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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우울 털어놨더니, 엄마는 '정신병' 취급했다 [스위트홈은 없다]

입력 2021. 02. 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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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이 우울의 늪, 괴로운 아이들
코로나19는 생계를 위협하고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크고 작게 심리적 위축을 겪었습니다. 특히 정서적으로 예민한 청소년들의 ‘코로나 충격’은 큽니다. 집 밖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학교와 친구들, 세상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했지만 정서적으로 온전하게 보호받진 못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도움을 받아 지난해 청소년사이버상담 사례를 들여다 봤습니다. 어른으로부터 무관심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집이 차라리 지옥이었습니다. 화면으로만 소통하면서 깊은 우울과 침체를 겪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위로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채팅방 같은 또래들 세상에 더 몰두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새학기, 아이들은 묻습니다. 올해도 이렇게 내버려둘 건가요?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어렵게 꺼낸 이야기들]

#1. 고등학생 유빈(가명)이는 중학교 시절부터 나름의 노하우로 우울감을 해소했다. 뭔가에 몰두하는 거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해 온갖 영상을 몇 시간이고 쳐다보며 웃었다. 때론 생각나는대로 뭔가를 그렸다. 그러면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은 지독한 우울감은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우울은 고등학생 유빈이를 질기게 따라다녔다. 전염병이 확산하면서 2학년이 된 지난해 3월, 학교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때와 맞물려 그늘진 감정은 더 요동쳤다. 화면 속으로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은 긍정적인 자극을 주질 못했다. 공부는 왜 하는 건가, 인생은 이다지도 의미없는 것일까, 왜 살아야 하나…. 엄마에게 감정을 털어놨다. “또 그 소리….”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그나마 털어놓을 곳은 친구 뿐이었다. 긴 통화를 마치면 눈은 항상 퉁퉁 부어 있었다.

#2. 컴퓨터 화면에선 매일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민준(가명)은 거기 있지 않았다. 인터넷 세상을 배회하다 눈에 띄는 동영상, 게시물에 빠졌다. 딱히 궁금한 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검색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온라인 수업이 끝나 있었다. 처음엔 그저 ‘현자타임’이 몰려왔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런 날들이 쌓이니 죄책감으로 감정이 변질됐다. 민준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의욕도 생기고 목표도 정했다. 특히 코인노래방은 활력소였다. 하지만 작년엔 꼼짝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무기력과 우울함이란 감정과 마주해야 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어떻게 하면 될지 몰라 민준은 고통스럽다. ‘죽으면 차라리 편안할까’하는 무서운 생각마저 고개를 들었다.

#3. 진주(가명)가 고대했던 중학교 입학식은 열리지 않았다. 같은반 친구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렇게 중학생이 됐다. 처음엔 아침마다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 좋았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온라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두려워졌다. ‘엄마, 아빠도 돌아가실지 몰라’ 하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이 덜컥 머리를 장악했다. 내 미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온라인 수업도 집중하려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공부에도 신경썼다. 덕분에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1등과 격차는 크다. 수능, 취업…. 내 앞날의 불확실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혔다.

[권해원 디자이너]

[집에서도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

스위트홈(sweet home)은 없었다. 코로나19가 지구를 훑으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크게 변했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문을 닫아야 했고, 수업은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졌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집에 머물러야 했다. 전염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게 신체적·정서적 안전까지 담보하진 못했다.

10대 시절엔 정체성에 눈을 뜬다. 코로나 시절을 통과하면서 일부 청소년들은 우울, 불안, 무기력을 경험했다. 어지러운 감정을 가정 안에서 건강하게 다루지 못한 청소년들은, 집 밖에 자기 얘기를 했다. 유빈·민준·진주의 이야기는 지난해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운영)에 청소년들이 남긴 상담 사례다. 지난해 센터를 통해 이뤄진 상담(32만건) 가운데 일각이다. 역대 최고치다. 교육부를 비롯한 다른 부처와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온라인상담 실적까지 합치면 더 늘어난다.

김경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복지연구실장은 “학교엘 가면 선생님들이 아이들 표정만 봐도 (어려움을) 감지했고 혹은 또래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루만져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하나씩 연결을 해서 의도적으로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른들도 정서적으로 우울이 많았던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고립되었던 부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센터가 집계한 작년 상담 통계를 보면 코로나19가 청소년들의 정서에 어떤 형태로 영향을 줬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유난히 상담의뢰가 늘었던 3대 키워드는 ▷컴퓨터/인터넷 사용 ▷가족 ▷정신건강이다. 센터에 근무하는 41명의 상담사는 온라인 게시판, 채팅 등의 비대면 방식으로 학생들의 정서적 어려움을 들었다.

[게티이미지]

[내 얘기 누가 들어주나요]

청소년들이 심리상담을 의뢰하는 통로는 3가지로 나뉜다. 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의 요청에 의하거나 학생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경우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등교일은 들쭉날쭉했다. 이 때문에 3각 축의 하나인 선생님의 역할은 크게 줄었다.

부모들의 역할은 천차만별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소속된 교육복지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교육복지 가정은 부모조차도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아이들 상태까지 예민하게 살피기 어렵다”면서 “일반가정에선 아이의 어려움을 집 밖에 꺼내놓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자발적으로 이야기할 곳을 찾는 청소년들이 늘었다. 사이버상담이 늘어났다는 건 그들이 현실공간에서 의지할 곳 없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비대면 상담은 한계가 있다. 상담사들은 심리적 어려움이 심각한 사례는, 오프라인으로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다. 우울증 수준이 높다고 판단된 고등학생 유빈이에겐 청소년상담가를 만날 수 있는 상담복지센터로 연결했다.  

서울 노원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백윤영 청소년상담사는 “학생이 직접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는 부모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내 얘길 누군가에게 그냥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심리가 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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