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부터 고래까지 '인간들아, 시끄러워 못 살겠다'

조홍섭 입력 2021. 2. 5. 14:26 수정 2021. 2. 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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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해운 저주파 소음 50년 동안 32배 증가..짝짓기, 사냥, 포식자 회피 방해
대양의 물동량이 늘면서 컨테이너선 등에 의한 소음도 급증하고 있다. 소음의 영향은 해양생태계 전반에 미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구 표면을 교란하고 대기의 온도를 높인 데 이어 인류는 이제 먼 바다 밑바닥까지 시끄럽게 만들어 수많은 해양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카를로스 두아르테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 교수 등 세계 25개 나라 해양학 전문가들이 지난 40년 동안 출판된 1만 편 이상의 관련 분야 연구를 종합 평가한 논문이 과학저널 ‘사이언스’ 5일 치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인류가 대양에서 어업, 해운, 개발 활동으로 내는 소음이 전례 없이 커졌다”며 “이로 인해 해양동물은 행동, 생리, 그리고 일부는 생존에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다른 환경오염과 달리 “해양 소음은 저감 조처와 규제를 통해 신속하게 줄일 수 있다”며 연구자들은 대책을 촉구했다.

대양의 ‘소리 경관’

열수분출구는 다양한 심해 생물의 보고이지만 자연적인 소리 경관을 이루는 일부이기도 하다. A. 로저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해양동물에게 소리가 중요한 소통 수단인 데는 이유가 있다. 바다에서 빛(시각)은 기껏 수십m, 화학물질(후각)은 수백m 전달되는 데 견줘 소리는 수천㎞까지 빠르게 퍼져 나간다. 해파리 같은 무척추동물부터 물고기, 파충류 등은 5㎑ 이하의 저주파 음을, 고래는 200㎑까지 고주파 음을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대양에는 지구 자체가 내는 소리와 생물이 내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바람과 빗방울이 바다 표면을 두드리고 해저 화산 분출과 심해저 열수분출구 소리는 수천㎞ 밖까지 퍼진다. 북극의 여름엔 빙하가 깨져 바다로 떨어지고 빙산끼리 부닥쳐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바다 생물도 산호의 성게나 게부터 거대한 혹등고래까지 짝짓기, 이동, 먹이 찾기, 무리 짓기 등에 다양한 소리를 낸다. 예를 들어 딱총새우는 집게를 부딪쳐 내는 충격파로 먹이를 기절시키는데 새우 무리가 일제히 사냥에 나서면 엄청난 소리가 된다.

바다의 소리 경관 변화. 과거(위)에는 해조 숲, 지진, 해양동물, 산호초, 비, 바람 등 지구와 생물이 내는 소음이 이 경관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인류세인 현재는 어선, 화물선, 각종 탐사, 음향측정, 파일 박기 등이 소리 경관을 압도한다. 두아르테 외 (2021)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인간활동은 이런 자연의 소리를 압도하거나 바꾸어 사람의 소리가 지배적인 새로운 대양의 소리 경관을 이루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난 50년 동안 해상 물동량이 늘면서 주요 항로의 저주파 소음은 32배 늘었다.

해양에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의 활동은 이 밖에 석유와 가스 자원 탐사, 해저 지형지물이나 어군을 탐지하는 음향탐지기, 해상풍력 시설을 건설하는 파일 박기 공사, 해상 시추시설 공사, 해저 준설과 저인망 어업,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다이너마이트 폭발 어업 등 수없이 많다.

‘마스크 낀’ 바다 생물

고래는 바다 소리 경관의 주역이다. 특히 혹등고래는 복잡한 노래를 10∼20분에 걸쳐 하기로 유명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인류가 새로운 소음원이기도 하지만 “생물과 지구가 내는 소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대양에서 주요한 소리의 원천인 고래를 수백 년 동안 잡아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그런 예이다.

켈프 등 대규모 해조 숲과 해초 초원, 산호가 그곳에서 다양한 소리를 내던 생물과 함께 급격히 줄면서 ‘침묵의 바다’가 됐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칠산 앞바다의 조기 떼 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1960∼1970년대까지 산란기 참조기 무리는 큰 소리를 냈다(▶‘멕시코 조기’ 산란기 합창, 돌고래 청력 손상 수준).

사람 소음이 바다 생물에 끼친 영향은 처음 고래 등 대형 해양 포유류가 해군 음향탐지기 등에 의해 죽는 사건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무척추동물에서 물고기와 해양 포유류까지 해양 소음피해는 일상적이고 광범한 현상이 됐다”고 연구자들은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마스킹(차폐)’ 효과라고 부른다. 마치 마스크를 낀 사람의 표정을 잘 읽지 못하듯 해양동물은 음향 대역이 비슷한 환경소음에 가려 짝짓기, 먹이 찾기, 포식자 회피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특히 선박의 저주파 소음이 주요한 ‘마스크’ 구실을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해상 물동량의 추정한 해양 소음도 분포. 붉은 쪽으로 갈수록 소음도가 높다. 두아르테 외 (2021) ‘사이언스’ 제공.

해양 소음은 환경 속에 잔류하는 다른 오염원과 달리 규제와 기술적 해법을 통해 즉각 완화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그 증거로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지구 인구의 58%가 봉쇄됐을 때 해양 포유류와 상어가 활동범위를 급속히 넓혀 항구나 연안 도시 구역까지 번잡하고 시끄러운 수로에 출현했던 사례”를 들었다.

인용 논문: Science, DOI: 10.1126/science.aba465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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