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지금 놀라운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양상훈 주필 입력 2021. 2. 18. 04:06 수정 2024. 3. 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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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쪽으로 기우는 한국
미국 내에서 점증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
변곡점 지나는 미국 인내
미국의 일본 중시론 속
한국 배제론도 꿈틀

우리는 음력 1월 1일을 우리 설날이라고 하지만 세계에선 ‘차이니스 뉴 이어 데이(Chinese new year day)’라고 한다. 음력을 중국이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서구 초등학교에선 백인 아이들이 중국식 용 모자를 쓰고 중국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 중국 설을 공휴일로 정한 나라를 찾아보았더니 거의 전부 화교가 많거나 주축인 동남아 국가들이다. 아닌 나라는 한국과 몽골뿐이다. 특히 미국 동맹국 중엔 한국밖에 없다. 싱가포르도 있지만 화교권 도시국가다.

일본은 1873년 음력을 없앴고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도 1896년에 음력을 폐지했지만 아직도 1월 1일은 음력으로 따져 최대 명절로 하고 있다. 풍습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세계가 중국 명절로 아는 날을 가장 큰 명절로 쇠는 거의 유일한 미국의 동맹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미·중 사이에 놓인 우리 처지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 미국과 서방권에선 이런 우리와 관련해 놀라운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해 "우리는 미국 국민과 동맹국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9일 한 말부터 놀랍다. 기자가 ‘북의 핵 미사일 시험을 우려하느냐’고 묻자 “(그것보다) 우리가 한국,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걱정된다”고 답했다. 일본은 미국과 이견이 없다시피 한 나라다. 결국 이 답변은 북핵보다 한국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더 걱정이라는 것이다.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지만, 그 속엔 한국이 왜 미·일이 아니라 중·북 쪽으로 기우느냐는 시선이 있다.

과거에도 미국엔 앞으로 한국은 100% 중국으로 붙고, 일본은 100% 미국으로 붙는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시각이 주류를 이뤄가는 듯한 불길함이 있다. 중국, 북한에 도를 넘게 호의를 표시하고 일본엔 도를 넘게 적의를 드러낸 문재인 정권 4년의 결과다. 미국의 조야가 중국의 부상에 심각한 경각심을 공유하게 되고 더 늦기 전에 중국을 억제해야 한다는 절박하고도 일치된 견해가 등장하는 시기와 문 정권이 맞물리면서 이제 미국에서 한국은 동맹이라기보다는 ‘표류하는 나라’로 표현되고 있다. 몇몇 견해가 아니다. 광범위하게 그런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 인식은 명확한 근거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 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아인혼 전 국무부 고문은 문 정권이 중국을 의식해 북핵 방어용 사드를 강력히 반대했다고 지적한다. 이 일로 한국은 주한미군, 심지어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미국에 심어졌다.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은 한국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거부한 사례를 들고 있다. 한국은 미국을 위해 중국 견제에 동참할 뜻이 없고, 미국을 위해 조금이라도 희생할 생각은 더욱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중국 공산당에 축하 인사를 보낸 문 대통령을 향해 ‘이러려고 미국 청년들이 중공 침략에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느냐’고 공개적으로 분개했다.

2017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아시아에서 미국이 믿을 수 있는 진짜 동맹은 일본뿐이라는 인식은 견고하게 확산하고 있다. 부시, 오바마 행정부 때 올라간 한국의 위치는 원위치보다 후퇴했다. 일본과 정반대로 중국 견제에 일절 불참하는 한국에 대한 문제 의식은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보다 더 강하다. 바이든의 한·일 관계 회복 주문은 한국을 향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뜻이다. 미국의 유명한 지정학 분석가는 최근 저서에서 “한국은 일본과 치고받고 있다. 미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고 했다. 미국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이 이제 변곡점을 지나는 것 같다.

헤이글 전 미 국방 장관등 각국 고위 안보 관리 출신이 만든 ‘핵과 동맹’ 관련 보고서가 며칠 전 바이든 행정부에 제출됐다. 보고서는 호주, 일본, 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판 핵기획그룹을 창설해 미국이 핵무기 운용을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그 직후 미국에서 ‘한국은 빼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아인혼은 ‘한국은 중국을 의식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세이모어 전 백악관 조정관은 ‘반대할 수 있는 동맹에 미국이 먼저 제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롤리스 전 부차관은 한국이 결국 핵을 보유한 북한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은 일본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해 중·북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 경우 미·일은 나토식 핵 공유 협정을 맺게 될 것이다.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한국은 북에 복속될 수 있다’고 했다. 베넷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이 일본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대북 군사작전에서 한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도 미국에서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외교의 거목 조지 케넌이 역사적 전문을 통해 소련 봉쇄를 주장한 지 40여 년 만에 소련이 무너졌다. 최근 미국에서 그에 비견되는 익명의 기고문이 등장했다. 중국 전체가 아니라 시진핑을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봉쇄 방책에서 한국의 비중은 거의 없지만, ‘한국이 중국 쪽으로 계속 표류하고 있다’는 인식이 적시돼 있다. 동맹국과 그 적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 동맹은 결국 껍데기만 남는다. 우리는 그 후 어디까지를 생각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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