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하자마자 '외환위기'.. 25년간 '고난의 행군' [심층기획]

김범수 2021. 2. 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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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년여 만에 1000선을 잠시나마 회복한 코스닥.

하지만 코스닥은 출범하자마자 1997~1998년 외환위기 사태에 휘말리면서 극도의 침체기를 맞았다.

이해 9월 코스닥지수는 1000선 아래로 떨어졌고, 이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6일엔 525.80까지 하락했다.

지난달 26일 코스닥은 개인 투자자의 막대한 유동자금과 코스피의 선방으로 장중 1000선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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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美 나스닥 벤치마킹해 설립
IT 버블 절정기 2834 최고점 기록도
지난달 21년여 만에 1000선을 잠시나마 회복한 코스닥. ‘천스닥(코스닥 1000)’ 고지를 다시 밟기까지 코스닥의 역사는 굴곡이 많았다. 미국 나스닥은 ‘훨훨’ 날아오르는 데 비해, 코스닥은 밑바닥을 찍고 겨우 돌아왔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은 1996년 7월 1일 미국의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코스닥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자금조달 통로를 넓혀준다는 취지로 개설됐다.

코스닥 출범 당시 ‘100’이었던 기준 시점의 지수는 2004년 1월 26일 10배인 ‘1000’으로 조정됐다. 따라서 코스닥의 시작 지수는 1000으로 봐도 무방한 셈이다.

하지만 코스닥은 출범하자마자 1997~1998년 외환위기 사태에 휘말리면서 극도의 침체기를 맞았다. 시작부터 위기를 맞은 코스닥이었지만, 이는 향후 25년간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의 시작에 불과했다.

외환위기로 인한 침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김대중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으로 코스닥은 호황을 맞기도 했다. 코스닥 등록법인 수가 1998년 말 331개사에서 1년 만인 1999년 말 457개사로 급증했다. ‘정보기술(IT) 버블’ 시기였다.

버블 절정기였던 2000년 3월 10일 코스닥은 2834.40(장중 기준 2925.50)이라는 최고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IT버블 붕괴로 코스닥은 추락으로 이어졌다. 미국 나스닥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해 9월 코스닥지수는 1000선 아래로 떨어졌고, 이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6일엔 525.80까지 하락했다.

이어 2001년 미국 9·11테러 사태 직후인 9월 20일(493.60)엔 500선 아래로 하락했고, 2003년 3월 5일(393.60)엔 400선 아래로 떨어졌다.

2005년 노무현정부 들어서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과 게임, 바이오, 엔터주 중심으로 코스닥은 한때 700선을 넘었지만 잠깐의 호황으로 그쳤다. 일부 벤처기업에서 회사 자금 횡령,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부실 벤처기업 사태가 터지면서 코스닥은 다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코스닥은 역대 최저 기록을 찍었다. 종가 기준 최저점은 이해 10월 27일의 261.19, 장중 기록으로는 이튿날인 10월 28일의 245.06이다.

이후 코스닥은 500~700선에서 등락을 반복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지난해 3월 19일 428.35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코스닥은 개인 투자자의 막대한 유동자금과 코스피의 선방으로 장중 1000선을 돌파했다.

이 말은 코스닥이 25년 전 원점으로 되돌아 갔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코스닥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 코스닥의 새로운 부활로 해석한다.

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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