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중독자 1만명 시대? 윤준병 의원은 모를 이야기

신민주 입력 2021. 2. 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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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중앙일보 기사에 반박한다.. 한 번이라도 실업급여 신청을 직접 해봤는가

[신민주 기자]

'잃어버린 세대.' 청년을 부르는 단어가 88만 원 세대에서 3포 세대, N포 세대로 바뀌더니 급기야 100년 전 탄생한 단어가 부활하여 다시 사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절망과 허무감 속에 허우적거렸던 세대인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는 코로나 시대에 재탄생했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을 정말로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 직업도, 안정성도, 집도, 마음의 힘도, 사회적 관계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1년이 넘었을 때 그 '잃어버린 세대'가 겪는 사회적 혼란이 전 국민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잃어버린 세대를 넘어 무엇인가 '잃어버린 시대'를 사는 것일지 모른다.
  
중앙일보-윤준병 의원이 놓친 것 
   
 중앙일보 1월 30일자 기사 캡쳐
ⓒ 중앙일보
   
1월 30일, <중앙일보>에 '"놀면서 돈 받는데 누가 일해요"... 실업급여 중독자 1만 명'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코로나 이후 실업급여 신청자가 폭증하면서 대기자만 200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이어지던 때였다.

5년간 5회 이상 구직급여를 반복 수급한 사람 1만 명이 넘었다고 말한 기자는 이들을 "실업급여 중독자"라고 불렀다.

해당 데이터를 제공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부정수급, 불필요한 반복 수급이 늘면서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며 "엄격한 기금 관리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을 골라 구제해야 한다는 믿음은, 어떠한 사람들에겐 어디에나 붙여도 맞는 말처럼 여겨지는 마법의 진리가 된 듯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래서 누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하진 않는다.

인간이 경험하는 불행에는 수천, 수만 가지 사연과 수천, 수만 가지 얼굴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누가 가장 시급하고 힘든지 구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실업급여 중독자'라는 말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한 "국민은 한 번 정부의 돈에 맛을 들이면 거기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재난지원금 논의 당시 많은 이가 주장한 "가장 시급한 곳부터 구제해야 한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만든다.

왜 5년 동안 5번이나 실업급여를 받아야 했는지에 대한 맥락이 사라진 비난은 모멸감을 주고, 끊임없이 탈락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준다.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는 코로나로 더 많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불운에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모든 불운이 더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는 점을 망각하게 된다.

모든 개인적인 사유의 불운들은 모든 사회적인 사유의 불운들과 같을 수밖에 없다. 그 사회적인 불운들 앞에서 국민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혹은 더 배고픈 국민이 있다고 편을 가르는 정치인들은 미래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말 놀면서 돈을 받기 위해 실업급여를 신청할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지 않다. 실업급여에 중독되기에는 실업급여가 너무 짧게, 적게 나온다. 이쯤 되면 실업급여에 중독될 만큼이라도 실업급여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윤준병 의원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사람들의 노고를 알지 못할 것이다. 몇 시간씩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감내하는 많은 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온 이들이 청년들도 있지만, 수 십 년간 자신의 노동을 배반하지 않았던 중년 세대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매달 구직 활동을 증명해 보이고 온라인 구직 활동이 제한되어 있어 발로 뛰어야 하는 수고도 잘 모를 것이다. 5년 동안 다섯 번 실업급여를 받는 이의 사정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를 것이다.

무엇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가장 고되게 싸워나가고 있는 분야가 '실업급여를 받을 만큼 충분히 힘든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코로나 속 '보편적으로' 위험해진 상황 속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은 위험하다. 어떠한 농부도 가뭄에 가장 마른 땅을 골라서 물을 주지 않는다. 만약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농부가 있으면 그는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다.
 
▲ 어떤 간절함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남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창구 앞에서 한 구직자가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을 기다리고 있다. 2021.2.3
ⓒ 연합뉴스
 
창조하는 시대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진 이후, 각국의 정부는 서로 다른 대응책을 내세웠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기업의 노동 비용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기업에 고용을 유지하게 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족한 임금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구체적인 모습이다.

영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지원을 시작했고, 임시 유급 휴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대책도 시행한 바 있다. 비록 이후의 재난지원금이 선별로 지급되기는 했지만, 한국은 소득 심사 없이 모든 가구에 1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 모든 정책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따위의 오래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말도 안 되는 정책일 수 있다. 열심히 일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수당을 지급하는 실업급여에 비교해 보더라도 말도 안 되는 정책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결국 "먹을 수 없으면 일을 할 수도 없다" 혹은 "일하지 못하더라도 먹어야 산다"라는 정반대의 사실 두 가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데 근면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준병 의원과 <중앙일보>의 기사는 지나도 너무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근면을 증명해야 하는 일은 늘 편파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난할수록 근면을 증명해 보여야 하지만, 부자는 게을러도 존경을 받는다. 가진 것이 없는 만큼 많은 것을 증명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누구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자, 누구의 자격도 따지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멕시코와 함께 노동시간 1위를 다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게으르다고 호통치는 우스운 광경은 이제 끝을 내고, 조금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잡한 자격을 따지고 증명을 요구하는 실업급여의 모습도 달라져야 한다. 노동과 가난을 중심으로 한 복지가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복지를 고민할 때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노동과 장애, 증명 없이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는 앞으로도 엎치락뒤치락하며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를 번갈아가며 선택하겠지만, 결국 후자를 선택할 것을 믿는다. 그것이 유일하게 '잃어버린 시대'가 무엇인가를 '되찾는 시대'로 나아갈 방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여가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중일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꿈꿔왔던 일을 해볼 기회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든 어떤 삶을 선택했든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같은 국가 보조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필요하다.

되찾는 시대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나갈 것들을 보고 싶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것들 창조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우리는 분명 되찾는 것을 넘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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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기본소득당 서울특별시당 상임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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