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김명수 퇴진' 꼬여버린 야당

허진 2021. 2. 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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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그 직후에 열린 취임식에서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사퇴해도 문제, 사퇴 안 해도 문제다.”

정치적 중립 위반과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취에 대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7일 이같이 말했다. 범야권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저런 발언을 했을까.

김 대법장과 임성근 부장판사의 대화 녹취록이 지난 4일 공개됐을 때만 해도 국민의힘 내부에선 “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순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명수를 탄핵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151명)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국민의힘 의석은 102석에 불과하다.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안 표결 때 찬성이 179표 나온 걸로 봤을 때 더불어민주당(174석)에서 반란표가 나올 가능성도 희박하다.


대법원장 탄핵소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그래서 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이 쓸 수 없는 카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6일 KBS 심야토론에 출연해 “(김 대법원장이) 사퇴를 안 하면 어쩔 수 없다. (국회 의석) 숫자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데, 탄핵안이 부결되면 정당성만 확보해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다. 판사 출신으로 국민의힘 ‘탄핵 거래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은 김기현 의원도 7일 “탄핵안을 추진하자는 의견도 있긴 한데 현실적으로 가결 가능성이 0%”라며 “그럼 도리어 (김 대법원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놓고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주장해온 국민의힘의 논리를 스스로 깨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잘못의 경중을 고려했을 때 사법부 수장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칫 피장파장의 진흙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일 국민의힘이 개최한 ‘임성근 판사 탄핵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 나온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권에서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맞불처럼 하게 된다면 서로간에 이전투구처럼 된다”며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다는 평가를 받는 게 과연 현명하냐”고 지적했다.


김명수 사퇴가 野에 정말 유리할까

그래서 김 대법원장을 향한 국민의힘의 목소리는 자진 사퇴 요구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또한 국민의힘으로선 애매한 대목이 있다. 김 대법원장이 정말로 사퇴를 하는 게 야권에 유리하냐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했다. 6년 임기 중 2년 7개월이 남았다. 차기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하게 된다. 그런데 중도 사퇴해 새 대법원장을 뽑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국회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권 입맛에 맞는 대법원장을 충분히 임명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만에 하나 정권 교체를 이루더라도 차기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한 번도 지명하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김명수는 이미 도덕적 타격 입은 상황”

당내에선 김 대법원장이 버텨주는 게 오히려 득이라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비대위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면 국민의힘으로선 오히려 나쁘지 않다”며 “사법부 수장에게는 도덕성이 핵심인데, 이미 거짓말 자체는 사실로 판명돼 타격을 입은 상황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된 마당에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오해를 부를 행동을 하기는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판사들이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판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허진·성지원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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