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기법으로 빚은 황색 도자기.. 황금빛 색조의 은은함 감동적"

박태해 2021. 2. 23.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황청자 복원·재현 30여년 외길 인생 이형우 도예명장
상감청자와 더불어 민족 예술혼 깃든
전통 도자기 기술이 집약된 결정체
생활도예하던 20대 후반 우연히 매료
20여년간 천연재료와 태토 찾아 헤매
작품의 질 좌우하는 요인은 가마의 불
유약에서 성패 결정.. 독창적으로 배합
학 1000마리 그려넣은 운학 작품 인기
전문 전시관 갖는게 꿈, 지자체 관심을
30여간 황청자 복원·재현의 외길를 걷고 있는 용우 이형우 명장이 20일 여주 전시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 명장은 ”황청자의 재현된 황금빛 색조가 감동적이다.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유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태해 기자
“황청자와의 만남은 운명입니다. 황청자를 보존·재현하는 일은 전인미답의 길입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작품활동 파트너인 아내의 지원과 위로가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매년 소량이나마 제대로 된 황청자 작품을 만들고 주변의 칭송을 들을 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도예의 고장’ 여주에서 30여년간 도예의 길을 걷고 있는 용우 이형우(61) 도예명장은 일반에게 낯선 황청자 재현과 복원에 독보적인 인물이다. 30여년을 물레 위에서 돌아가는 황청자와 대화하며 빚고 또 빚는 장인이다. 여주 이천 문경 등에서 활동하는 도예명장들은 수십명이지만 황청자에 한길을 걷는 이는 그가 유일하다. 대한민국 전통명장이자 여주 도예명장인 그는 생활도예를 하던 20대 후반에 우연히 황금빛 청자(황청자)에 매료돼 그 길로 맥이 끊긴 황청자 보존과 재현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1000마리 학이 그려진 천학병이 애호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애호가는 물론 해외 수집가들로부터도 문의가 많다. 주말에도 작업에 여념이 없는 그를 20일 여주시 북내면 도예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의 황청자 복원 외길 인생과 작품활동,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황청자가 낯설다. 황금빛 색조가 인상적이다.

“청자기법으로 빚은 황색 도자기란 뜻이다. 오천년 도자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세계가 인정한 고려청자를 비롯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예술혼이 깃든 도자를 만들어왔다. 황청자는 고려시대부터 상감청자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심미를 보여주는 전통도자기 기술이 집약된 결정체다. 그러나 지금은 맥이 끊겼다. 전국의 박물관 청자작품과 청자도록 등을 뒤져가며 잊힌 황청자를 연구했다. 황자라고 하는데 황청자는 명장으로서 제가 명명했다. 20여년간 전국을 돌며 천연재료와 태토(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흙)를 찾아 헤맸다. 끝을 알 수 없는 도전과 실패를 거친 끝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황청자를 복원해냈다. 재현된 황청자는 색조의 넉넉함과 은은함이 특징이다. 운학매주병, 송학주병, 매화단지, 잉어문, 천학병 등이 대표적이다. 새해 들어 작품에 깃든 정성이 행운이 깃든다는 의미가 전해지면서 천학병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황청자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마가 결정적이다. 불의 질이 작품의 질을 좌우한다. 섭씨 990도까지 올려 7~ 8시간 동안 달군 다음에 섭씨 1250도까지 오르면 가마 속 불은 파랗게 된다. 몇 시간 정도 더 달군 다음에 불을 빼고 식히는 데 이틀 정도 걸린다. 속칭 뜸 들인다고 한다. 이때 가마 속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쨍’하고 들린다. ‘크랙’이라고도 한다. 가마 속 작품들이 모두 식으면 미리 갈아 숙성해놓은 먹물을 바른다. 하루를 묵힌 다음, 다시 작품을 가스 불로 달군 다음에 이틀이 지나면, 문양 작업에 들어간다.”

-황청자라는 독특한 색깔과 특징 내기가 어려울 텐데.

“황청자 작품의 성패는 유약에서 결정된다. 제가 창안한 비법으로 유약을 제조해 유약을 바르는 작업을 한다. 초벌 재벌 등의 작업을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깨버린다. 혼을 온통 쏟아부은 작품을 버리기 아깝지만 그래야 한다. 통상 3개 중 한 개꼴로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린다. 살아남은 작품에 문양을 새기거나 그림, 사진 등을 넣어 작품을 만든다. 특히 유약은 아주 예민한 물질이기에, 안료 가게에서 직접 사들여서 독창적인 배합을 한다. 그간 재현 복원까지의 고생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수백번 시도해도 만족스러운 황청자의 색깔이 나오지 않았다. 약 10년의 시행착오와 고생 끝에 제대로 재현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전시장에서 방문객이나 애호가들이 황청자 작품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 저도 덩달아 눈물이 난다. 황청자는 제 운명이다.”
천학병 작품 과정 ①조각칼을 20번 이용해 학모양을 만든다.(위에서부터). ②백상감을 4번 채워준다. ③상감을 긁어내면 학모양이 나온다. ④흙상감을 긁어내면 학다리와 주둥이가 나온다. ⑤완성된 천학병 . 2만번의 수작업이 요구된다. 이형우 명장 제공
-운학 작품이 많은데 학을 어떻게 그려 넣는지.

“학 1000마리를 항아리 표면에 그려 넣는 과정은 사실 아내가 한다. 기하학적 기법을 동원한다. 간격을 맞추고 가로 세로로 미리 구상한 다음, 마치 바느질하듯 한땀 한땀 그려 넣는다. 학을 음각하는데, 통상 20번 정도 손이 간다. 1000마리이니 2만 번의 손길이 드는 고난도 작업이다. 유약을 얇게 4번을 바른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학의 다리와 눈을 새겨넣는다. 황청자를 집안에 놓으면 푸근하고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고 얘기한다. 넉넉함과 여유로움, 심신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보통 정성과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텐데.

“솔직히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그야말로 극한직업이다. 하나 완성된 작품을 볼 때의 희열감 때문에 작품활동을 한다. 요즘 학 1000마리를 그려 넣은 운학작품이 많이 나간다. 십장생 중 으뜸이 학이 아닌가. 우리 전통 도예작품에는 학과 구름이 들어간 운학작품이 많다. 옛 도예 명인들을 전승한다는 의미에서 애호가들도 운학 작품을 찾는다.”
이형우 명장이 가마에서 구어낸 황청자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형우 명장 제공 
-도예가로서의 입문은.

“어린 시절 흙과 관련된 일을 해오던 부친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도예의 길로 들어섰다. 10대 때 유명한 한국청자연구소에 입사하면서 도자에 입문해 대장(물레 성형을 하는 사람)의 일을 시작하여 인덕공업전문학교의 조교생활을 했다. 30년 전 여주에 정착해 생활도예를 하다 황청자 명장의 길을 걷고 있다. 일이 너무 힘들어 함께 하던 처남이 과로로 숨지는 일도 있었다.”

-작품의 영감은 어떻게 얻나.

“새벽 4~5시쯤 일어나 머릿속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정리를 한다. 가장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 그때다. 장수와 건강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만든다. 오래 소장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작품이 무엇인지를 구상한다. 30년을 한결같이 작품활동을 돕는 아내와도 의견이 다를 때도 있다.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 부부지만 치열하게 토론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하하)
이형우 명장이 가마에서 구어낸 황청자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형우 명장 제공 
-전시회는 연간 몇 회 정도 하는지. 해외에서 초청도 많이 받았을 텐데.

“다작을 싫어한다. 아니 거부한다. 한해 통상 30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연 2회 정도 하는데, 작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전시회를 열 수 없어 안타깝다. 해외 초청도 많지만 국내 작품 활동이 바빠 수년간 해외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중국 전시회를 계획했으나 코로나로 지연되고 있어 안타깝다.”

-앞으로 구상과 계획은.

“많은 이들이 관람할 수 있는 황청자 전문 전시관을 갖는 게 꿈이다.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일본과 중국에서도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두 나라에서 특히 문의가 많이 온다. 신비로운 황청자 매력을 해외에도 널리 알리고 싶다. 도예장인으로서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의 소망을 담은 대형 천학병 작품도 생각하고 있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