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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수요동물원] 중국 사서삼경에는 펠리컨과 코끼리가 등장한다는데

정지섭 기자 입력 2021. 02. 24. 07:20 수정 2021. 02. 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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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종 다룬 '시경 속 동물' 한국어로 곧 출판
지금은 볼 수 없는 멸종동물, 상상동물도 등장
코끼리부터 나나니벌까지 세밀한 관찰력 보여

사서삼경. 한 번 쯤은 들었을 말입니다. 학창시절 한문시간이나 사회 시간을 통해서 사서는 논어·맹자·대학·중용이고, 삼경은 시경·서경·주역(역경)을 뜻한다고 배운 어렴풋한 기억도 납니다. 80년대 초등 시절을 보낸 저는 윤승운 선생님의 명랑만화 ‘맹꽁이 서당’을 통해 접했던 추억도 아련하네요. 사실 제목으로만 알지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갑자기 사서삼경 얘기를 꺼내는 것은 곧 발간을 앞둔 특별한 동물도감 겸 에세이를 이시간을 통해 맛뵈기로 소개해드리려고 해서입니다.

삼경 중 하나인 시경은 대략 2000년 전인 중국 춘추시대 민요를 엮은 시집으로 현재 305편이 전합니다. 옛 중국인들의 습속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만 136종입니다. 야생동물도 있고, 가축도 있으며, 전설 속 동물들도 일부 포함해서죠. 그 당시 동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어땠는지, 산업화 이전 중국엔 어떤 동물도 살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생태 사료 역할도 합니다. 직업 군인 출신의 중국 작가 장샤오스가 시경에 나오는 동물 79종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 전통 그림과 곁들여 2019년 8월 펴낸 두 권짜리 책 ‘시경 속의 동물(가제)’가 곧 한국어로 번역·출판 됩니다. 이 책을 펴내는 ‘도서출판 선’ 김윤태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책의 속살 일부를 독자여러분께 소개합니다. 79종의 동물은 길짐승·벌레·새·물고기와 양서·파충류의 네 갈래로 분류됐는데, 그 중 흥미진진한 여섯 종의 동물을 소개합니다.

/도서출판 선 제공

1.승냥이(犲)는 함께 할 때 더욱 두렵다

저 중상모략 하는자,누가 네게 계략을 꾸며주었나?

저 악귀를 잡아다가, 들판의 승냥이·호랑이에게 던져주시오.

승냥이·호랑이도 먹기싫다 하면, 북방의 황무지에 버리시오.

북방의 황무지도 받기 싫다 하면, 신의 손에 맡기시오!

彼譖人者,誰適與謀?取彼譖人,投畀豺虎.

豺虎不食,

投畀有北.有北不受,

投畀有昊!

모함이 판을 치는 부패한 관료사회와 관직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개과 맹수 중에서 승냥이만큼 존재감이 희미하고 애매한 경우가 또 있을까요. 늑대보단 작지만 여우보다 큰 이 짐승은 아프리카에서는 재칼, 미주 대륙에선 코요테 정도의 체급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자취를 거의 감춰 더욱 존재감이 옅어지기도 했죠. 그런 승냥이가 시에서 제법 존재감있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호랑이와 동급으로 언급되고 있으니까요. 저자는 특히 승냥이의 단합하는 기질에 주목합니다. 중국의 다른 고전 문헌에서도 떼로 맞서는 승냥이는 호랑이나 늑대도 거뜬히 이겨내는 강인한 짐승으로 표현됐다는 점을 짚습니다. 협동은 개과 맹수 본연의 기질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그러면서 용맹한 승냥이에 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증오심이 ‘늑대도 여우도 아닌 하찮은 산짐승’이라는 이미지로 고착된 게 아닌가 하며 아쉬움을 표합니다.

/도서출판 선 제공

2.코끼리(象)는 죽어서 이빨을 남긴다

칠흑같이 검은머리, 구름처럼 많아 가채도 필요없네.

두 귓불은 옥귀걸이로 장식하고, 머리는 상아비녀로 장식하니, 그 미모 희고 맑아.

鬒發如雲, 不屑髢也. 玉之瑱也, 象之揥也, 揚且之皙也.

빼어난 미모와 어울리지 않는 악한 기질로 악명 높았던 위나라 선공 부인의 외모를 묘사한 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상아는 사치를 상징하는 장신구로 사랑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경 속 코끼리는 살아있는 짐승이 아닌 이빨(상아)로서 등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 중국에 코끼리가 실제로 서식했을 가능성에 기대감을 나타냅니다. 사실 지금도 중국 남서부 윈난성에는 야생 코끼리가 살고 있지만, 윈난성은 행정구역상으론 중국에 속할 뿐 라오스·베트남·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로 보는게 맞습니다. 관건은 양쯔강이나 황하 유역 등 중국 역사의 주요 무대에도 코끼리가 등장하느냐는 것이죠. 고대 문헌과 기록을 보면, 자연적인 코끼리가 서식했을 가능성보다는 조공품 등의 형태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럼에도 코끼리가 ‘외래동물’이 아닌 토종동물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장대한 중국 문명사를 환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서술한 영국 학자 마크 앨빈의 ‘코끼리의 후퇴’의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기원전 2000년전까지도 양쯔강과 황하 일대에서 번성하던 코끼리들이 농경 문명을 앞세운 인간에게 서식지를 잃고 밀려났다는 내용입니다.

/도서출판 선 제공

3.외뿔들소(兕)는 코뿔소인가, 유니콘인가.

단번에 작은 암퇘지 쏘아 맞히고, 큰 외뿔들소도 잡았다네.

發彼小豝 , 殪此大兕

兕… 중·고교 시절 정식 교과목으로 한문을 배운 세대이지만, 인터넷을 검색하기 전까지 저 한자를 ‘외뿔소 시’라고 읽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낯설고 그래서 신비로운 짐승입니다. 말 그대로 뿔이 하나 달린 들소를 뜻합니다. 외뿔들소는 비단 시경에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고전 홍루몽에는 ‘종국에는 호랑이와 외뿔들소의 싸움에 그 꿈을 사그라지리라’는 구절이 포함된 예언시가 나옵니다. 여기서 호랑이와 외뿔들소는 궁내 양대 세력에 비유됩니다. 그렇다면 시경 속의 외뿔들소는 정말로 있었던 짐승일까요? 아니면 용이나 봉황 같은 상상속 동물일까요? 저자는 두 가지 가능성을 둘 다 열어놓습니다. 우선 코뿔소일 가능성입니다. 코뿔소의 분포지역이 아프리카에서 동남 아시아와 인도까지 걸쳐있는 것을 보면, 과거에는 중국까지 서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전설 속 신성한 존재로 그려졌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판단합니다. 후자가 맞다면 매우 흥미로운 결론에 이릅니다. 유니콘이 서양 뿐 아니라 동양까지 아우르는 코스모폴리탄 캐릭터라는 게 되니까요. 실체가 무엇이더라도 외뿔들소는 매우 상서로운 동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도서출판 선 제공

4.오독이 낳은 오해, 나나니벌(蜾蠃)

명나방 애벌레를 키우는 나나니같이 그대들 자식도 내가 거둬 키우며, 조상의 유업을 기리네.

螟蛉有子, 蜾蠃負之. 教誨爾子, 式榖似之

시경 속 동물들은 길짐승이나 새, 파충류처럼 고등한 등뼈동물만 다루지는 않습니다. ‘한낱 미물’이라고 부르는 벌레들도 포함돼있습니다. 그 중 나나니벌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두 번 놀랐습니다. 꿀벌이나 말벌 등에 비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벌을 시적 대상으로 삼을만큼 섬세한 관찰력에 한 번 놀랐다면, 나나니벌의 습성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에 두 번 놀랐습니다. 시에서 나나니벌은 종(種)이 다른 벌레의 새끼까지 거두어 키우는 헌신적인 수양부모처럼 그려집니다. 실상은 잔혹합니다. 이들은 나비 애벌레의 몸을 마비시킨 뒤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습니다. 그러면 부화한 나나니 유충은 애벌레의 속살을 야금야금 파먹습니다. 애벌레는 나비나 나방이 되지 못한 채 제 몸을 먹이로 내주며 서서히 죽어가는 거죠. 헌신적 부모사랑의 상징인 줄 알았던 나나니벌이 알고보니 혈육에 집착하는 패륜의 아이콘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잔혹한 속사정을 파악할만큼 춘추시대 관찰 장비가 발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나나니벌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바로잡히는 과정도 후일담 격으로 소개합니다. 남북조 시대의 학자 도홍경이 비로소 나나니벌과 나비·나방 애벌레 사이의 불편한 진실을 밝혀냈다는 것입니다.

/도서출판 선 제공

5.푸근한 외모의 사다새(鵜)는 난폭한 사냥꾼

사다새는 어살을 지키지만, 그 날개는 물에 젖어 본 적 없다네. 저 조정의 소인배들, 어울리지도 않는 귀한 옷을 입고 있네.

維鵜在梁, 不濡其翼. 彼其之子, 不稱其服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은 말단 관직에 봉해져 배를 곯는데, 도성의 소인배는 군주의 총애를 받아 귀한 관복을 입고 으스댄다고 개탄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는 시입니다. 펠리컨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사다새가 중국 옛 고전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다새 일부 종이 몽골과 시베리아까지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뒤뚱거리는 걸음과 축 늘어진 아래턱 주머니로 이름난 이 새가 아주 오래전에 중국에 살았을 것으로 저자는 단정합니다. 그러면서 시경 뿐 아니라 고대 여러 문헌에 사다새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고기는 그물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사다새는 무서워한다. 魚不畏網, 而畏鵜鶘 <장자>

5월에 사다새가 영지라는 연못에 모여들어 나라가 흥할 것을 알렸다. 夏五月, 有鵜鶘鳥集靈芝池. <삼국지>

이처럼 사다새는 주로 행운의 새, 먹성 좋은 사냥꾼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모습과 거의 일치합니다. 우스꽝스러운 생김새와 걸음걸이 때문에 순박하고 미련한 새라는 인상도 주지만, 사다새는 알고보면 무서운 사냥꾼입니다. 그 퉁퉁한 아래턱 주머니에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 재간이 없습니다. 물고기 뿐 아니라 다른 새의 어린 새끼와 비둘기 등 작은 새들까지도 사다새 턱주머니안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발버둥치지만 결국 산채로 목구멍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던 사다새의 사냥장면이 과거 중국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서출판 선 제공

6.그 옛날에 중국에는 악어(鼉)가 정말 흔했다는데.

타고 소리 둥둥 울리며, 맹인 악사들이 연주하네.

鼉鼓逢逢, 矇瞍奏公.

이 시에 등장하는 ‘타고’는 악어가죽으로 만든 북입니다. 핸드백과 지갑 뿐 아니라 북을 만들 정도로 악어가죽이 유용하게 활용됐다는 것, 그만큼 악어가 드문 동물이 아니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중국에도 악어가 사냐고요? 네. 중국에도 예전엔 꽤 많은 지역에 악어가 살고 있었고, 지금도 극소수가 보호구역에 남아있습니다. 중국 특산종인 ‘양쯔강악어’입니다. 우리는 ‘악어’라고 통칭하지만, 악어는 몸의 생김새와 서식지역에 따라 아프리카와 호주에 주로 사는 크로코다일, 북미에 많은 앨리게이터, 남미에서 볼 수 있는 카이만, 인도가 주요 서식 거점인 가비알 등으로 나뉩니다. 양쯔강악어는 그 중 ‘앨리게이터’에 속합니다. 정치·경제 각 분야에서 으르렁대는 미국과 중국이 사실 악어만으로는 한 식구라는 사실이 묘합니다. 저자는 고대 상나라 시절 악호국 (鄂侯國)이라는 부락국가가 있어서 악어를 잡아 생계를 꾸렸고, 후베이성은 지금도 악(鄂)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점 등을 소개하며 중국인들의 생활에서 악어가 제법 친근한 동물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실제 양쯔강악어는 악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나운 종인 크로코다일과는 달리 온순하고 몸집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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