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 끊어 K방역 지키나" 1년간 노모 면회 못한 자식의 한

신성식 2021. 2.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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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면회금지 살펴보니
지난 6일 울산광역시 이손요양병원이 앞마당에 마련한 비닐 면회실에서 딸 곽나률씨가 비닐막 너머 아버지에게 세배하고 있다. 일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환자 면회를 못한다. 사진 이손요양병원

'세배 없는 설'이 다가왔다. 요양원 입소자는 17만여명, 요양병원 입원환자는 35만여명이다. 약 50만명의 노인이 자식이나 손자 얼굴도 못 보고, 세배도 못 받고 쓸쓸한 정초를 맞게 된다. 지난해 추석에도 그랬다. 자식들도 부모님을 만난 지 1년이 되면서 가슴에 한이 쌓인다.


방호복 면회 허용 국민청원
급기야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런 글이 올랐다. 제목은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요양병원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이다. 뇌졸중 어머니를 그리는 사연이 절절하다.

"어머니는 뇌졸중에다 고령이셔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중략) 일반 병원 입원환자는 보호자 1명이 간병할 수 있고, 요양병원은 직원과 요양보호사가 자유롭게 출퇴근합니다. (중략) 왜 요양병원 환자만 이토록 철저하고 강력하게 면회를 금지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고령의 요양병원 환자가 코로나에 취약해서 감염되면 사망률이 높아지고, K방역에 문제가 될까 봐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의구심이 듭니다. 아무리 백번 양보해도 1년 넘게 부모님을 못 보게 하는 것은 기본권을 넘어 천륜을 끊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무조건 면회를 막을 게 아니라 방역수칙을 만들어 면회할 수 있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면회가 가능하다면 방호복이나 방독면을 착용하고서라도 따를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식사 수발을 해서 밥이라도 제대로 드실 수 있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그의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게 됐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8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요양병원·요양원 면회 금지 조치를 실시하고 영상통화를 이용한 면회를 권고한다"고 못 박았다. 면회 금지다. 유리창 너머로 비대면 면회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본의 아닌 고려장 같다"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85)를 그리는 아들 성모(59)씨의 애절한 사부곡(思父曲)이다. 성씨는 보건 당국이 코로나 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한 서울 강남의 행복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어렵게 6개월 전 여기에 입원했다. 성씨는 "1년 전 대면 면회를 한 게 마지막이었다. 유리창 밖에서 한두 번 뵀을 뿐"이라며 "화상통화로 하라는데, 그래 봤자 말을 못 하시는데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아버지는 혈관성 치매가 찾아왔다고 한다. 성씨는 "전화할 때마다 아버지가 '맑아지지 않는구나'라고 느낀다. 점점 나빠지는 듯하다"고 말한다. 성씨는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고려장 보낸 거 같아 너무 불편하다"며 "그런 와중에 정부가 강제로 나가라고 하니, 그랬다가 혹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이게 K방역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성씨는 "설에 세배할 수 없다. 요양병원 근처로 가서 전화라도 하면 내 맘이라도 편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독일은 음성이면 1명 가능
외국은 어떨까.
독일의 바이에른주는 지난해 12월 이런 조치를 시행한다. 신속항원검사(간편검사)로 2일 이내, 핵산증폭검사(PCR·일반적인 코로나 검사)로 3일 이내 음성판정을 받은 사람은 요양시설에 면회할 수 있다. 1명만 가능하다. 전화 예약 후 FFP2 마스크(우리의 KF94)를 쓰고 면회할 수 있다. 이 주의 뉘른베르크의 한 요양원은 하루 한 명 면회를 허용한다. 48시간 이내 발급한 코로나 음성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물론 면회를 허용하긴 하지만 가급적 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일본도 2명까지 5~10분 허용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2월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면회를 제한하다가 10월 완화했다. 최소한 인원으로 제한하고 최근 2주간 발열이 있는 사람은 안 된다. 환기가 잘 되는 장소에서만 면회할 수 있다. 삿포르시는 지난해 5월 온라인 면회만 허용했는데 직접 면회를 못 해 치매가 악화하는 경우가 나왔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방호복을 입고 30분 면회하는 것을 허용했다. 방호복 한 벌이 10만엔(100만원)이어서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오다와라시의 한 요양원은 3m 거리를 두고 5분간 만나도록 허용한다. 홋카이도의 한 요양원은 2명으로 제한하고 10분 면회를 허용한다. 체온을 잰다. 마스크를 써야 하고 비상구나 현관에서 만난다.


한국은 음성확인 쉽지만...
한국은 지난해 12월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전국에 임시선별진료소를 깔고 아무나 무료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독일 바이에른주처럼 음성확인서를 지참한 사람에 한해 설 연휴만이라도 면회를 허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그런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일부 요양병원·요양시설이 꾀를 내 대면 면회에 버금가는 비대면 면회를 시행한다. 울산광역시 이손요양병원은 비닐 면회실을 마련했다. 비닐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댈 수 있고 세배를 할 수도 있다. 6~14일 하루 20개 가족 신청을 받았더니 하루만에 마감됐다. 가족 4명까지 가능하다. 차에 타고 대기하다 15분간 면회한다. 면회가 끝나면 비닐 면회실을 소독한다.


비닐 면회실서 세배한 딸
곽나률(63)씨 부부는 6일 오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중인 아버지(89)를 면회했다. 입원 후 한 달 반만이다. 이날 아침 일찍 서둘러 부산에서 1시간 넘게 달려왔다. 부부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서 휠체어에 간신히 앉은 아버지에게 세배했다.

곽씨는 "불편한 게 없느냐. 식사는 잘하시느냐"고 물었다. 세배하면서 "식사 잘하세요"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치매기가 있다고 한다. 자꾸 "돈 가 온나(돈 달라는 경상도 사투리)"라고 말했고, 곽씨는 그걸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곽씨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식빵, 중풍에 좋다는 사과 등의 간식을 가져갔고 의료진에게 전달했다. 곽씨는 "요양병원 면회 금지라고 해서 아버지를 못 뵐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배를 올리게 해준 병원이 고맙다"고 말했다.

이손요양병원 손덕현 원장은 "입원한 지 1년 반 넘은 78세 뇌경색 환자에게 회진을 갔더니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보였다. 큰아들을보고 싶다는 표현이다. 어떤 환자는 사회복지사와 가족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병실 TV에서 설 소식을 듣고 자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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