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원칙도 비전도 없었다.."크루즈선 방역 실패 지금도 반복"

윤설영 2021. 2. 1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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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크루즈선 코로나 집단감염 1년
'선체 봉쇄'로 대응했지만 확진 속출
하선 승객들, 감염 확산시켰을수도
PCR 검사, 병상 부족은 계속 이어져

2020년 2월 3일 오전 일본 요코하마항으로 향하던 12만t급 호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선내 방송이 흘렀다.

“이 배는 예정보다 빠른 3일 오후 8시 반에 요코하마 앞바다에 도착해, 검역을 실시하겠습니다.”
이 시각 크루즈선에는 8일 전인 1월 25일 홍콩에서 내린 남성 승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비밀리에 전달됐다. 3일 밤 검역관을 실은 작은 보트가 크루즈선으로 향했다. 4일 밤 발열 증상을 보인 승객 31명 중 10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선내에선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승객 2000여명은 식당과 연주회장, 수영장 등에서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을 즐겼다.

지난해 2월 19일 오전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해있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교도=연합뉴스]

선내 분위기가 돌변한 건 다음 날인 5일 아침이었다. “일본 검역 당국으로부터 각 객실에 머물러 달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선은 빨라야 14일 뒤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 줄줄이 전해졌다. 사상 유례없는 14일간의 선체 격리, ‘악몽의 크루즈’의 시작이었다.

지난해 2월 발생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전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기 직전으로, 당시 일본 전체의 누적 확진자 수는 고작 24명(2월 4일 현재)이었다.

일본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크루즈선의 승객과 승무원 총 3713명 가운데 712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고 14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실제 확진된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 승객의 상당수는 검사를 기다리던 중 자국으로 돌아갔으며 호주, 미국 승객 중 23명은 자국 땅에 도착한 뒤 검사를 통해 양성이 확인됐다.

다이아몬드프린세스호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일지.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와타 켄타로(岩田健太郎) 고베대학병원 교수(감염증내과)는 중앙일보 취재에 “712명이라는 숫자는 일본 정부가 센 것만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감염자는 1000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 3713명이 다 검사를 받지도 않았다.

5일부터 모든 승객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격리’가 시작됐지만, 확진자 수는 줄지 않았다. 격리 13일째인 17일엔 하루 동안 99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배에서 조사작업을 벌이던 검역관과 후생성 직원 등 외부인 9명도 줄줄이 확진이 확인됐다.

18일 후생성의 요청으로 선내로 진입했던 이와타 교수는 지금도 배 안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격리의 기본인 조닝(zoning: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곳을 그린존, 오염된 곳을 레드존으로 구분하는 작업)이 안 되어 있었다”면서 “배 안에 있던 후생성 관료들도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자 되려 배에서 쫓겨난 그는 이후 유튜브를 통해 배 안의 상황을 전 세계로 알렸다. 그는 “20년 넘게 감염증을 다뤄왔지만, 방역 상태가 너무 허술해 두려움을 느꼈다”고 폭로했다.

이와타 겐타로 고베 대학병원 감염증 내과 교수가 지난 해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승선한 뒤 당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상황을 전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애당초 3700여명에 대한 검사를 할 엄두도, 이들을 모두 수용할 병상도 생각해내지 못한 일본 방역당국은 승객 전원을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 조치가 감염을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승객들에게 음식 등을 배달했던 승무원들은 방역 피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배 곳곳으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가미 마사히로(上昌弘) 의료거버넌스 이사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일본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승객들의 건강이 아니었다. 도쿄올림픽 생각과 감염자가 육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지병이 있는 고령자와 20대 승무원을 똑같이 다룬 것은 패착이었다고 지적한다.

승객들의 하선 과정에서도 문제점은 있었다. 19일부턴 3일에 걸쳐 승객 총 1011명이 하선을 했으나 하선 때 추가 PCR 검사를 받지 않았다. 이들은 고속버스나 신칸센 등 대중교통을 타고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승객 중 249명이 집으로 돌아간 뒤 이상 증상을 보였고, 이 중 7명이 양성으로 확인됐다. 무증상 감염자를 감안하면 드러나지 않은 감염자는 더 있었을 수 있다. 이들이 지역사회에 감염을 확산시켰는지에 대한 추적 조사는 공개된 것이 없다.

지난해 2월 19일 오전 요코하마항 다이코쿠 부두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내리는 코로나19 미확진 승객들을 태울 버스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크루즈선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PCR 검사 부족, 병상확보 곤란 등의 문제는 지난 1년간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PCR 검사를 해주는 민간 업체가 생겨났고, 경증 환자나 무증상자는 병원이 아닌 지정 호텔에서 요양을 할 수 있게 됐지만 “비전문가가 방역행정을 지휘하고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타 교수는 “방역에 대한 최종적인 목표 없이 환자가 늘면 격리를 해보고, 병동이 부족하면 병동을 늘리는 식의 ‘땜질 처방’이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격리는 적절한 조치였다”(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2020년 2월 18일)는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스가 총리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새로운 감염증에 대한 대비로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제대로 검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예산 3000만엔(약 3억1700만원)을 들여 크루즈선에서 감염증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담하기 위한 국제 매뉴얼 작업을 벌이고 있다. 당시 크루즈선은 영국 국적으로, 운영회사는 미국, 선장은 이탈리아 국적이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코로나19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일간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고 영업 재개를 알렸지만 하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날이었다. 항해를 재개하는 건 빨라도 오는 7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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