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1000만원 '텍사스 재앙'의 원인 민영화, 그리고

2021. 2. 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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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주간 브리핑] 전기 민영화, 기후위기 외면, 민생과 유리된 정치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지난 주부터 미국 텍사스주를 포함한 미 전역에 몰아닥친 겨울 한파와 눈폭풍으로 21일(현지시간) 오전 최소 58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텍사스주의 주민들은 예상치 못한 폭설과 한파로 수백만 가구가 전기, 수도, 식료품 등 부족으로 최악의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텍사스에서만 450만 가구가 겪었던 대규모 정전 사태는 거의 복구가 됐지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기요금 폭탄'으로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전기가 차츰 복구되자 수백만 가구가 수도가 끊겨 고생을 하고 있다. 추위로 상수도 파이프가 터지거나 정수 처리장이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병원에서 물 부족으로 수술이 지연되면서 한 남성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의료시설의 물 부족 사태다.

또 눈과 추위로 인해 도로 사정이 열악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식료품 부족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20일 텍사스주를 '중대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연방정부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1일 ABC와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텍사스를 방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이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대통령 방문에 따른 의전으로 복구 작업이 방해를 받을 가능성을 고려해 일정을 신중하게 잡을 것이라고 사키 대변인은 덧붙였다.

텍사스가 미국 남부지역으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드문 따뜻한 지역이었다는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1주일의 한파와 폭설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수백만 가구가 단전, 단수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재난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텍사스의 수난을 불러온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전기 등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 둘째, 기후위기 대응책 미비, 셋째, 공화당 일색의 지역 정치가 야기한 민생과 유리된 정치의 문제 등이다.

▲ 텍사스주의 한 가정에서 정전으로 난방이 불가능해지자 가족들이 추위에 떨며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1. 전기요금 1만불 고지서 받은 주민...민영화의 폐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텍사스

텍사스는 전력시장 민영화를 시행한 미국의 주 중 대표적인 사례였다. 텍사스주는 2002년 완전소매경쟁 체제를 도입했으며, 다른 지역과 달리 연방정부의 송전계통과 분리된 완전히 고립된 전력망을 갖고 있다.

이처럼 연방정부의 전력망 체제에 편입돼 있지 않는 것은 평소에는 연방정부로부터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편리할 수 있지만 이번 한파와 같이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타 지역을 통한 전력 융통이 불가능하다. 텍사스주는 지난 2011년 한파가 몰아닥쳤을 때 연방정부로부터 전력 부족 사태에 대비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했다.

전기 민영화로 인한 전력수급 불안정 문제는 어느정도 예상된 문제였다.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민영화로 인한 폐해로 전력 예비율이 목표치(13.45%)를 밑돌아 2014년 이후부터는 줄곧 한자리 숫자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확인된 것은 민영화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변동 요금제'가 적용되는 일부 업체(그리디)에서 이번 사태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시간당 전기요금을 1메가와트(MW) 당 50달러에서 9000달러로 올리면서 방 3개짜리 가정집에 전기요금이 1만 달러(약 1100만 원)이 부과되기도 했다고 NBC가 보도했다. 특히 이 업체는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다른 업체로 바꾸라'면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해 문제를 키웠다. 그렉 애벗 주지사는 19일 "한파로 고통을 겪은 주민들이 높은 전기요금으로 타격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관련 조사와 대응책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용카드 등을 통한 자동 납부 시스템을 이용하는 많은 주민들이 이미 수백, 수천만원 상당의 전기요금을 납부한 상태라고 NBC는 21일 보도했다.

▲ 텍사스 댈러스에 위치한 한 식료품점의 텅 빈 판매대. 폭설과 한파로 도로 사정이 나빠지면서 식품 등 생필품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AP=연합뉴스

2. "기후변화가 사기"라더니...텍사스의 '재앙'은 전국적 문제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이며, 텍사스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이 이런 위기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지난 2018년 이후 거의 매년 여름 캘리포니아주 등 서부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해 8월말부터 한달 넘게 지속된 서부지역(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등) 산불에 대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그해 9월11일 현장을 방문해 "낙엽을 치우지 않아서" 산불이 발생했다면서 기후변화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과학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후변화를 "사기"라고 주장하던 트럼프 정부는 4년 동안 이 문제를 등한시해왔다.

후임인 바이든 정부는 기후변화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기후변화 특사로 임명하는 등 위기 의식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기후변화의 '속도'와 정치적 대응 '속도'의 차이는 여전하다.

게다가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우세력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이번 정전 사태가 재생에너지 사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텍사스주 농업담당 커미셔너인 시드 밀러는 16일 페이스북에 "텍사스에서 추가로 풍력 발전 터빈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글을 올렸고, 로렌 보버트 하원의원(공화당, 콜로라도)은 정전 사태의 원인이 '그린 뉴딜'에 있다고 주장했다. <폭스뉴스> 터커 칼슨 앵커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재생에너지에 전가하면서 풍력 발전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가세했다.

그러나 텍사스주 전력망을 운영하는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16일 기자회견에서 정전사태의 주요 원인이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소의 고장에 있다고 밝혔다. 텍사스주에서 생산된 전력 가운데 75%가 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에 따른 것이며, 나머지가 재생에너지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추종 극우세력들은 "과학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인 팩트가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특히 텍사스의 정전과 단수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해 강도가 높아진 자연재해를 노후된 기반시설이 감당하지 못해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20일 “기후변화는 더 빈번하고 격렬한 폭풍, 홍수, 폭염, 산불 등 극단적인 사건들을 야기하면서 나라 경제 기반시설에 점점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며 도로, 철도, 상하수도, 발전소, 산업 폐기물 처리 시설 등 노후된 기반시설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기후위기 계획을 총괄했던 앨리스 힐은 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극단적 미래와 충돌하고 있다"며 "리스크 관리에 대한 모든 지침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안전한 지침이 아니“라며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가 시급함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수십년 전에 지어진 미국 전역의 9만 개의 댐, 60여 개의 핵발전소 등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언론은 핵발전소의 90%가 한계를 초과하는 폭우와 폭설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핵발전소가 자연재해에 안전하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과거의 안전 점검이 2021년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노후 기반시설을 재정비하기 위해선 의회에서 천문학적인 수준의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앞서 지적한 것처럼 공화당 내 극우세력들은 기후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양당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3. 공화당 대선주자급 크루즈 상원의원, 한파에 칸쿤 놀러갔다가 거센 비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텍사스주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공화당) 의원이 이번 한파에 추위와 정전 등 재난을 피해 멕시코 칸쿤으로 휴가를 떠난 사실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도 뉴욕의 부유층은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뉴욕 시내를 떠나 교외나 해외의 별장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반면 저소득층은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을 직면해야 했던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한명인 크루즈 의원은 공항에서 칸쿤으로 출국하는 장면이 발각돼 거센 비난이 일었다. 주민들은 추위 뿐 아니라 단전, 단수로 극단적 상황에 처해 있는데 지역구 상원의원은 해외의 휴양지로 휴가를 즐기러 가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란 크루즈 의원은 예정보다 빨리 19일 귀국하면서 "딸이 원해서 간 것"이라며 핑계를 대다가 결국 "명백한 실수였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텍사스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공화당 지역(레드 스테이트)이다. 2020년 대선 때도 트럼프가 바이든을 상대로 이긴 지역 중 하나다. 연방 상원의원 2명이 모두 공화당이며, 연방 하원의원(35명)도 다수가 공화당 의원(22명)이다. 연방 의원들만이 아니다 주정부(애벗 주지사)도 공화당이며, 주의회도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은 민영화, 기후위기가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또 미국식 양당제에서 어느 한 지역의 정치 권력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현상은 텍사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지만, 이는 지역에서 정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허술해진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미국에서 이번에 실기한 크루즈 의원이 과연 다음 선거 때 심판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 19일 분노한 지역주민 여론 때문에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한 크루즈 의원. ⓒAP=연합뉴스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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