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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쫓아낸다" 24세 휴가 군인 죽음 부른 '안수 기도'

권상은 기자 입력 2021. 02. 06. 15:00 수정 2021. 02. 0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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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폭행치사' 혐의 목사에 징역 4년 선고

[사건 블랙박스]

일러스트=정다운. /조선DB

“까마귀가 나가야 한다” “까마귀 눈이 위에도 달렸다.”

지난해 2월 7일 새벽 1시쯤 경기도의 한 교회 예배당. 한모(24)씨가 스스로 몸을 치고, 구역질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교회 목사 A(43)씨는 손바닥으로 한씨의 등과 배를 쳤다. 그의 아내 B(39)씨도 나무 십자가로 한씨의 뒷머리와 등, 가슴을 때리며 거들었다. 이른바 ‘악령’을 퇴치하기 위한 안수 기도였다. 휴가를 나온 군인인 한씨는 하루 뒤인 8일 부대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5일 전부터 금식을 한 한씨는 탈수 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이 나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A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수 기도를 계속했다. 그는 “이제 까마귀가 나오려 한다. 오늘 반드시 귀신을 빼내야 한다”며 한씨를 바닥에 눕히고 배를 때렸다. 배 위에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조르는 등 강도를 높여갔다.

아픔을 참지 못한 한씨가 도망쳤지만, 곧 끌려왔다. A씨 부부는 “까마귀가 나가려고 마지막 발악을 한다. 못 나가게 붙잡아라”며 안수 기도에 동참했던 다른 교회 목사 C(49)씨, 그의 아내 D(45)씨의 손도 빌렸다. C씨 부부와 16살, 9살짜리 두 딸은 한씨 두 팔을 붙잡고, 두 다리를 밟아 일어나지 못하게 제압했다.

안수 기도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A씨는 한씨의 배 위에 올라타 두 손으로 목부터 턱까지 붙잡고 쓸어올리듯 목을 졸랐다. 숨이 막힌 한씨는 더욱 몸부림을 치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씨를 풀어주기는커녕 “까마귀가 오물을 뱉어 성전을 더럽히고 있다”며 비닐봉지로 한씨의 침을 받아냈다. 이들의 ‘폭행’은 10여분 동안 계속됐다. 결말은 한씨의 죽음이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목뼈 골절 등으로 인한 목 부분의 손상으로 나타났다.

◇”군 생활 스트레스” 기도 치유에 나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한씨는 지난해 1월 31일 A씨 교회에서 어머니 소개로 A 목사 부부를 처음 만났다. 한씨는 “군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휴가 기간에 교회에 머무르면서 목사 부부와 함께 기도를 하며 치유에 나섰다.

A 목사 부부의 진단은 남달랐다. 이들은 한씨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몸속에 있는 악령과 귀신 때문이다. 몸을 두드리거나 때려 악령을 쫓아내 치유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제시한 방법으로 기도하도록 했다. 한씨는 그해 2월 2일부터 교회에서 목사 부부와 합숙에 들어갔다. 또 목사 부부가 알려준 대로 스스로 몸을 때리거나, 기침이나 구역질을 하면서 몸속에 있는 것을 뱉어냈다.

5일째가 되던 날, 딸이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겪어 A목사 교회를 찾아온 다른 교회 C목사 가족도 한씨와 함께 기도에 참여했다. 한씨는 이들로부터 감당하지 못할 육체적 고통을 당해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목사 아내 “도왔을 뿐 폭행하지 않았다” 주장

A목사 부부, C목사 부부는 모두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 과정에서 A목사 아내 B씨는 “안수 기도를 하면서 나무 십자가로 피해자 뒷머리 등을 때리고 비닐봉지에 침을 받아내는 등 조력을 했을 뿐 그 이상으로 폭행하지 않았다”며 남편 A씨가 주도한 폭행치사의 공동정범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남편이 피해자의 배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는 등 폭행 방법과 정도,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던 점을 종합해 보면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나머지 피고인들은 암묵적인 의사 결합 아래 폭행하는 행위를 직접 분담해 실행했다고 보이므로 공모 공동정범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가담한 다른 목사 부부 “협박 때문에 도왔다”

함께 기소된 C목사 부부는 1심 법원에서 “A목사의 특별한 권능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게 돼 지시와 협박에 따라 악령을 쫓는 행위를 돕고, 재앙이 가족들에게 닥치지 않도록 피해자의 팔과 다리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딸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어 A씨 교회에서 합숙 기도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한씨를 폭행하는 과정에서 A씨가 “나를 도와 피해자 안에 있는 귀신을 쫓게 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멈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극심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C목사가 15년 이상 목사로 봉직해 1년도 안 된 A목사보다 경력이나 나이가 많고, 금식과 폭행을 하는 A목사의 안수 기도 방법에 의문을 가졌던 점을 지적했다. C목사는 A목사에게 “성경에는 예수님의 말 한마디로 귀신이 나가더라”, “귀신은 영(靈)인데 물을 먹는다고 힘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C씨가 A씨 안수 기도 방법에 절대적인 믿음보다 다소 의심하였던 점 등을 종합해 보면 A씨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 협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C씨 부부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막는 정도의 강요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도 “1심 법원 판결 문제없다”

지난해 9월 수원지법에서 진행된 1심은 목사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또 A씨와 공범으로 기소된 A씨 아내 B씨, 목사 C씨와 아내 D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5일 수원고법 형사3부(엄상필 부장판사)는 피고인 전원에게 원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젊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했고, 유족은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며 “다만 초범이고, 피해자 치료에 도움을 주려고 안수 기도를 한 점, 유족과 합의를 한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에는 C씨 부부 두 딸도 가담했지만 16세인 큰딸은 소년 보호 사건으로 가정법원에 송치됐다. 9세인 작은딸은 형사 미성년자여서 입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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