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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되려면 학원 필수, 학원비 1000만원이라니

조유정 대학생 기자 입력 2021. 02. 24. 18:34 수정 2021. 02. 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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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조유정 대학생 기자]

서울에 있는 A학원에 앳된 여학생이 문을 두들겼다. 학원 상담실에 들어가 원장을 만난 하늘씨(가명)가 긴장한 채 물었다.

“저는 명문대생도 아니고 집이 부유하지도 않은데… 이런 저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까요?”

아나운서는 하늘씨의 오랜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예회 MC를 시작으로 하늘씨는 아나운서를 꿈꿔왔다. 가능성을 묻는 하늘씨의 질문에 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한테나 장담은 못 한단다.”

하늘씨는 미적지근한 대답에 다소 실망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어진 학원 상담이 끝난 후 하늘씨 축 처진 모습으로 학원을 나왔다. 하늘씨가 제안받은 커리큘럼 '아나운서 정규반'은 350만원(2018년 기준)이었다. 하늘씨는 비용에 놀랐지만 350만원이 할인가라는 얘기에 더 놀랐다. 그렇게 하늘씨는 학원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반년이 넘게 일한 끝에야 하늘씨는 아나운서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한가로운 일요일, 연우씨(가명)에겐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이다. 해가 뜨기도 전인 오전 6시 연우씨는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연우가 향한 곳은 서울에 있는 아나운서 학원. 지난해 12월 아나운서 학원에 등록한 연우씨는 매주 일요일 학원을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연우씨가 일주일에 1번 6개월간 다니는 아나운서 학원 정규반 비용은 400만원(2020년 기준)으로 등록금보다 비싼 금액이었다.

“아나운서가 안되더라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너가 유학가고 싶어 할까봐 혹시 몰라 들어놓은 적금이 있는데 그 돈을 학원비에 쓰자.”

연우씨는 비싼 학원비에 고민됐지만, 부모님이 유학 비용으로 들어둔 적금으로 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같은 돈' 내고 학원왔는데… 피드백은 제각각?

“보미(가명)야 허리 펴고 똑바로 서서 그렇지. “~습니다” 할 때 지금 상승조(음이 올라가는 것)니까 하강조(음을 내리는 것)로 바꾸도록 더 연습하고 목소리 톤은 너무 좋다.”

벌써 20분째 연우씨와 같은 반 유나씨(가명)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반면에 다른 친구들의 피드백 시간은 5분에서 10분으로 유나씨의 피드백 시간에 비해 확연히 짧았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연우씨와 친구들은 불만이 쌓였다.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야? 나는 피드백 5분 밖에 못 받았어.”

연우씨가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불공평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 돈을 내고 다니는데 잘하는 사람에겐 더 많은 피드백을 주고 상대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은 잘하는 친구만큼 피드백을 받지 못해 불만이 쌓인 것이다. 연우씨는 이렇게 되면 400만원을 내고 배우는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학생이 아닌 돈줄로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학원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다. 학원이 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는 '갑'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아나운서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지역 자상파의 한 현직 아나운서가 말했다. 그는 “학원을 다니면서 작은 경력이라도 만들어야 아나운서가 되는데 유리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아나운서 채용의 핵심은 '경력'과 '추천제도'이며 학원을 다녀야 작은 경력이라도 쌓을 수 있었다. 학원 추천은 작게는 유명 유튜브 채널 아나운서, 행사 MC, 회사 사내 아나운서부터 크게는 지역 방송국 아나운서 자리까지 있다. 학원마다 추천해주는 곳도 달라 추천을 위해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여러 학원을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나운서 준비생들 사이에는 “학원 3곳은 기본”이란 말까지 들릴 정도다.

“저희 학원에서는 누구에게나 추천의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아나운서 학원은 학생들을 '추천 제도'와 '공채 합격 현황'을 내세우며 홍보했다. C학원에서 정규반 수료한 하늘씨는 추천을 받기 위해 A학원을 다시 찾았다. A학원은 고액 패키지 수업을 권했지만 하늘씨는 이미 들은 기초반 수업을 들을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저희 학원에 왔으면 다른 곳에서 배웠어도 기초반부터 다시 들어야 해요” 상담실장이 기초반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패키지 수업을 권했다. 하늘씨는 이미 들은 기초반을 다시 들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실랑이 끝에 학원에 있는 뉴스 전문 선생님께 실력 테스트 후 반을 정하기로 했다.

“이 친구는 고급반 들을 실력인데 기초반을 권하면 어떻게 해요!”

뉴스 전문 강사에게 인정받은 뒤 하늘씨는 결국 고급반을 수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급반만 듣는 하늘씨에게 추천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 여름, 하늘씨는 지역 지상파 아나운서 채용에 지원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방송사가 '신입 아나운서 지원 자격으로 학원 추천서'가 필요하며 학원당 '2명'만 지원 가능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자격요건으로 학원 추천을 본 하늘씨가 초조한 마음으로 학원에 물었다.

“혹시 이번 지역 아나운서 추천 오디션 하나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늘씨는 학원 추천제도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미 학원에서 바로 현장에 투입해도 방송을 할 수 있는 실력이라 인정을 받았는데 싸구려반(단과반)을 듣는다는 이유로 추천의 기회를 주지 않았는다고 주장했다. 하늘씨는 학원 추천은 고액 패키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하늘씨가 수강한 고급반은 3시간씩 10회 150만 원이었고 고액 패키지는 50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이른다.

하늘씨는 추천할 기회가 생기면 고액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듣는 수업 별로 나눈 방)에 알리고 그 친구들 위주로 추천을 한다고 설명했다. 추천을 받으려고 학원을 왔는데 정작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하늘씨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결국, 추천을 위해 다른 학원을 알아봐야 했다.

▲ 아나운서. 사진=gettyimagesbank

“765만원 정도 쓴 거 같아요.”

하늘씨가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2년간 나간 학원비는 700만원 이상이었다. 현직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가 되기 전 1000만원은 기본으로 쓰고 시작한다”고 말했다. 6개월 정규반(2020년 기준)이 400만원에서 500만원 사이, 고급반은 1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다. 거기에 공채 시즌마다 프로필 사진과 아나운싱 영상을 찍으려면 기본 30만원 이상이 든다고 설명했다. 사진 3장과 10분 영상을 찍기 위해서는 전문 메이크업샵에서 헤어·메이크업을 받고 의상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비싼 학원비와 불평등한 추천제도에도 이들은 아나운서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아나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어요. 어렸을 땐 막연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에서도 방송국 아나운서를 하며 나랑 잘 맞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나운서가 겉으로 보기엔 번지르르 해보이지만 학원을 다니며 느낀 건 보는 것만큼 화려한 직업은 아닌 거 같아요. 학원 금액도 많이 부풀려진 거 같아요. 거품이 걷히길 바래요”라고 연우가 말했다.

하늘씨는 아나운서는 똑똑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았어요. 큰 자리에서 진행을 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게 재밌고 좋았죠. 준비를 하며 잘한다는 말을 들을수록 점점 더 마음이 커지는 거 같아요. 무엇보다 부유하고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아나운서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온 사람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하늘씨와 연우씨는 아나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학원은 필수라고 말했다.

“대학을 막 졸업했는데 신입 자리는 적고 경력을 뽑으려고 하니 경력 없는 신입은 갈 곳이 없어요.”

아나운서는 경력 위주의 채용이 이뤄지는데 경력 쌓을 기회조차 적어 학원 추천이 그나마 경력을 쌓을 방법이란 것이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비싼 수강료에 아르바이트 혹은 부모님께 손을 벌려서라도 학원을 계속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이들은 꿈을 위해 불평등을 참고 학원에 간다. 학원은 2달 만에 51명의 아나운서, MC, 리포터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2019년과 2020년 지상파 3사 아나운서 채용은 전무했다. 2020년 지역 3사 9곳이 채용을 진행했지만 정규직 채용을 한 곳은 단 2곳뿐이었다. 2019년 역시 지역 3사 8곳 공채 중 단 2곳만이 정규직 아나운서를 채용했다. 반면에 아나운서 학원 수강생은 1년 기준 수천명으로 파악된다. 관계자는 학생이 많아 1년 수강생이 몇 명인지 확인은 불가하나 한 달에 약 100여명 정도 등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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