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캠코더 인사' 했으면 제갈공명 발탁 못했다

장박원 2021. 2. 24.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충우 기자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56]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장관 10명 중 7~8명은 이른바 '캠·코·더' 인사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문 대통령 선거 캠프나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 더불어민주당 출신만 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캠코더 인사 중에도 분명 인재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캠코더에 집착하지 않으면 더 뛰어난 사람을 발탁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국정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겠죠. 전문성이 다소 떨어져도 믿을 수 있고 충직한 사람이 낫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면 인재를 발굴하기 어렵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려 해도 제한이 많을 것입니다. 부적절한 인사는 결국 정책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입니다.

제환공이나 진문공과 마찬가지로 춘추시대 3대 패자로 등극한 초장왕이 성공한 것도 좋은 사람을 찾아 쓰는 용인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일화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이중 장왕이 궁궐 내부 일을 맡겼던 번희와의 대화는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자세를 알려줍니다. 번희는 장왕이 3년의 기행(奇行)을 끝내고 국정을 쇄신하면서 궁궐 내부 일을 맡긴 부인입니다. 장왕은 투월초의 반란을 진압한 뒤 본격적으로 부국강병 정책을 펼칩니다. 이때 재상(영윤)으로 우구라는 사람이 발탁됩니다. 그는 초나라에서 현자로 널리 알려졌던 인재였습니다.

어느 날 우구와 밤늦게까지 정사를 논의하다 침전으로 돌아온 장왕에게 번희가 묻습니다. "우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장왕이 답합니다. "초나라 현자라고 할 수 있소." "신첩이 보기에는 현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부인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이 물음에 대한 번희의 답변이 압권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부인이 남편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신첩은 중궁의 자리에 있으면서 궁궐 안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왕께 바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구는 정사를 밤늦도록 논하면서도 한 명의 현자도 추천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저 한 사람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초나라 인재는 끝도 없이 많습니다. 우구는 자기 한 사람의 지혜를 발휘하기는 하지만 끝도 없이 많은 인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번희 일침은 장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다음날부터 바로 새로운 인재를 찾기 위해 여러 신하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투월초의 난으로 살해된 위가의 아들을 추천했습니다. 이름은 위오인데 역사에서는 손숙오로 알려진 현인입니다. 투월초의 난이 끝난 뒤에도 그는 시골에 숨어 지내다가 장왕에게 발탁됐습니다.

그는 제환공을 패자로 만든 관중에 버금가는 초특급 인재였습니다. 재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초나라의 군법을 바꾸고 군대의 운용 시스템을 혁신했습니다. 관개시설을 건립하는 등 수리 사업을 통해 곡식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습니다. 왕이 손숙오에 힘을 몰아주자 불만을 품었던 대신들도 일사분란하고 공명정대한 일처리를 보며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장왕이 행운이 있어 이런 인재를 얻은 것이다."

초장왕이 사람을 아끼는 지도자였다는 사실은 '절영회(絶纓會)'로 알려진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절영회는 '갓끈을 끊은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투월초의 반란이 끝난 직후 초장왕은 여러 대신들과 거하게 술을 마십니다. 한창 흥이 무르익었을 때 바람이 크게 불면서 잔치를 벌이던 장소의 촛불들이 모두 꺼졌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장왕의 애첩인 허의를 끌어당기며 희롱했습니다. 이에 허희는 그의 갓끈을 잡아당겨 끊었습니다. 그리고 장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갓끈이 끊어진 자를 찾아 벌을 내릴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장왕은 촛불을 켜지 말고 먼저 모두 갓끈을 끊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허희가 항의하자 장왕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늘은 내가 맘껏 취하자고 말했다. 그러니 취중 실수를 벌하면 되겠는가." 이것이 바로 절영회의 전말입니다. 이때 처벌을 면한 사람은 훗날 장왕이 전장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필사적으로 왕을 구했습니다. 한 순간의 현명한 결정이 장왕의 목숨을 살린 것입니다.

지도자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를 따르는 초특급 인재입니다. 장자방 없는 유방과 제갈공명 없는 유비를 생각할 수 없는 이치지요. 장자방은 원래 유방의 사람이 아니었고 제갈공명도 관우나 장비 같이 유비의 측근은 아니었습니다. 유방과 유비가 캠코더 인사를 했다면 결코 발탁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캠코더 인사의 한계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