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사설] 지금 한국군은 속으로 붕괴 상태에 있다

입력 2021. 02. 24. 04:15 수정 2021. 02. 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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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국방부 장관이 23일 국회 국방위에서 박정환 합참작전본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지난 16일 북한 남성의 동해안 귀순은 거의 붕괴 상태에 있는 한국군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3일 합참에 따르면 북 남성이 우리 해안을 걸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CCTV에 10번이나 찍혔지만 군은 8번째까지 까맣게 몰랐다. 전방 감시 장비가 2번이나 경고등과 경고음을 울렸는데도 그냥 무시했다. 감시병은 바람 등으로 인한 오경보로 판단했고 간부는 통화 중이었다. 경계를 아예 안 한 것이다. 임무 수행을 안 하고 있는 부대가 여기뿐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북 남성은 5~6㎞를 3시간 넘게 걸어 민간인 통제선 부근까지 남하했다. 첫 식별부터 사단장 보고까지도 34분이나 걸렸다. 무장한 적군이 침투해왔다면 어쩔 뻔했나. 북 남성은 해안 철책 배수로로 들어왔다. 그런데 해당 부대는 이 배수로의 존재 자체를 그동안 몰랐다고 한다. 지형과 지뢰 위험 등으로 파악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군인이 자기 책임 지역에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 있다고 가보지도 않는다. 작년 7월 탈북민이 서해 철책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을 때 합참은 일선 부대 전체에 배수로 확인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 사단은 이 배수로를 확인하지도 않고 문제없다고 보고했다. 합참 명령마저 귓등으로 흘린다. 군대가 아니다.

합참은 “상황을 엄중 인식한다”며 “근원적 대책”을 약속했다. 낡은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것 같다. 작년 탈북민 월북 때도 합참의장이 국회에서 ‘엄중 인식’과 ‘근원적 대책’을 다짐했다. 재작년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정박했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제주 해군기지가 시위대 놀이터가 되고 수도방위사령부가 취객에게, 진해 해군기지가 치매 노인에게 뚫렸을 때마다 군은 ‘엄중 인식’한다고 했다. “엄정 대처” “정밀 진단” “책임 통감”도 사고만 터지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이다.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이젠 그런 말에 국민은 물론 군인들 자신도 속으로 쓴웃음이 날 것이다.

석 달 전 북 민간인이 강원도 철책을 타고 넘었을 때는 나사 풀린 감시 센서가 울리지 않았다. 작년엔 군 감시 장비가 월북자를 7번 포착하고도 북 발표 때까지 몰랐다. 이렇게 초보적 경계도 못 하는 군대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서두르고 있다. 핵폭탄을 보유한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졌는데 핵억지력 제로인 한국이 핵억지력을 가진 미군을 지휘하겠다고 한다. 미국이 동의하겠나. 이 난센스에 놀랍게도 군이 앞장서고 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국내 정치 선전에 몰두하는 대통령에게 아첨하고 있다.

군 내부 난센스는 일상이 됐다. 전문가들이 경항모의 문제를 지적해도 기어이 2033년 전력화를 공식화했다. 일본이 경항모 보유한다고 ‘우리도’라며 따라 하는 것이다. 수조원이 드는데 전시 효과 외에 무슨 전력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우리 배타적 경제수역 전체에 도달해 작전할 수 있고 공중급유기도 있는데 무슨 경항모인가. 북한을 타격할 F-35A 전투기 살 돈으로 엄청 비싸기만 하고 무장력은 턱없이 떨어지는 F-35B를 구입해 어쩌자는 건가. 군 문제에 무지한 정권이 이런 일을 벌여도 바른 말 하는 군인 한 명 나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한미 연합훈련은 이미 컴퓨터게임처럼 바뀌었다. 정권의 남북쇼 평화쇼에 한국군은 사실상 정신적 무장해제 상태로 가고 있다.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 ‘북과 한미훈련을 협의하겠다’고 한다. ‘이러다 북한에 복속된다'는 전 주한미군사령관 경고를 누가 흘려들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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