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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잘 다녀오셨나요, 저는 못 갔습니다"

오경민 기자 입력 2021. 02. 14. 16:29 수정 2021. 02. 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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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시작된지 올해로 꼭 20년이다. 2001년 1월,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70대 장애인 부부가 타고 있던 휠체어리프트가 추락하며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당시 부부는 설을 맞아 아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이 참사를 계기로 결성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 20년간 서울 지하철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라고 외쳤다.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278개 역 중 256개(92.1%)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2019년 기준 서울시 전체 시내버스 7405대 중 3692대(49.8%)가 저상버스로 교체됐다. 장애인의 단체 이동을 위한 ‘특별교통수단’도 도입됐다. 그러나 아직 ‘100%’가 아니다. 누군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에서 불안을 안고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고, 저상버스를 기다리며 여러 대의 버스를 보낸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015년 ‘100%’를 약속한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및 실천계획’을 이행하라는 요구를 담아 지난 10일 직접행동에 나섰다. 이날 오후 3시20분쯤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당고개역에서 서울역까지 지하철 4호선 하행선 열차를 타고 내리는 시위를 했다. 열차 운행이 지연되자 서울교통공사는 공식 트위터 계정 등을 통해 “현재 4호선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로 인해 4호선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안내했다.

서울교통공사 트위터 갈무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장애인들이 정당하게 탑승권을 사서 내리고 탔을 뿐인데 지연이 발생하면 누구 잘못인지는 명백하지 않느냐” “애초에 서울시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했으면 없었을 일”이라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를 비판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4호선을 이용한 승객 일부는 주최 측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피해를 주면 어떡하냐. 명절 귀향 열차를 놓치고 약속도 못 지켰다. 뭔가 요구하려면 다른 사람들에 피해 주지말아야 한다”는 e메일 항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날 주최 측 SNS 게시물에는 “시위 때문에 고향에 못 갔다” “명절 전날 이럴 필요가 있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장애인들은 명절마다 고향 방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역버스, 고속버스 등 시외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의 장애인 접근성 보장은 여전히 열악하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 사업을 시범 운영하며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가 첫 선을 보이고 서울에서 부산, 강릉, 전주, 당진을 오가는 4개 노선에 버스가 10대 투입됐다. ‘서울~당진’ 노선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차로 갈 수 있어 활용도가 떨어지고, 이 노선들을 포함해 대부분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는 휠체어 전용 리프트는커녕 휠체어를 타고 진입할 수 있는 복도조차 확보돼 있지 않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쌍문동, 방학동 등만 가도 마을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진입할 수 없는 곳들이 많은데 서울시 마을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사실상 0%”라며 “장애인들은 명절에 서울에 있는 고향집조차 방문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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