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부모한테 맞으며 자란 아들과 딸, 이제 용서를 빈다

송미옥 입력 2021. 2.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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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0)
평상 시처럼 아들에게서 안부 문자가 온다. 그런데 오늘은 유치원에 입학한 손자 모습을 찍어 보내며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엄마 궁금한 게 있어. 내 나이 여섯 살 적 말이야. 아빠가 누나를 죽을 만큼 때렸던 날 기억해? 아빠는 저 작은 아이를 왜 죽도록 팼을까? 난 누나가 그때 맞아 죽는 줄 알았어. 그래서 훗날 내가 누나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힘을 길렀던 것 같아. 내 자식이 커 가니 그날이 자꾸 생각나. 누나는 그때 얼마나 아팠을까? 상처가 클 것 같아 이제껏 물어볼 수 없었어.”

뜬금없는 말에 울먹이기까지 한다. 뉴스마다 나오는 아이 폭행 사건에 감정이입이 된 건가? 빗자루와 파리채를 거꾸로 들고 악다구니를 쓰며 쫓아다녔던 건 난데…. 남편은 아이들 손찌검은 없었는데…. 벌써 수십 년이 흘렀는데…. 뭐꼬, 슬픈 기억이다.

마주 보고 살면서 다 풀어 버려야 하는데 지금은 왜 뚜렷하지 않을까. 세월이 멀어질수록 원시의 시력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상한 현상이다. [사진 pixabay]


그래서 딸에게 동생의 문자를 복사해 보내며 다시 물었다. 동생에게 큰 상처가 된 이렇고 저런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니? 많이 아팠니? 아빠 대신 내가 사과한다, 미안하다 등등. 그런데 아들과는 전혀 다른 톤 높은 목소리로 딸이 직답한다.

“아, 그때? 동생이 그래? 칸막이한 단칸방에 살적 말이지. 큭큭. 쪽팔리게 그런 날을 기억하고 지럴이래. 아마 동생이랑 물건 하나를 서로 차지하려고 힘겨루기했을 거야. 동생이 나보다 덩치도 힘도 셌잖아. 그때 엄마 아빠가 옆 칸에서 일 끝내고 들어왔지 아마. 집은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있고 앙앙 울고 있으니 뚝 그치라는데 내가 안 그치고 고집 피웠지. 아빠가 “이노므 가스나” 하면서 수돗가에 있던 물 호스를 들어 등짝을 때렸을 거야. 아팠겠지. 그런데 아픈 기억은 없네. 나도 한 고집해 맞으면서도 끝까지 울었던 기억이 나. 아빠가 나중에 짜장면 사주며 달랬을걸? 호호.”

“그럼 넌 그때의 일로 마음 상처가 크지 않다는 거야?”

“에이, 그땐 종종 그러고 살았잖아. 그리고 그 시절엔 엄마가 우릴 더 팼어. 그날 생각하면 엄마 표정이 더 우스워. 아빠의 행동을 모른 척하며 둘 중 한 놈이 죽어도 괜찮다는 듯 삶에 지친 표정 말이야. 하하.” (어미의 부끄러운 초상이구먼)

“나는 힘들었던 다른 기억이 있어. 고교 시절 하도 동생이 말썽을 피우니 아빠가 야단치다가 한 대 치려고 손을 들었잖아. 그때 아빠보다 덩치가 더 커버린 동생이 아빠 양손을 붙잡고 으르렁거리며 대치한 사건 말이야. 행여 아빠가 동생에게 맞아 죽는 건 아닐까 너무 무서웠어. 그날을 생각하면 아빠 기를 팍 꺾어버린 동생이 얄밉고 지금도 두려워. 하하.”

중증 치매인 한 어른은시집살이하다가 첫 친정 가는 버스 안에서 필름이 끊겼다. [사진 pixabay]


어릴 적 어린이 공원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며 곧 삼켜버릴 듯 입을 쩍 벌린 공룡의 긴 모가지 옆에 겁 많은 어린애를 홀로 세워놓고 흐뭇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 대던 부모. 오랜 시간 그 악몽에 시달렸고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었다던 조카가 생각난다. 시간과 공간이 다 다른 어린 시절의 상처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한 무식하고 무심한 행동이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에 용서를 빈다.

"엄마, 우리도 어느새 40대야. 동생이랑 통화 해볼게. 신경 쓰지 말어."

중증 치매인 한 어른은 시집살이하다 처음으로 친정 가는 버스 안에서 필름이 끊겼다.

“아직 와룡골 도착하려면 멀었나요? 10년 만에 엄마 보러 가는 길이라서.”

깜박 정신이 돌아오면 한참을 우울해 하다가 평상심을 찾는다. 잠시 진중해진다. 그도 친정이 있고 그리운 엄마가 있었다는 그 깊은 사연을 말씀을 안 하셨기에 아무도 몰랐다. 또 정신을 놓고 다시 일어나서 서성거린다.

“아직 와룡골 도착하려면 멀었나요? 엄마가 저를 알아보시려나? 이 버스 와룡골 가는 거 맞지요? 아지매는 어디 가세요?”

그리움의 한이 치매가 되어 길고 긴 유령의 세월을 사는 우리네 부모도 상처가 깊다. 마주 보고 살면서 다 풀어 버려야 하는데 지금은 왜 뚜렷하지 않을까. 세월이 멀어질수록 원시의 시력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상한 현상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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