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가서 한반도 통일 쑥덕거리는 일본..포기하면 영원한 종노릇"

CBS 시사포커스경남 입력 2021. 2. 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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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완의 혁명가' 백기완
박정희 어깨 툭 치며 '민주주의' 말했던 기개
평화통일 위해 살아온 미완의 혁명가
통일 반대하는 일본 미국가서 쑥덕거리고
자주통일 방해하는 국제정세에 큰 안타까움
포기해서는 안 되고, 계속 두드려야
자주성을 잃어가면 영원히 종노릇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인적교류부터
15일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에서 유가족이 영정에 절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제작 : 윤승훈 PD, 이윤상 아나운서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이상익 시인 (경남작가협회 이사)
경남작가협회 이사 이상익 시인. 이상익 시인 제공

◇김효영> 통일운동을 이끌어왔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영면에 들어가셨죠. 백기완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텐데요. 백 선생과 오랫동안 시민사회활동을 해오신 분이죠. 지금은 등단 시인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경남작가협회 이사로 계신 이상익 선생님 만나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상익> 네. 안녕하세요.

◇김효영> 백기완 선생님 별세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이상익> 저는 평소에 계속 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가시지는 않겠다 라는 것은 느꼈어요. 그래도 막상 돌아가시니까 좀 멍하게, 굉장히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효영> 그 분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참 힘이 들겠지만,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이상익> '평화통일운동가'셨죠.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민중운동가다. 그렇게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으네요.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가 열린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김효영> 이 분이 학력은 국민학교 졸업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이상익> 아니 아니. 국민학교도 못 나왔어요. 3학년까지만 다녔죠.

◇김효영> 그렇습니까?

◆이상익> 예. 시대상황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6.25를 전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김효영> 그럼 통일, 평화, 민중에 대한 공부는, 스스로 하신 겁니까?

◆이상익> 아, 그럼요. 이 분이 얼마나 머리가 명석하신가 하면 초등학교 3학년 중퇴하신 분이 고3학생 영어과외 수업을 하셨어요. 하하.

◇김효영> 아 정말요? 하하.

◆이상익> 그렇죠. 그 뿐만 아니라 소설책도 내셨고 시집도 여러 권 내셨고, 대단하신 분이죠.

◇김효영>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럼 평소에는 어떤 분이셨는지.

◆이상익> 황석영 소설가 아시죠? 황석영 선배 말에 의하면 20대때 백기완 선생이 농민운동 대표격으로 박정희 장군이 초청한 자리에 갔었어요.

◇김효영> 네.

◆이상익>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박정희 어깨에다가 손을 얹고 어깨를 치면서 '박형, 혁명은 민주주의하는 것이지 정권 잡는 것이 아니요. 앞으로 잘 해보십니다'. 그렇게 하신 분이에요.

◇김효영> 박정희한테?

◆이상익> 네. 거침이 없는 분이죠. 백기완 형님의 기개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혀를 내두르는 그런 것들이 많아요. 에피소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김효영> 보통 기개가 아니셨군요.

◆이상익> 아이고, 대단한 분이시죠.

1974년, 마흔두 살. 박정희 정권 아래 긴급조치1호 위반으로 의형제를 맺고 박정희 타도 싸움을 명세하였던 독립군 출신 장준하(1918-1975)와 군법재판을 받는 장면.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김효영> 핍박도 많이 당했을 것 같아요.

◆이상익> 그 뒤에 한일회담 반대투쟁. 64년에 삼선개헌 반대운동, 유신철폐 운동해서 12년 형을 받고. 또 저희들이 같이 감옥같던 YWCA 위장결혼사건 등등. 한시도 군사쿠데타 정권에 대해서 타협이 없고, 오직 정의롭지 못한 정권을 종식시켜야 된다. 그 운동에 발벗고 나섰죠.

1987년, 고문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자마자 유월항쟁의 거리에서 백기완은 지팡이를 짚으며 함께 했다. 박용수씨 제공

◇김효영> 이상익 선생님이 함께 하셨던 YWCA 위장결혼사건은 전두환 쿠데타 신군부에 대항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대통령간접선거반대 국민총궐기대회였습니다. 백기완 선생의 꿈은 역시 평화통일이어죠?
1987년, 고문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자마자 유월항쟁의 거리에서 백기완은 지팡이를 짚으며 함께 했다. 박용수씨 제공
◆이상익> 그렇죠. '미완의 혁명가'라고도 많이 부르죠.

◇김효영> 완성하고 싶었던 목표는 평화통일이었다.

◆이상익> 그렇죠. 그때가 되면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웃으시기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김효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을 때, 백기완 선생도 기뻐하셨을텐데요.

◆이상익> 그때 병원에 계셨는데 그걸 보시고는 눈물을 많이 흘리시고 그러셨어요. 너무 기쁘셔가지고. 그 뒤에는 답보상태. 이렇기 때문에 안타깝죠.

◇김효영> 어떤 점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을 하셨을까요?

2000년, 예순여덟 살. 615남북정상 회담 뒤 북쪽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방문한 평양 대동강변에서 눈물에 젖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이상익> 백기완 선생님은 결국은 남과 북이 하고자 하면 되는데 이를 테면 미국이라는 엄청난 벽. 일본이라는 엄청난 벽. 일본은계속 반대하고 미국가서 쑥덕거리고 이런 걸 잘 하니까. 이런 것을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어요. 자율적 의지를 갖고 나서면 되는데 이게 정치적 고리들이 전 세계에 얽히고 섥혀 있으니까, 지금 사실 냉전시대는 종식을 고했지만아직도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을 중심으로 또 다른 냉전이 펼쳐지고 있죠. 군사력에 의한 냉전이라는 지금 경제력에 의한 냉전으로. 우리가 이러한 지정학적 한계가 있고 여러 가지 정치학적 이런 한계 속에서 자주통일을 한다는 것이 참 현실적으로 너무나 지난한 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포기해서는 안 되고 그 노력을 견주하면 저는 열린다고 봅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고 우는 놈한테 젖준다는 식으로 스스로가 위축되어서 그것을 자꾸 자주성을 잃어가면 영원히 그건 종노릇하는 것밖에 안 되죠. 우리 노력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계속 남북 당국간의 노력이, 그러니까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만드는 것부터 해서 인적교류가 활발하게 되면, 제3국들도 존중하지 않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효영> 미국, 일본, 중국 눈치보는 것도 있습니다만, 대한민국 내에 있는 반통일세력에 대한 눈치도 보는 것 같아요.

◆이상익> 현실이니까요.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미국과 일본과 특히 관여도 되어 있고. 학자나 정치인 중에서도. 이해득실이 결부되어있는 사람들이나 조직은 그걸 양보하려고 하겠어요? 안 하겠죠. 그래서 더 간단하지 않은 것이 현재 우리 남북의 문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제 때도 일본사람보다 일제보다 더 나쁜 게 우리 앞잡이들이고 더 고문하고 독립군들, 그런 사람들 더 나쁘지 않아요? 이 사람들 그대로입니다. 지금 모양만, 형태만 달리할 뿐 내용은 같다고 봐야죠.

◇김효영> 해방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망언을 쏟아놓고, 또 거기에 찬동하고 있는 한국의 학자들도 있고. 정말.

◆이상익> 그러니까요. 그건 말이 안 돼요. 그럼 나치를 정당화하는 정치인, 언론인들 그 사람들도 민주주의 자유를 느리고 언론의 자유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부숴버렸고 빨갱이, 간첩으로 몰아서 국회의원들 죽이고 했으니까. 그런 인류와 역사에 반하는 죄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어야 됩니다.

◇김효영> 이야기가 멀리 갔습니다만, 그렇게 국가와 민족을 배반한 사람들이 득세를 해온 대한민국에서 지조를 지키고 살아왔던 분이 백기완 선생입니다.

2017년 4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3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오영석군 어머니 권미화씨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상익> 네. 같은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들 산자가 따를 차례입니다.

◇김효영>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이상익> 네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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