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 인천공항은 이렇습니다

허건 입력 2021. 2. 1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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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관문에서 코로나 방역의 보루로.. 달라진 역할만큼 변화된 공항

[허건 기자]

▲ 폐쇄된 체크인 카운터 코로나19로 인해 출발 항공편이 감축된 1터미널 출발 카운터가 리모델링 공사를 이유로 폐쇄되어 있다.
ⓒ 유채하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누구든, 해외로 가려면 이곳을 거쳐야 한다. 바로 인천공항이다. 인천공항은 2001년 개항 이후 줄곧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 등과 함께 세계 1위 공항으로 여러번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인천공항은 다양한 명성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돼 있다. 거대한 규모의 터미널로 대변되는 인천공항의 국제적 위치, 휴가철만 되면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가득 찬 공항 내부, 유학 혹은 이민을 떠나는 출국객들의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표정 등 인천공항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며 인천공항의 모습과 상징도 달라졌다. 여행객들의 웃음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터미널은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는 공항 직원들과 질병관리청 직원들의 방역복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전쟁터'로 바뀌었고, 공항의 역할도 대한민국의 관문에서 방역전쟁의 중요 보루가 되었다. 현재 인천공항은 국내로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2월 8일, 코로나19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텅텅 빈 '출발 항공편 안내판'
 
▲ 인천공항1터미널 교통센터의 모습 자기부상열차, 식당가, 공항철도, CGV 등의 시설을 이용하던 출국객들의 수가 줄어 교통센터도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 유채하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1터미널역에 내렸다. 게이트를 나가자마자 보이는 곳은 자가부상열차, CGV, 식당가 등이 모여있는 교통센터다. 과거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공항에 오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통센터는 인천공항의 이용객 수와 큰 규모 등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교통센터 내부는 더욱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교통센터 내에 있는 CGV는 이용객 감소로 운영을 중단했고, 자가부상열차 역시 열차 운행 편수가 급속도로 감소하여 특정 시간대에만 운영되고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상주직원들, 식당가와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일하는 알바생들, 공항철도 직원들만이 업무차 교통센터 내부를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 교통센터 내부에 위치한 출발 항공편 안내기 많은 공항 이용객들이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확인하던 출발 항공편 안내기. 대부분 텅 비어있는 안내기의 모습이 코로나19와 함께 변화된 세상의 의미를 보여준다.
ⓒ 유채하
 
여객터미널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출발·도착 자동안내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출국자들이 가장 먼저 설렘으로 확인했던 이 자동안내기에는 한때 빼곡할 정도로 많은 항공편이 출발과 도착을 알렸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국제항공편이 중단되면서 자동안내기에도 이제는 빈 칸이 많아졌다. 하루 단 10편의 비행기도 출발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동안내기의 모습은 달라진 세상의 무서운 현실을 실감케 했다.
 
▲ 공항철도 인천공항1터미널역 전경 수많은 출국자들과 방문객들로 가득했던 역사는 이전에 비해 초라해보일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 유채하
 
공항철도 역사 역시 초라해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직통열차와 일반열차를 타는 곳이 따로 떨어져있었지만 직통열차 운영 중단 이후 이용객은 모두 한 게이트로만 입장한다. 캐리어를 끌며 여행의 설렘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직원들과 소수의 해외출국자들만이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었다. 큰 역사는 드문 인적 때문에 더욱 텅 비어 보이는 것 같았다. 
문 닫은 체크인 카운터들
 
▲ 인천공항 무인로봇의 모습 한때 많은 승객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무인로봇.
ⓒ 유채하
 
교통센터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여객터미널이 나온다. 여객터미널 내부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3층 출발층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설렘과 기대,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3층 출발층의 모습이었다. 인천공항을 방문객으로, 또 출국자로서 자주 방문했던 나 역시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을 그리워했다. 

그런 환상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부서지고 말았다. 웃음과 설렘의 장소이던 출발층은 더 이상 이전의 의미를 간직한 공간이 아니었다. 국제선의 감소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출발층은 침묵의 장소로 바뀌어있었다.

출국객이 너무 많아 항공사들이 운영했던 짐 없는 고객을 위한 임시 카운터, 급히 로밍이 필요한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통신사들의 출장 카운터들도 전부 문을 닫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일부 체크인 카운터들은 공사 중이거나 줄어든 수요에 적응하려는 듯 폐쇄되어 있었다. 성수기 시즌, 체크인을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섰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기에는 질병이 바꾼 변화가 너무나 처참했다.
 
▲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들을 담은 벽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용감한 의료진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대형벽화가 걸려 있다.
ⓒ 유채하
  
▲ 텅 비어있는 공연장 여행객들의 설레는 마음을 고무시켜주던 공연장도 공연자 없이 텅 빈 모습이다.
ⓒ 유채하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거대한 벽화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지난 2020년 4월 이탈리아인 화가가 코로나19와 맞서 싸운 용감한 의료진들을 응원하기 위해 손수 제작한 대형 벽화이다. 코로나19 방역의 보루라 여겨지는 공항에서 영웅과도 같은 존재인 의료진들이 눈을 맞추며, 함께 승리와 선전을 다짐하고 있는 모습 같았다. 공항에서도 대형 벽화 속에서처럼 마스크를 쓰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과 방역당국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벽화에서 묘사된 위대함을 간직한 이들은, 나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충실히 치르고 있었다.

2층을 내려다보니 작은 무대가 보였다. 인천공항은 여행객들을 위해 매일 이곳에서 음악, 무용 등 다양한 공연을 열곤 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릴 때 들려오는 노래소리와 음악, 현란한 안무는 여행객들의 설레는 마음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선 운항이 감소하고 공연 역시 개최되기 어려워지면서 뜨거웠던 무대도 방치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설렘과 행복만 가득했던 공항에서, 침묵이란 현상은 너무나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터인 도착층
  
▲ 해외입국자들을 맞이하는 도착홀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도착홀에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시작된다.
ⓒ 유채하
 
▲ 곳곳에 보이는 해외입국자들을 위한 앤내문 해외입국자들은 입국 때부터 지켜야 할 수칙들이 많다. 자가격리를 위한 집 혹은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여러 제약이 따른다.
ⓒ 유채하
 
1층 도착홀은 본래 방문 계획에 없었다.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성도 위험성이지만, 해외입국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방역당국 직원들을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마침 방문시간대에 도착하는 항공기가 없어, 1층이 그나마 한가해지는 시간대에 운 좋게 1층에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다. 2020년 11월 호주에서 입국했던 나에게, 또 그 전에도 수도 없이 이곳을 방문했던 나에게 이곳은 낯선 공간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도착했음을, 집에 왔음을 알려줬던 설렘의 공간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이곳은 방역의 전쟁터로 변했다. 3층 출발층에서 느꼈던 침묵과 한적함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과 진중함이 느껴졌다. 해외입국자들과 기존 방문객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이곳저곳 고객차단선이 설치되어 있었고, 방역복을 입은 방역당국 직원들과 의료진들이 중간중간 방역상황 체크와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공간이 내게 주는 중압감은 이곳에 있는 것 자체를 무섭게 만들었다.

이날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항공편은 출발 항공편과 마찬가지로 10편이 조금 넘었다. 해외입국객들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1층, 그리고 그 전쟁에 임해야 하는 1층 사람들은 침묵과 결의의 자세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터미널을 나오며
 
▲ 텅 비어있는 인천공항 리무진 승차장 인천공항 리무진 승차장이 텅 비어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여행객들을 각 지역으로 이동시켜주던 리무진 버스들은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자취를 감췄다.
ⓒ 유채하
 
1층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오니 리무진 버스 승차장이 보였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여러 해외 입국자들이 여행의 설렘과 함께 가득 메웠던 장소였던 이곳은, 코로나19가 강타한 이후 여타 다른 공항 시설들과 마찬가지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리무진 버스가 운행을 중단했고 인천 시내로 들어가는 인천 버스 몇 대만이 텅 빈 승차장 도로를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 해외입국자들을 위한 안내문 해외입국자들은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 유채하
 
▲ 텅 비어있는 김포공항행 KAL 리무진 버스 유일하게 운행중인 김포공항 KAL 리무진 버스가 텅 비어있다. 2터미널을 경유한 이 버스는 2터미널에서 승무원 3명을 더 태우고 출발했다. 김포공항까지 이동한 승객은 나와 승무원까지 합쳐 고작 4명에 불과했다.
ⓒ 유채하
 
대부분의 리무진 버스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4개나 운행중이던 매표소도 1개로 줄어들었다. 그곳에서 김포공항행 KAL 리무진 버스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지난 김포공항 취재에서도 목격되었던 이 버스는 현재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왕래하는 유일한 리무진 노선이다. 대한항공에서 직접 운영하는 노선의 특성상 두 공항을 업무 목적으로 왕래하는 승무원과 항공사 직원들을 위해 특별히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날 1터미널에서 김포공항행 리무진 버스 티켓을 끊은 사람은 나 1명이었다. 버스에 탑승하고 10여 분 이상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타지 않았고 결국 버스는 출발했다.

이 버스 노선은 2터미널을 경유하는 노선이다. 대한항공이 메인 터미널로 사용중인 2터미널에 도착하자 항공사 승무원으로 보이는 여성 승객 3명이 탑승했다. 김포공항까지는 45분이 소요되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수시로 정체를 보였던 인천공항고속도로 역시 오고가는 차 없이 텅 비어있었고, 김포공항까지 지연 없이 도착할 수 없었다. 공항 터미널 안에 머무는 시간은 짧았지만, 달라진 인천공항의 역할과 이것이 주는 중압감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2터미널은 방문하지 못했다. 예정보다 방문 시간이 늦어진 탓이었다.
 
▲ 2터미널로 향하는 도로 옆 활주로 2터미널로 향하는 도로 옆에는 인천공항 활주로가 위치해있다.
ⓒ 유채하
 
달라진 인천공항의 모습을 경험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관문으로서 수많은 여행객들의 설렘과 행복, 기대로 가득찼던 공항의 모습은 코로나19와 함께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들의 결연과 투지만이 남았다. 언제쯤 다시 예전처럼 공항에 찾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인류는 결연, 공포 등 평소 마주하기 꺼려온 분위기와 감정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했다. 

인천공항에 봄이 찾아오려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체크인 카운터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의료진들의 용감한 눈빛처럼, 모든 시민의 힘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다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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