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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양부'가 계속 몰랐다고 해서 쓴 기사

남형도 기자 입력 2021. 02. 24. 04:30 수정 2021. 02. 2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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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시키고도, 9개월 함께하고도 "정인이 학대 몰랐다"는 양부..그에 대한 판결이 주게될 '사회적 메시지'

"아내가 정인이를 학대하는 줄은 몰랐다." 9개월 간 그들과 함께 살았던, 정인이 양부 안모씨(38)는 계속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평일엔 일하는 시간 빼고 모두, 주말엔 24시간 함께하는 가족. 작은 상처 하나에도 어쩔 수 없이 시선이 닿게 되는 게 가족. 굳이 힘겹게 따지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얘기다.

정인이 양부가 몰랐다고 해서, 그의 주장대로 정인이가 겪은 그 모든 사실에 '몰랐다'란 서술어를 붙여 보기로 했다. 평범한 문장일지, 평범하지 않은 문장일지는 보는 이가 판단하리라 믿는다. 이제는 불가능한 그 때로 잠시 되돌아가 본다. 사랑스럽던 정인이가 살아 있었던, 그 모든 시간으로.

2020년 3월

정인이 양부는 정인이 얼굴과 팔, 목 주위에 자주 생겼었던 상처가 학대인지 몰랐다.
심지어 그는 정인이 목욕을 전담하고 있었다(입양기관 관계자와 통화 내용).
이 상처는 3월에서 5월까지 총 10번 발견됐다(어린이집 담임이 사진 찍은 횟수만).
3월 24일, 4월 2일, 4월 9일, 4월 13일, 4월 14일, 4월 20일, 4월 24일, 4월 28일, 5월 18일, 5월 25일.
정인이 어린이집 담임은 "보통 일반적 아이들은 아무리 자주 다쳐도 1년에 두 세 번 정도"라고 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20년 5월

정인이 양부는 양쪽 허벅지와 배에 멍이든 것도 학대인지 몰랐다.
5월 25일, 이날 정인이 어린이집 원장은 처음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정인이 양부모는 경찰에 "안마를 하느라 생긴 멍"이라 했다.
몽고반점과 아토피 피부염을 오해한 거라고도 했다.
푸른 건 몽고반점이었으나, 자줏빛은 멍자국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은 경찰은, 사건을 내사종결했다.

2020년 6월

정인이 양부는 정인이가 차량에 30분 넘게 홀로 방치돼 있던 것도 학대인지 몰랐다.
6월 29일, 두 번째 학대 신고가 이뤄졌다.
양부모는 그 방치를 두고 '수면 교육'이라고 했다.
아이가 혼자 잠을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거라고 했다.
경찰은 다시 정인이를 그들에게 돌려보냈다.


2020년 9월

정인이 양부는 아프리카 기아 아동처럼 말라 있었던 정인이를 보고도 학대인지 몰랐다.
제대로 설 수 없을만큼 다리를 떨던 아이였음에도.
9월 23일은 정인이가 두 달 만에 어린이집에 간 날이었다.

아이는 7월에 10번, 8월에 20번 결석했었다.
이날 원장이 정인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거기서 세 번째 학대 신고가 있었다.
몸 곳곳에 상처가 있고, 영양 상태도 안 좋다고 했다.
경찰은 아이를 분리하지 않았다.
정인이 양부는 다음 날인 9월 24일, 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자신이나 부인에게 연락한 뒤 병원에 갈 수 있게 조치해달라."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2020년 10월

정인이 사망 전날, 배만 불룩하고 머리엔 빨간 멍이 든 상처가 있었던 정인이를 보고도,
정인이 양부는 그게 학대인지 몰랐다.

10월 12일, 정인이는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할만큼 기력이 쇠해 있었다.
교사의 품에 내내 안겨 축 늘어져 있었다.
이유식을 줘도 전혀 못 먹고 다 뱉어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 같았다고 했다.

정인이 양부는 그 상태의 정인이를 오히려,
억지로 걸어보게끔 했다.
정인이는 바들바들 떨면서 힘겹게 걸었다.

어린이집 원장은 양부에게 "정인이를 꼭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했다.
양부는 "네, 네, 네"라고 짧게 대답하기만 했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하지 않았다.

10월 13일은 정인이가 숨진 날이었다.
이날 오전 양부는 아내 장모씨에게 문자를 받았다.
'병원에 데려가? 형식적으로"란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도 정인이 양부는 학대인지 몰랐다.

정인이는 췌장이 파열돼 그날 숨졌다.
작은 배엔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자동차가 충돌할 정도 힘이,
그 작은 몸에 가해졌을 거라고 했다.
전문가들 얘기다.

정인이 양부는 계속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아내가 아이를 자기 방식대로 잘 양육할 거라 믿었다. 일부러 방치한 것은 아니다."
"폭행에 공모한 사실이 없다. 학대가 이뤄지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SBS 그것이 알고싶다, 1월 23일 방송)
"주변 사람들은 왜 (학대 정황이 보였을 때) 저한테 그런 얘기를 안 해줬을까요? 지금은 다 진술하면서."

그가 인정한 건 한 가지다. '정인이 팔을 세게 붙잡고 강제로 손뼉을 치게 해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는 것.'

전문가들은 "모를 수 없다"
전문가들은 양부가 학대 사실을 모를 수 없다고 의견을 모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tbs 라디오 명랑시사 이승원입니다 인터뷰에서 "(정인이 양부가 학대 사실을 모른다는 건) 좀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굉장히 많은 상처와 멍과 골절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정말 몰랐다고 해도 그것 또한 큰 문제라는 것.

그 심리에 대해 오 전문의는 "이 양부는 인간이니까 약한 면이 있을 것이고, (분노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며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다"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바깥으로 표시가 나는 상황이라면 모를 수 없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설령 몰랐다고 해도 그 자체가 엄청난 방임"이라고 했다.

아동학대치사, 살인 방조, 살인죄 공동 정범 가능성

정인이 양부 안씨는 어떤 처벌 가능성이 있을까.

승 연구위원은 10월 13일 정인이가 숨진 날, 양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다른 날과 달리 아이가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걸 알고도 떠났다면 '아동학대치사',
양모의 살인 고의에 어떤 행동을 안 했더라도 같은 의사 합치가 있었다면
'살인 방조''살인죄 공동 정범' 성립 가능성이 있단 분석이다.

승 연구위원은 "정인이가 숨진 날 아침 양부가 어떤 의사를 갖고 있었는지, 그걸 밝혀내는 게 검찰의 능력이자 숙명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2019년, 울산지방법원의 판결문

2018년, 친부가 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폐렴으로 돌아온 아이가 잠들지 못하고 울며 보챘다. 친부는 "방해가 된다'며 샤워타월로 아이 몸통과 다리를 묶었다. 이후 머리를 세 번 가격했다. 아이는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생후 71일 되던 날이었다. 친부는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 김동석, 황인아 판사)는 당시 판결문에 이렇게 언급했다.

"아동학대 사건은 부모 학대가 80%이고 발생 장소 중 82%가 가정이다. 외부에서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에 어려움이 크다. 부모 중 한 명에 의한 학대를 인지한 남은 부모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단 지적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아동학대 사망자의 마지막 이름이 부디 'OO이'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못했다. 정인이 사건 이후에도 수많은 학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정인이 양부는 계속해서 몰랐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그 주장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그리고 그 판결은 향후 학대 부모들에게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주게 될까.

승 연구위원은 "아버지도 아이를 같이 키운다. 그런데 어머니가 저지른 학대를 알고도 내버려뒀을 때, 아이가 사망할 수 있단 게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면에서 (양부 처벌을 통해) 분명한 사회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인이 사건의 3차 공판은 3월 3일이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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