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나섰던 '염전 노예사건'의 허무한 결말

최정규 입력 2021. 2. 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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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조항 없는 인신매매특별법 필요없다 ②] 처벌 규정 부재가 만든 지적장애인 노동 착취

2020년 12월 24일, '인신매매 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안'(아래 인신매매특별법)이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해왔던 현장단체와 전문가들은 유엔 인신매매의정서(2000년 채택)를 이행하는 인신매매특별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난 20년간 주장해왔다. 그래서 이번 법안 발의는 환영할만하다. 그런데 이 법안에는 인신매매범죄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을뿐더러, 여러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이에 단체와 전문가들은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하였고, 국회와 정부에 제대로 된 인신매매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자 22일부터 5일간 총 5편의 릴레이 기고를 이어갈 예정이다. <기자말>

[최정규 기자]

세상엔 두 가지 법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법과 사람을 죽이는 법. 사람을 죽이는 법을 우리는 '악법'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살리는 법은 그 법이 잘 시행되도록 힘을 실어야 하고, 사람을 죽이는 악법은 폐지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2021년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는 건, 사람을 죽이는 '악법'만이 아니다. 그건 바로 있으나마나 한 법들이다. 법전에는 존재하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 2021년에도 우리는 그 법의 탄생을 막아야 한다.

지난 18일 국회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 '인신매매, 착취방지와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일명 인신매매특별법이 상정되었다. 오래전부터 인신매매특별법의 제정을 요청했던 시민단체들은 이 법의 상정에 대해 환영은커녕 탄생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일까? 이 법안이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 그 이유를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에서 확인해 보려고 한다.

10년 넘게 착취 당했는데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
 
 2014년 전남 신안군의 신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60명 넘는 지적장애인들이 10년 넘게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노동력 착취를 당하는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가해자 대부분은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판결로 실형을 면하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 SBS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전남 신안군의 신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60명 넘는 지적장애인들이 10년 넘게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노동력 착취를 당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강조했다.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꾸려져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었고, 5년 이상 노동력을 착취한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구속수사 원칙이 관철되었지만, 아쉽게도 가해자 대부분은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판결로 실형을 면하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피해장애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겨울에도 여름옷을 입혔다는 증언, 파출소로 간신히 도망쳐도 다시 염주의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 등 노동력 착취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감금'에 이르는 신체적 자유가 박탈된 정황이 포착되었지만, 수사와 기소를 담당한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들이  형법상 '감금죄'로 가해자들을 공소제기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이 버린 장애인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줬을 뿐이다"는 가해자의 변명에 대해 그 당시 지역적 관행이라며 변명을 받아주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 장애인의 의사가 가해자 측에 의해 왜곡된 것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 채 양형에 반영하는 등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판사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검사와 판사만 탓할 순 없다. 그 당시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소장과 형사판결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죄명은 근로기준법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준사기죄(사람의 장애를 이용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범죄)이다. 

피해장애인의 자유를 억압하며 노동력을 착취시킨 사건이 단순 임금체불사건으로 처벌되거나, 재산상 법익을 침해한 사건으로 왜곡된 건 염전으로 유입된 과정, 오랜 기간 피해장애인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한 행위에 대해 처벌할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이수진 의원과 법무부 등은 현행법으로 모든 인신매매를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현행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현행 형법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가 비준하여 2015년 12월 5일부터 발효된 UN 인신매매 의정서에는 인신매매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제3조 용어의 사용
 
이 의정서의 목적상,
 
가. '인신매매'란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 또는 그 밖의 형태의 강박, 납치, 사기, 기만, 권력의 남용이나 취약한 지위의 악용, 또는 타인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동의를 얻기 위한 보수나 이익의 제공이나 수령에 의하여 사람을 모집, 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착취는 최소한, 타인에 대한 매춘의 착취나 그 밖의 형태의 성적 착취, 강제노동이나 강제고용, 노예제도나 그와 유사한 관행 예속 또는 장기의 적출을 포함한다.
 
나. 이 조 가호에 규정된 수단 중 어떠한 것이든 사용된 경우에는, 이 조 가호에 규정된 의도적 착취에 대한 인신매매 피해자의 동의는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 
 
인신매매방지 의정서에 의할 때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은 '인신매매'에 해당한다. 강제노동 등 착취의 목적으로 피해장애인들의 취약한 지위의 남용을 악용하여 염전으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금전적 대가가 오가지 않았더라도, 피해장애인의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신매매로 해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에서 가해자를 인신매매 관련 처벌조항으로 처벌한 사례는 아주 드물다. 형법상 영리유인죄, 소개업자는 형법상 영리유인 및 직업안정법 위반 등으로 처벌된 사례가 존재했지만, 금전적 대가가 오가지 않고 피해장애인의 동의가 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은 처벌을 대부분 면했다.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게 2014년이고 UN 인신매매 의정서가 효력이 발생한 건 2015년이니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의정서 효력 발생 후 세상에 알려진 축사 노예사건, 청주 타이어노예사건, 잠실 야구장 노예사건, 사찰 노예사건 등 수많은 지적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에서 인신매매 관련 처벌조항은 여전히 작동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의정서 비준을 위해 2013년 4월 5일 형법을 개정하여 아래와 같이 법을 정비했다.
 
 2013년 4월 5일 개정된 형법
ⓒ 최정규
 
그럼에도 인신매매 관련 처벌조항들은 의정서 상 '인신매매'가 분명한 지적장애인 노동력착취사건에서 작동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이정민 중앙 장애인 권익옹호기관 팀장은 2018년 9월 11일 '장애인 학대 현황 보고 및 노동력 착취 정책 대안 마련' 토론회에서, 2018년 상반기 염전노예사건과 유사한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 27건의 사례를 분석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약취는 폭행, 협박을 수단으로 하며 유인은 기망, 유혹을 수단으로 한다. 인신매매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금전적 대가가 오고 간 '매매'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사례를 보면 매매라고 할 만한 금전적 대가가 오고 간 것이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폭행이나 협박을 직접적인 수단으로 한 경우는 물론, 피유인자를 착오에 빠뜨리게 하거나 현혹시켜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한 경우 역시 찾아보기 어려웠다.

피해자는 유인 과정 전반에 걸쳐 철저히 무시돼 아예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하거나 지적장애로 인한 의사결정과 생활에 있어서의 취약성, 가족 등 가까운 사람과의 권력 관계로 인하여 매우 낮은 수준의 위협이나 지시도 거부하지 못하고 이에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는다.

"현행 형법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인신매매특별법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신매매를 처벌할 법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법무부는 형법과 개별법령으로 처벌하고 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그리고 법무부의 답변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국회에 상정된 인신매매특별법안에 반영되었고, 결국 처벌 규정의 '부재'를 낳았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UN인신매매 의정서가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법무부 등 정부 부처의 의지가 '부재'하다는 현실이다.

법전에는 존재하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 우리에게 또 필요한가? 
   
법은 국민에게 필요한 용도로 존재해야 한다

새로 제정되는 인신매매특별법은 지적장애인들의 노동력착취, 인신매매를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처벌규정도 없는 법이 그런 착취를 막아내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국회는 지혜를 모아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법을 법전에 담아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우리가 지적장애인들의 노동력착취를 막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법전에 담긴 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작동되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기획 / 처벌 조항 없는 인신매매특별법 필요없다]
① 이수진 의원의 '인신매매특별법', 실망스럽습니다 http://omn.kr/1s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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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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