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 초성게임하고 끝"..학교 원격 수업에 분노하는 엄마들

백일현 기자 2021. 2. 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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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2년째 안식년?", "3월부터는 제발 제대로"

"초등 5학년인데 무형문화재 할머니들 춤추는 영상 15분짜리 보고 (이날 수업이) 끝났습니다."
"매일 음악수업이 들어있는데 1년 내내 똑같은, 누군지 모르시는 분의 오카리나, 리코더 연주 유튜브 연결이에요. 진짜 너무하세요."
"과자 소리로 이름 맞추기 하던데요."
"원격으로 빙고 게임하고 있을 때 세상 한숨이…."
"교사 커뮤니티에서 공유하나요? 빙고, 초성게임, 과자소리 맞추기…."

무슨 이야기냐고요?
요즘도 진행 중인 초등학교의 줌 원격수업을 지켜본 학부모들의 한탄입니다.
코로나 19가 확산하면서 많은 학교의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고, 교사들이 집이나 학교 교실에서 줌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오랜 시간 원격 수업을 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수업하지 않는 교사들도 많다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읍니다. "공교육의 민낯을 알게 됐다"고까지 말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그나마 교육부가 3월 2일 시작되는 새 학기부터는 "거리두기 2단계일 경우 초등학교 1, 2학년은 되도록 매일 등교하게 하겠다"고 해서 다행이라는데요.
하지만 초등 3~6학년은 그런 기대도 못합니다. 앞으로도 등교를 자주 하진 못하고 원격수업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몇몇 학부모들은 "3월 새 학기에도 원격수업을 지금처럼 한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까지 말합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내용과 시간 모두 총체적 난국"

우선 학부모들은 일부 초등 교사들이 진행하는 원격 수업 시간이 짧고, 그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합니다.

"20분 출석 부르고 20분 수업하고 끝. 40분 만에 끝내면서 안 부끄러우신가 봐요. 왜 3, 4시간 줌 못하죠?"(초3 학부모)
"저희 애도 (수업) 20분 해요. 기가 막혀요."(초등 6학년 학부모)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40분 수업 하시고 4시간 행정업무 보시고 퇴근하시나요?"(학부모)

수업 내용도 문제입니다.

서울의 한 맘 카페에는 이런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초등 선생님들 빙고에 한 맺혔나 봐요. 매일매일 빙고하고, 애들 빙고 도사 만들 건가요."
"국어책 펴고 공부는 안 하고 초성 맞추기를 왜 하냐고요."
"그 와중에 끝말잇기는 왜 하는 거죠. 왜 수업할 게 없나요. 작년 내내 학교를 못 갔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요."

몇몇 학부모들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까지 합니다.

"장난 같은 시간낭비 안 했으면 좋겠다"(서울의 한 학부모)거나 "구닥다리 콘텐츠 복사 떠서 숙제 안 내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이같은 수업 내용에 대해 A 초등 교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놀이는 꼭 필요합니다. 저학년은 교육과정이 놀이 중심으로 되어있기도 하고, 중, 고학년에서도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비대면으로, 비접촉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최대한 즐겁게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교사들의 고민을 시간 때우기로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며칠 전 교육부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지난해 원격수업에 만족한 학부모 비율은 57.7%였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학부모가 만족하지 못한 겁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원격수업을 지속할 것인지 의향을 물었을 때 부정 답변이 71.6%에 달했습니다.
원격수업으로 학습 격차가 커졌다는 데는 교사의 68.4%, 학부모의 62.8%가 동의했습니다.

초등 6학년 학생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공립초 교사, 외국 교사나 학원 선생들만큼 왜 못 하나"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최윤정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어떤 때는 선생님이 1교시 수업을 15분 하고 끝내버릴 때도 있어요. 미국 선생님들은 1교시부터 끝까지 아이들이랑 상호작용하면서 다 수업한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다른 나라에도 원격 수업을 성실히 하는 교사와 안 하는 교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학부모들은 잘하는 외국 교사 사례에 귀가 쏠리게 마련입니다.

"외국에 있는 친구네 학교 보니 록다운 기간 동안 시간표를 9시-3시 짜서 줌 수업하더라고요. 쉬는 시간도 학교 갈 때랑 똑같이 하고. 우리는 왜 그게 안 되나요."(한 인터넷 카페 회원)

사교육과 비교하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학원도 줌 수업을 3~4시간씩 하는데 교사가 왜 못하나요. (학생) 인원 많으면 2시간씩 나누면 되지 않나요.(초 3학부모)
"이러니 애들이 학원가를 서성이죠."(초등 학부모)

◆"코로나에 교사 안식년?"

물론 잘하는 공립초 교사들도 많습니다.

공립이어도 5시간 줌 수업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비난만 하면 열심히 하려는 교사들도 힘 빠진다"며 교사들을 응원하는 이들도 상당수입니다.

실제 A초등 교사는 원격 수업 준비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온갖 시스템들 익히고 직접 기획하고 대본 써서 영상 찍고 편집해서 올렸어요.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20분 수업 영상 만드는 데도 7~8시간씩 걸렸어요. 매일 영상 만들고 매주 오후에는 한 학생당 20분씩 피드백 전화하며 아이들이 학습 내용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수업하는 교사들에 대해선 학부모들도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수업에 소홀한 교사들도 많은 만큼 앞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한 학부모는 이런 사연도 들려주었습니다.

"초등교사인 지인이, (코로나) 사태 좋아지면 이제 애들 등교하니 '동료 교사들끼리 안식년 다 끝났다고 농담 반 진담 반 한다'더군요. 경악했네요."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교사 복무점검 또는 불시감찰이 절실하다. 직무 태만에 대해 징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학교에 개선 건의, 항의 전화...움직이는 학부모들

이렇게 수업이 부실하니 앞으로는 가만 있지 않겠다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한 초등생 엄마는 줌 수업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벽에 부딪쳤습니다.

"최근 학교에 전화해봤는데 관련 건의로 통화 가능한 사람이 없더군요. 교장 선생님 출장, 교감 선생님 회의 중이라는데 더 화만 났어요. 일부러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건지."

또 다른 학부모도 학교에 대한 분노를 이렇게 토로합니다.

"제가 국어선생, 수학선생까지 다 해요. 엄마가 왜 이래야 하나요. 학교에 항의전화 걸고 싶었지만 저희 아이에게 피해갈까 봐 참았어요."

이처럼 불만을 표출하는 초등생 학부모들이 많은데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잘하고 계실까요? 중고교 학부모들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1들은 자유학년제로 총 30일도 학교에 안 갔어요. 생활통지표라고 가져왔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 학생들 모두 같은 내용이에요."
"중고등도 그래요. 숙제 검사 학습지 강사 같아요. 유튜브와 EBS가 수업 다했죠. 1년 내내."
"진짜 고등은 학원 내신 강사 선생님들이 가르치셨음. "

이에 대해 한 고교 교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이 줌으로 이뤄지는 수업에 참여하더라도 그저 멍하니 있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교사들은 이런 학생을 고치려고 이야기하며 상당한 시간을 보내니 교과를 가르칠 시간이 부족한 상황도 있습니다. 줌이라는 영상매체 정보 전달의 한계, 한국 교육에서 교사가 수업하는 한 교실의 학생수, 교사들의 행정 업무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갑작스런 코로나 사태에 교사들도 새로운 교육 방식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제도적 지원도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학부모들은 말합니다.

"유례 없는 코로나 시대에 일 년은 경황 없어 넘어가고요. 앞으로는 제발 의미 없고 장난 같은 원격 수업은 대책 좀...."
"학습격차는 고학년이 훨씬 크게 벌어지는데 원격수업은 너무 부실하고. 고학년들이 학습적으로는 더욱 중요한 시점인데 등교 확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은 교사들의 안식년이었다 치고, 올해까지 2년째 안식년 할 건가요."

이런 학부모의 목소리에 뜨끔한 선생님들. 올해는 제발 내실 있는 원격 수업을 진행해주시길 꼭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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