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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나메기' 백기완 빈소에..文대통령 조화가 오지 못한 이유

권혜림 입력 2021. 02. 15. 16:28 수정 2021. 02. 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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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완아! 이웃들이 다 어렵게 사는데 네 배지(배)만 부르고 네 등만 따시고자 하면 너 인마, 키가 안 커!”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어린 시절 자주 들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백 소장은 생전에 “그 말이 내 일생을 길라잡는 새김말(좌우명)이 돼버렸어”라며 어머니의 말씀을 자주 언급했다.

백 소장이 떠나는 길은 어머니의 새김말을 따른 듯했다. 빈소에 조화가 하나도 없었다. 고인은 생전에 "나에게 보낼 조화가 있으면 소외된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한다. 이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연락을 취해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를 전달하려 했지만, 장례위원회 측은 사양했다.

15일 오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15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한 백 소장의 유가족 대표인 장녀 백원담 교수(성공회대 중어중문학과)는 "아버지는 평소 '길거리에서 싸우다 죽겠다. 병상에 갖다 넣지 말라'고 하셨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병상에 넣지 말라”던 고인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장례의 명칭은 고인이 쓴 마지막 글귀 '노나메기'로 정해졌다. 고인이 임종 직전 쓴 마지막 글귀인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백 소장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책 『버선발 이야기』(2019)에 ‘노나메기 사상’을 담았다.

공식 조문이 시작된 이날 오후 2시부터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계 인사로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박 전 장관은 "대학로에 있는 통일연구소에 거처하실 때 기자로서 찾아 뵙기도 했고 국회의원 시절에는 응원 메시지도 주셨다"며 "재벌개혁, 검찰개혁 힘내라고, 저에게 시원하고 단호해서 좋다고, 정치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더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빨리 가셨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조문한 후 나서고 있다. 뉴스1

김원웅 광복회장은 고인에 대해 "가장 든든하게 생각했던 어르신"이라며 "외세에 의해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하나된 나라, 민초가 주인된 나라를 만들고 후손들로 구성된 광복회가 선생님 뜻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인사를 드렸다"며 "일관되게 거친 황야를 걸어오신, 한평생 가슴에 와 닿는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류호정, 배복주, 장혜영 등 정의당 의원들도 이날 조문했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민생이 어려울 때 진보진영의 큰 별이 진 게 안타깝다"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사람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사셨던 큰 뜻을 이어받아 정의당이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나은 자세로 필요한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백기완 선생님은 항상 길 위에서 뵀다. 촛불집회 뿐아니라 광우병, 사대강 때도, 거리위 뿐 아니라 여러 현장에서 백 선생님이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앉아계시면 그렇게 든든했다"고 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도 "분단된 조국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한스러우셨을까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뜻을 잊지 않고 잇겠다는 다짐을 한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고 하셨다. 이제 앞서서 가셨으니 산자로서 고인의 뜻을 잊지 않고 큰 뜻이 역사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방문하자 일반 조문객이 "변절자"라고 외치다가 장례위원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 상임고문은 "(고인과) 처음만난 건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할 때"라고 회상하며 "백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민주화 운동 1세대는 다 돌아가셨다. 우리가 그 다음 민주화운동 세대인데, 아직 만족할만한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앞으로 후배들이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백 선생의 뜻을 잇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15일 백기완 소장의 빈소에는 3가지 종류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사진을 찍은 노순택 작가는 ″단순 추모자리가 아닌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기하는 자리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한편, 지난 20여년간 현장에서 백 소장의 사진을 찍어온 노순택 작가는 고인을 "돌아가실 때까지 현역이셨던 분"이라며 "백 선생님은 당장 이 모순을 깨기 위해 청년들보다 앞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였고, 많은 청년과 노동자들이 그를 '동지'로 받아들였다.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몸으로 하셨다"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백 소장의 빈소에도 평범한 영정사진이 아닌 '외치는, 주먹을 불끈 쥐는, 끌어 안는' 장면을 꼽았다고 했다.

5일장인 백 소장 장례식은 일반인의 조문을 받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외에 전국 16개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역 시민분향소가 설치된다. 아울러 추모관 홈페이지도 개설(baekgiwan.net)해 고인의 동영상, 사진을 비롯해 백 소장이 지향했던 삶을 담았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진행된다. 같은날 오전 9시부터 대학로에서 노제·추모 행진 후 11시 시청 광장 앞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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