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퍼전파자 낙인 1년…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대구/이승규 기자 2021. 2. 15.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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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첫 감염’ 국민적 공분 샀던 31번 신천지 확진자의 고백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구 시민과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었습니다.”

설 연휴이던 지난 13일, 대구광역시 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A(62)씨가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지난해 2월 18일 대구 지역 첫 코로나 확진자로 판정된 신천지 신도다. 이날을 기점으로 대구에선 확진자가 속출했고, 2월 29일에는 하루 최다인 74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초기 확진자 다수가 신천지 신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A씨는 ‘수퍼 전파자’ ’31번 확진자'로 불리며 국민적 공분(公憤)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구 지역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 1년을 앞두고 본지와 만난 A씨는 67일간 입원 생활을 포함, 사회적 낙인(烙印)으로 얼룩진 지난 1년을 전했다.

◇발병

지난해 2월 6일 A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음 날 머리가 아파 한 병원에 입원했고, 이틀째부터 감기 기운을 느껴 병원에서 약을 타 먹었다. 가벼운 감기로 생각해 9일 마스크를 쓰고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이튿날 발열 증세가 있었지만 병원 독감 검사에선 음성 판정이 나왔다. A씨는 “17일 아침에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병원에서) 폐렴이니 큰 병원으로 옮겨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병원 측은 “3차례 이상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했지만 A씨가 거부했다”고 밝혔으나, A씨는 “코로나란 말을 들은 것은 17일이 처음이고, 바로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대구 한 카페에서 대구 지역 첫 번째 코로나 확진자인 A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규 기자

A씨는 15일에 결혼식에 참석했고, 16일엔 예배를 보러 갔다. A씨는 “내가 누군가에게 병을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시행되기 전이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지침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17일 병원에서 폐렴 소견을 받은 A씨는 수성구 보건소로 향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해외 이력이 없으면 코로나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이날 대구의료원에 입원했고 다음 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투병

A씨는 휴대폰 하나만 챙겨 입원했다. 감염 위험 때문에 보호복을 착용한 의료진 외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못했다. A씨 확진 소식에 대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A씨 비난 글이 온라인 공간을 달궜다. 입원 다음 날 “(A씨가) 퇴원을 요구하며 간호사 마스크를 벗기고 몸싸움했다”는 글이 퍼졌지만, 경찰과 질본의 확인 결과 가짜 뉴스로 드러났다.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자 A씨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얘기도 나왔다. A씨는 “청도 초입에 있는 찜질방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대남병원은 근처에도 안 갔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도 A씨와 청도 감염 사이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A씨는 입원한 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졌다. 목에선 피가 나왔다. 면도날로 베는 느낌의 근육통이 이어져 온몸에 파스를 붙여야 했다. 물만 마셔도 구토가 계속됐고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A씨는 “예전에는 빵 냄새만 맡아도 바로 사서 먹고 싶었는데 이제는 입맛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A씨는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

◇낙인

A씨는 “확진 이후 그렇게 친했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남편은 A씨에게 “죽은 사람처럼 살자”고 했다. A씨는 “내 육체적 고통보다 가족을 향하는 공격이 더욱 괴로웠다”고 말했다. A씨가 확진된 날 장남이 다니던 회사는 장남에게 6개월 무급 정직 조치를 내렸다. 그는 “지금은 복직했지만, 그때 아이가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했다. A씨 차남은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하던 공장에서 곧바로 해고됐다. 그래도 엄마가 혹시나 극단적 선택을 할까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A씨는 지난해 경북대병원에서 두 차례 혈장 공여를 했다. 그는 “고통받는 단 한 분에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A씨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나 단체를 혐오하는 것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우리 주변의 확진자를 좀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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