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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뒤 진짜 고통 시작됐다"..벗어나기 힘든 직장 내 괴롭힘

김지혜 입력 2021. 02. 15. 14:26 수정 2021. 02. 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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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 대기업에서 2년여간 갑질에 시달렸다는 A씨가 지난 8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뒤 ‘진짜 고통’이 시작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고 안 했을 거다.” 지난 2019년 국내 모 대기업에 계약직 책임자로 입사한 A씨의 한탄이다. 그는 현재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10개월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A씨는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과거를 후회한다고 했다. 자신이 피해자인데 오히려 회사는 이달 말 계약 만료를 이유로 퇴사를 통보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A씨는 입사 직후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 상사에게 “얻어맞아야 정신 차린다” “이 XX, 개과천선했다” “이 회사 아님 어디 갈 데나 있냐” 등 모욕적 언행을 지속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말 상사가 자신에게 폭언을 하며 물건을 집어던진 일을 계기로 신고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믿고 회사에 피해를 접수했지만, 신고 철회를 강요받았다. 행정처리 지연과 부실 조사로 진실은 은폐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당하게 업무에서 배제됐으며 직원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등을 돌렸다”고 덧붙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 현재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만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경험자 중 과반(53.8%)은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는지에 대해서는 69.2%가 ‘있다’고 답했다. 불이익 종류로는 ▶징계, 근무조건 악화(61.1%) ▶괴롭힘, 따돌림(33.3%) ▶해고(5.6%) 등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고용노동청이나 회사에 괴롭힘을 신고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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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의 실효성과 한계, 개선 방향 등을 권두섭 변호사(시민단체 직장갑질119 대표)와 조창연 노무사(노무법인 산재)에게 물었다.

Q : 1차 신고를 왜 제3의 기관이 아닌 사업주(회사)에게 하게 하는가.

A : 권 변호사= 사내 괴롭힘은 함께 일하는 도중 지위·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대개 명확한 증거를 모으기 힘들다. 때문에 증거가 필요한 노동청이나 수사기관과 달리 강제 권한은 없지만, 동료 증언이나 평소 분위기로 피해 사실 파악이 가능하다. 이 과정 자체가 가해자에게 압박을 줄 수도 있다.

Q : 조사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겪는 경우도 많을 텐데.
A : 권 변호사= 사측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신고가 들어온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게 원칙이다. 애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예방’이 목적이라 법적 강제력이 크지 않다. 따라서 사측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사업주는 조사 후 가해자에게 문제 재발 시 강력한 처분을 시행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가해자에게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도 좋다. 회사 사정상 관련 사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노동위원회 등 전문 기관으로부터 자문을 받는 방법도 있다.

Q : 사측으로부터 피해를 구제 받지 못했을 땐 어떻게 하나.
A : 조 노무사=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따르면 노동청에 진정을 넣을 수 있다. 근로감독관을 통한 조사 결과를 회사에 공문으로 보내는 것으로 법적 제재를 가하는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정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땐 해당 사업장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위반 사항이 있을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사업주가 가해자일 경우엔 노동청에 소속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청원’ 요청도 가능하다. 이 역시 권고 기능만 있을 뿐 강제적 조치가 따르진 않는다.

Q : 2차 가해가 발생한 경우 대응 방안은.
A : 조 노무사= 회사가 신고자에게 해고 등의 불이익을 줄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경우엔 이달 말 근로계약이 종료되면 현실적 구제를 받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정신과 진료가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동료로부터 따돌림이라는 2차 가해를 받을 경우 다른 부서로 배치해달라는 요구 정도는 해볼 수 있지만, 법률적으로 다투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Q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효용성을 높이려면.
A : 권 변호사=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사용자가 즉시 조치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준 경우 실제 처벌한 사례도 거의 없다. 이 법의 적용 범위에는 사각지대도 많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같은 회사 소속이어야 하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원청-하청, 경비원-입주민 등의 관계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사용자의 친인척이 노동자에게 갑질을 한 경우도 신고가 어렵다. 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개정 작업을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하는 중이다. 노동부는 현장에서 해당 법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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