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속옷촬영, 정치관여 판사 모두 탄핵

전현진 기자 2021. 2. 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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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의 재판관탄핵재판소 법정. 재판관탄핵재판소 캡처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을 하는 헌법재판소는 사실관계와 헌법에 따른 법리 판단을 할 때 법관 탄핵의 전례가 있는 해외의 사례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일본은 국회에 전담 재판소를 두고 재판관(법관) 탄핵을 심사한 후 파면 여부를 결정한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한 후 헌재에서 탄핵심판을 하는 한국과는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일본의 재판관 탄핵 제도와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봤다.

■국회에 재판관탄핵재판소 두고 탄핵 심판

일본의 재판관 탄핵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헌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공무원을 선정하고 이를 파면하는 것은 국민 고유의 권리이다’(일본 헌법 제15조1항)라는 조항을 따른 것이다. 재판관 탄핵을 맡은 ‘재판관 탄핵재판소’(탄핵재판소)를 별도로 두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일본국 헌법 64조1항을 보면 ‘국회는 파면의 소추(기소)를 받은 재판관을 재판하기 위해 양의원(중의원·참의원)의 의원으로 조직한 탄핵재판소를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탄핵 재판을 하는 탄핵재판소는 국회에 설치되고 재판원 역시 국회의원이 맡는다. 탄핵 소추 역시 국회의 권한이다. 한국은 탄핵 소추는 국회,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하지만 일본은 탄핵 소추와 심판 모두 국회가 한다. 재판관 탄핵이 입법부의 권한인 셈이다.

탄핵재판소 재판원은 중의원(하원의원)·참의원(상원의원)에서 각 7명씩 14명의 국회의원들이 맡는다. 탄핵재판소는 국회에서 독립된 기구로서 활동한다. 상설 사무국을 두고 관련 인원도 독자로 뽑아 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참의원제2별관에 탄핵재판소 법정이 있다.

탄핵 재판은 탄핵소추장이 접수되면서 시작된다. 국민이나 최고재판소(한국 대법원격)의 청구를 받으면 중의원과 참의원 각 10명씩 총 20명으로 구성된 국회의 탄핵소추위원회가 입건하고 조사에 들어가 탄핵 소추 여부를 결정한다. 탄핵소추위원회는 직권으로 재판관을 탄핵소추 할 수도 있다. 심의 결과 파면을 소추하기로 했다면 소추장을 탄핵재판소에 제출한다.

탄핵 재판의 절차는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따르게 돼 있지만, 위법 여부를 가려 처벌하는 형사소송과는 다르다. 탄핵재판소는 탄핵을 “죄나 부정 등을 저질러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강력히 신분을 보장받는 공무원이 비행(그 사람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을 범한 경우 국민(실제론 국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의회)의 뜻에 따라 그 사람을 파면하는 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행법을 어겨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것과 달리 비행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한 때에도 파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재판관탄핵법 제2조는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을 심각히 해태한 경우’, ‘기타 직무 내외적으로 재판관으로서의 위신을 현저히 실추시킨 비행이 있는 경우’에 탄핵을 통해 재판관을 파면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한정한 한국의 헌법 제65조 탄핵 사유보다는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아무 때나 탄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탄핵소추에 시효를 두고 있는데, 파면 사유의 발생으로부터 3년이 넘으면 탄핵 소추할 수 없다.

특이한 점은 탄핵으로 파면된 재판관이 선고 5년이 지나면 자격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판관으로 탄핵되면 변호사로도 활동할 수 없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고 탄핵 사안에 대해 반성하는 등 사유가 있으면 탄핵재판소에서 자격회복재판을 열어 복권시키도 한다.

■형사처벌 관계없이 탄핵 가능…현직 한정, 시효 5년

일본에서 재판관이 탄핵돼 파면된 가장 최근 사례는 2013년이다. 지하철에서 치마 입은 여성의 속옷을 불법촬영한 오사카지방재판소의 판사보(임기 10년 이내의 판사)에 대한 탄핵이다. 당시 탄핵재판소는 “사실이 인정되고, 이런 행위는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악질적이고 비열한 행위”라며 “재판관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에 대한 배반행위에 해당된다”며 파면했다. 2017년 당시 서울동부지법 홍모 판사가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불법촬영하다 적발돼 재판 없이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고, 감봉 4개월 징계를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의 탄핵재판소는 그동안 모두 9건의 탄핵소추를 두고 재판을 열었고 이 중 7명에 대해 파면을 선고했다. 파면 사유는 사건 관계자로부터 접대를 받거나 아동 성착취, 불법 촬영, 스토킹 등 성범죄에 연루된 경우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탄핵 사유인 재판개입과 비슷한 일은 없지만, 1977년 3월 탄핵재판소에서 파면된 기토 시로(鬼頭史郞) 교토지방재판소 판사보의 탄핵 사건은 정치적 사건에 연유해 살펴볼 만하다.

전후 일본의 최고재판소 탄생과 각종 사건을 담은 책 <일본 최고재판소 이야기>(야마모토 유지·법률문화원)에는 기토 판사보의 탄핵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최고재판소가 ‘견디기 힘든 사건’이라고 판단하며 그에 대한 탄핵을 청구하고 이를 심판하는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다. 기토 판사보는 1976년 8월 검사총장(한국 검찰총장 격)을 사칭해 현직 내각총리대신인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수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통화에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에 대한 뇌물 사건 수사를 두고 검찰에 대한 수상의 지휘권을 발동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검사총장과 수상이 정치적 사건 수사를 두고 담합을 벌이는 것처럼 현직 법관인 그가 꾸미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사건은 당시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보도돼 기토 판사보의 비행이 드러났고 탄핵 심판으로 이어졌다. 탄핵재판소 홈페이지에는 당시 파면 결정 사유가 나온다. “소추 사유의 사실이 인정되고 정치적 책동이 포함된 것으로 단순히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너무 깊이 정치 문제에 관여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판사로서의 명성을 실추시킨 행위로 탄핵법 2조2항(기타 직무 내외적으로 재판관으로서의 위신을 현저히 실추시킨 비행이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기토 판사보에 대한 탄핵 사유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사유와는 정치적 개입이 의혹이 됐다는 점은 같지만 구체적인 사정은 다르다. 임 부장판사는 “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해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재판 절차 진행에 간섭하는 재판 관여 행위를 했다”는 게 탄핵소추 사유다. 당시 최고재판소가 적극적으로 기토 판사보의 탄핵 절차에 나섰다는 점도 임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 한국 대법원과는 다른 점이다.

임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탄핵 소추가 이뤄진 점은 닮았다. 일본은 법관 임용된 뒤 10년 동안 판사보로 지내다 정식 판사가 되는데, 기토 판사보가 탄핵 소추가 결정된 1977년 2월은 그의 판사보 임기 종료까지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최고재판소와 국회가 사건처리를 서둘렀다. 최고재판소의 파면 요청 이후 3개월 뒤 탄핵 소추가 결정됐고 두 달이 채 안 돼 파면이 이뤄졌다.

형사처벌과 관련 없이 탄핵이 이뤄졌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한다. 기토 판사보는 검사총장을 사칭한 위조 전화 사건에 대해 부인하는 과정에서 국회증언법 위반 혐의로 고발 당했지만 탄핵재판소의 파면 결정 전인 1977년3월21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기토 판사보는 검사총장을 사칭 한 전화로 결국 경범죄 위반으로 약식기소돼 구류 29일 처분을 받았지만, 이는 파면 이후 한참 지난 1978년 6월의 일이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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