고 편의점을 턴 뒤에 달아난다. 오토바이 헬멧을 쓰기도 하는데, 잡고 보면 미성년자가 많다.

오늘은 마약조직의 요란한 장례식 뉴스가 들린다. 야밤에 폭죽을 쏘고, 권총을 공중에 쏴 댄다. 그래서 그 탄환이 가정집 창문의 유리를 깨고, 겁에 질린 주민들이 신고를 한다. 그런데 치안대책이 없다고 구청장까지 티브이에 나와서 불만을 터뜨린다. 이제 익숙해질 만큼 자주 뉴스에서 봤는데도 여전히 낯설다.

중남미에서 치안이 좋다는 칠레가 이러니, 다른 나라는 짐작이 간다. 세계보건기구(WHO) 최신 자료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은 칠레가 3.99명으로, 엘살바도르(82.35명), 베네수엘라(62.0명), 콜롬비아(41.67명), 브라질(33.31명) 등에 비하면 훨씬 안전한데도 이런 실정이다. 칠레가 치안이 나쁘다고 했더니, 베네수엘라 이민자는 자기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창문 밖에 보이는 안데스산맥 꼭대기의 1년 내내 녹지 않는 눈처럼 안 믿긴다. 한국의 해당 수치는 0.75명이니, 내가 딴 세상에 사는 게 맞구나 싶다.

칠레에서 보고 듣지 못하는 뉴스는 한국에서 나온다.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는 뉴스다. 당일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새벽배송…. 속도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건다. 칠레에서 9년째 살고 있는데, 이런 뉴스를 본 적은 없다. 동료의 생일에 꽃배달 주문을 했더니, 당일 바로 전달이 돼서 박수를 쳤다.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사는데, 전날 저녁에 사면 다음날 아침에 배송이 돼서 놀라고 있다. 칠레가 엄청 빨라졌다고…. 미리 챙겨서 주문해두면 오고, 새벽배송이 아니어도 채소는 충분히 신선하다. 음식배달 서비스가 크게 늘었지만, 그 속도는 아직 여유가 있다. 그래서 오토바이 대신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배달원들이 많다.

이런 속도의 차이는 한국인과 중남미인들 사이에 문화적 충돌을 낳기도 한다. 스페인어로 “지금”은 “아오라”(ahora)인데, 멕시코에서는 흔히 “지금 바로”라는 의미로 “아오리타”(ahorita)라고 한다. 하지만 더러는 내일이 되기도 하니, 한국인 고용주들이 속이 탄다. 칠레도 “지금 당장”이라는 의미로 “알 티로”(al tiro)가 있지만, 한국인의 속도와 다르다. 1월 중순에 학술행사를 준비할 때 동료를 재촉하며 ‘빨리빨리’를 가르쳐줬다. 그래도 나만 발을 동동거렸다. 그 속도에 맞춰, 조금 더 일찍 시작해서, 좀 더 천천히 준비했어야 했다.

중남미의 심각한 범죄 현황을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무서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한국의 과로사 얘기를 하면, 칠레인들은 힘들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둘 다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아직은 어쨌건 드문 일인가. 그러니 세상은 잠시 시끌하다가 그냥 돌아간다.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었지만 택배를 배송하는 속도만큼 빨리 달라질까? 중남미는 느리더라도 범죄율이 낮아질까? 한국이나 칠레나, 둘 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의 뉴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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