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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택시비 1만원 안 내고 달아났다" 승객 얼굴 인터넷 공개 수배

이세영 기자 입력 2021. 02. 23. 13:22 수정 2021. 02. 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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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사적 신상 공개는 명예훼손 처벌 위험"

한 네티즌이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에서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난 승객의 얼굴을 온라인에 공개 수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네티즌은 “돈(택시요금)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의 기분이 안 좋아져서 얼굴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사적으로 다른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배드림

지난 22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는 ‘택시요금 안 내고 튄 거지’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택시요금을 결제하지 않았다는 승객의 얼굴과 옷차림 등이 그대로 공개된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왔다.

이 글을 올린 A씨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에 탄 한 남성 승객이 목적지에 도착한 뒤 집에서 택시요금 1만여 원을 가져온다고 해놓고 도망쳤다고 했다. A씨는 “이달 21일, 바로 어제의 일”이라며 “가끔 이런 손님들이 있는데 십중팔구 요금을 못 받는다”고 했다.

A씨가 공개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경기 부천시 심곡동 인근에서 남성 3명은 콜택시를 불렀다. 이중 검은색 패딩에 회색 바지를 입은 한 남성이 택시를 탔고 목적지인 인천의 한 아파트로 향했다. A씨는 “이 시국에 택시에 타자마자 개념없이 마스크를 내려버렸다”고 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치면서 드러난 승객의 얼굴은 차량 블랙박스에 선명히 찍혔다.

A씨는 “목적지 근처에 다다르자 아파트 단지 내에서 뺑뺑이를 돌았고 택시 요금을 금방 가져다 준다며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치고선 전화를 꺼놓거나 받지 않는다”고 했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지 않은 승객은 “조금만 더 가서 세워달라” “우회전 해달라” “한 바퀴 더 돌아야겠다” 등 목적지를 계속 바꿨다. 택시는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1분간 더 운행했다. 이어 승객은 택시에서 내리면서 “잠깐만 여기에 차 세워주겠느냐”며 “집에 여기 바로 앞인데 현금을 가지고 오겠다. 1분이면 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가 난처해하자 승객은 “어차피 (콜택시 업체 측에) 휴대전화 번호가 있으니까 상관 없다”면서 “맡길 물건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것 가지고 그런 사람 아니다”며 “나이 이렇게 먹고 (집) 바로 앞인데 안 도망간다”고도 했다.

A씨는 “콜택시 업체 측에 요금 미지불 승객으로 신고했으니 다른 택시기사들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승객의 휴대전화 번호 중 일부를 공개했다. 이 글은 23일 낮 12시쯤 11만 6000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댓글 500여 개가 달렸다. 네티즌들은 “목적지에 내려주지 말고 경찰서로 가야 했다”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하라” “범죄자 얼굴 사진을 절대 삭제하지 말라” “턱스크도 신고해서 과태료 물려라” 등 승객을 비판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보배드림

◇ 인터넷 공개수배, 명예훼손 가능성… “공익성 인정 시 예외 사례도”

최근 소셜미디어·커뮤니티 등에선 개인이 촬영하거나 입수한 블랙박스와 CCTV 영상을 올리고 “범인을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인터넷 공개수배’가 늘고 있다. 대부분 용의자 개인 신상이나 얼굴, 목격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사례금·포상금을 걸기도 한다.

개인이 올리는 ‘인터넷 공개수배’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몇몇 수배글이 실제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되면서다. 지난 2015년 1월 10일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의 한 공업사 앞에서 임신한 아내가 좋아하던 크림빵을 사 귀가하던 남성(당시 29세)이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다. 네티즌들은 사건 경위와 경찰이 공개한 현장 CCTV를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으로 공유하며 용의자 공개 추적을 시작했다. 용의 차량이 흰색 SUV라는 것이 밝혀졌고,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범인이 자수했다.

그러나 인터넷에 얼굴 등 신원을 공개한 상태로 범행 관련 영상을 올리는 것은 초상권 침해나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해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법무법인 창비의 김형진 변호사는 “개인범죄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도 하기 전에 범죄 사실을 확정적인 사실로 공개하는 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며 “대상자가 공인이거나 사건 자체가 일반 대중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말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인터넷에 사진을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 경찰 공개수배 대상은 지명수배 후 6개월이 지나도 검거 못 했거나 사형이나 무기징역, 장기 3년 이상 징역범만 경찰청 훈령에 근거해 별도 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정이 가능하다.

아직 범인인지 확실하지 않은 용의자의 얼굴·차량번호 등 신상 정보를 노출시켜, 비슷한 신상을 가진 억울한 피해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5년 9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여고생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운동화 절도 사건’ CCTV 속 용의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몰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 파더스’ 캡처

다만, 예외적으로 공익 목적을 위해 신상을 공개할 경우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자녀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을 압박하기 위해 이름, 얼굴 사진, 나이, 주소 등 개인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던 ‘배드 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이트 관계자가 지난해 1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며 “양육비 미지급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아져 해결 방안이 강구되는 상황에서 피고인의 활동은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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